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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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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동네’에서 아이들 키우고 싶어 선택한 한옥

광고 촬영감독 최문용씨가 한옥에 사는 이유…“집에는 내 자아가 있고, 내 정서가 있다. 집이 단단하면 나도 단단해진다”
등록 2023-08-05 00:48 수정 2023-08-20 06:20
반려견과 함께 자신의 한옥 마당에 앉은 최문용 광고 촬영 감독. 김진수 선임기자

반려견과 함께 자신의 한옥 마당에 앉은 최문용 광고 촬영 감독. 김진수 선임기자

한옥이란 말은 일종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다. 좋게 말하면 자기 객관화다. 한옥은 현대어로 풀면 ‘한국 집’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자신의 주택에 대해 ‘집’ ‘옛집’ ‘전통 집’이라 부르지 않고 굳이 ‘한국 집’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인은 한국인이 ‘한국 집’에 사는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한옥에 사는 사람을 조금 특이한 사람으로 본다. 이것은 전통 옷이나 전통 간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전통 옷을 굳이 ‘한복’이라 부르고 전통 간장을 ‘조선간장’이라 부른다. 대신 ‘서양 옷’을 ‘옷’이라 부르고 ‘왜간장’을 ‘간장’이라 부른다.

전통 집을 ‘한옥’이라 부르는 한국인

문화적 정체성 관점에선 매우 당연하게, 오리엔탈리즘 관점에선 매우 특이하게 한국의 전통 집(한옥)에서 사는 광고 촬영감독 최문용(57)씨를 만났다. 최씨는 서울 종로구 체부동의 한 한옥에서 산다. 전통 주택에서 산 지는 2006년부터 17년이 됐다. 그에게 왜 전통 집에 사느냐 물었다.

그에게서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두 아이를 골목이 있는 동네에서 키우고 싶었다. 그것이 정서나 인격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가 전통 집에 사는 이유는 단지 ‘전통 집’에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골목 동네’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골목 동네의 전통 집에서 살고 싶었을까? 그는 “어려서 골목 동네의 한옥에서 살았고, 그것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 서울 미아동의 한 한옥에서 산 적이 있다. 그때 기억이 난다. 나는 부엌 위 다락방에 올라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마당에서 일하고 계셨다. 집에 대해 생각하면 자주 그때 생각이 난다. 내게 집은 그렇게 정서적인 곳이다.”

그는 골목 동네 가운데서도 ‘서촌’을 골랐다. 서울의 전통적인 동네를 이야기할 때 ‘북촌’과 함께 첫손가락에 꼽히는 곳이다. 왜 하필 ‘서촌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서촌과 북촌을 잘 바뀌지 않을 골목 동네로 생각했고 양쪽을 모두 알아봤다. 북촌은 보기 좋고 정갈하지만, 언덕이 많아 아이들과 어머니가 함께 살기엔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또 서촌이 좀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최 감독은 서촌에서 두 곳의 집에 살았다. 2006~2012년 살았던 첫 집은 터가 26평 정도 되는 집이었다. 붓글씨로 ‘좋은 집 구해드립니다’라고 광고문을 써붙인 부동산사무실에서 소개받은 집이었다. 방이 세 개, 다락방이 한 개였다. 반듯하고 예쁜 집이어서 되도록 원형을 유지하려 했다. 화장실을 안으로 들이고 부엌을 조금 고치는 것 말고는 크게 손대지 않았다. “아이들이 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모두 지내서 추억이 아주 많은 집이었다”고 최 감독은 말했다.

서울 종로구 체부동 자신의 한옥 대문 앞에 선 최문용 광고 촬영 감독. 김진수 선임기자

서울 종로구 체부동 자신의 한옥 대문 앞에 선 최문용 광고 촬영 감독. 김진수 선임기자

작지만 반듯하고 예뻤던 26평 첫 한옥

둘째 집으로 옮긴 이유는 아이들이 청소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방을 하나씩 주고 싶었다. 둘째 집은 최 감독의 어머니가 소개했다. 어머니의 오랜 지인이 살던 집이었고, 어머니가 자주 들렀던 곳이다. 그 지인이 그 집을 정리할 계획이 있어서 최 감독한테까지 말이 전해졌다. “첫째 집과 둘째 집 모두 그 집에서 40년 이상 산 할머니들 소유였다. 매매할 때 아주 소중한 물건을 넘겨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2012년 둘째 집에 이사 와서는 5년 동안 옛집을 거의 손대지 않고 그대로 살았다. 화장실 조금 고치고 겨울에 창호에 비닐만 붙이고 살았다. 한 이유는 이 집에 좀 살아보고 고칠 계획을 세우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집을 고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5년 정도 지났을 때 집을 어떻게 고쳐야겠다는 생각도 쌓였고 집을 고칠 ‘총알’(예산)도 마련됐다.

5년 동안 살았기 때문에 집을 고칠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정리됐다. 예를 들어 원래 넓은 안방이 있던 자리는 부엌과 거실로 만들어 가족이 함께 지내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안방이 너무 작아지는 것 같아 창을 조금 돌출형으로 바꿔 좀더 넓은 느낌이 나도록 했다. 또 아이들과 어머니 방은 집 안에서 오갈 수 있게 복도를 마련했다. 원래 집은 전통 방식으로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가려면 마당을 통해야 했다.

공간을 넓히기 위해 2층에 작은 다락방을 만들고 지하에도 방을 만들었다. 원래 다락방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는데, 아이들이 잘 쓰지 않아 이젠 최 감독의 사랑방이자 사무실이 됐다. “지하방은 다른 가족이 더 올 것 같아 만들었는데, 아이들 놀이방과 음악 작업실로 바뀌었다. 공간은 반드시 계획대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집을 고치면서도 기존 집의 숨결을 많이 남겨놓으려 노력했다. 예를 들어 기존 기와 가운데 수키와는 대부분 활용했다. 현재도 최 감독 집의 지붕 위엔 다양한 연대와 무늬, 색깔을 가진 수키와가 수놓은 듯 놓여 있다. 다만 암키와는 부서진 것이 많아서 대부분 교체했다. 외벽 벽돌을 최근 한옥에서 많이 쓰는 사괴석이 아니라 20세기 서촌의 집에 많이 사용된 붉은 벽돌을 썼다. 옛날식 벽돌 쌓기를 하지 못한 게 아쉬움이었다.

집을 고치는 과정에 어려움도 많았다. 애초엔 대수선 기간을 6~8개월 예상했으나, 결과적으로는 1년6개월 걸렸다. 집 고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웃 가운데 한 집의 민원이었고, 둘은 지하방을 팔 때 주춧돌 유적이 나와서 문화재 조사를 해야 하는 문제였다. “다행스럽게 건축가를 잘 만나 어려움을 푸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집에 놀러온 이웃과 다락방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최문용 광고 촬영 감독. 김진수 선임기자

집에 놀러온 이웃과 다락방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최문용 광고 촬영 감독. 김진수 선임기자

“한옥은 스스로 만들고 고쳐나갈 수 있다”

전통 집에 사는 좋은 점은 무엇일까? 최 감독은 “모든 점이 좋다”고 말했다. 하나를 꼽아달라 했더니 “한옥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고 고쳐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전통 집은 구조가 벽식이 아니라 기둥식이기 때문에 기둥 사이 벽을 다 허물어도 그대로 서 있다. 공간 배치를 바꾸기에 유리하다. 또 뼈대가 나무이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해 내외부 공간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또 집과 마당 사이 높이차가 있어 몸을 더 많이 움직이게 되는 점도 좋다.

그러나 한옥이 살기 불편하다는 의견은 여전히 많다. 가장 많은 걱정은 겨울에 춥다는 것이다. 이른바 ‘단열’ 문제다. 최 감독은 “한옥도 기술이 발전해 더는 단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건축가와 시공업체를 잘 선택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최 감독은 난방과 냉방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살면서 여름에 시원하게, 겨울에 따듯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여름에 조금 덥게, 겨울에 조금 춥게 사는 것이 건강이나 환경에 모두 좋다는 것을 안다. 집에서 살다보면 그런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전통 집에 대한 다른 걱정은 짓거나 고치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나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새 서촌이나 북촌에서 전통 집을 새로 짓거나 대수선하려면 평당 2천만원 정도 든다. 양옥은 그 절반인 평당 1천만원 정도다. 최 감독은 비용과 관련해선 단기적 관점과 장기적 관점에서 달리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재료나 방식에 따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옥이 양옥보다 비용이 더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현대적인 재료나 방식을 쓴다면 비용을 조금 줄일 수 있다.”

또 하나는 규모의 경제가 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까지는 전통 집을 짓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건축비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에 사람들이 양옥과 아파트로 가면서 전통 집을 지을 사람이나 재료가 많이 줄었다. 전통 집이 규격화, 대중화할 기회를 잃은 것이다. “사람들이 반드시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한옥 등 다양한 집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당연히 집 짓는 비용도 줄어들 것이다.”

과연 전통 집은 다시 주요한 주거 유형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최 감독은 낙관적이었다. “지금 80%에 가까운 사람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사는데, 앞으로 100%가 공동주택에 살게 될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여전히 한옥이나 단독주택에 살려는 사람이 있고, 더 늘어날 것이다. 현재도 서울 주변이나 지방 대도시에선 한옥이나 단독주택을 선택할 수 있다.”

전통 집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최 감독은 “별로 고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옥에 대한 규제가 많으니 한옥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더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서촌에서도 양옥을 지으면 3~4층까지 지을 수 있는데, 전통 집은 1~2층밖에 짓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손해다. 그 경제적 손해를 벌충해줄 세금이나 공공요금 감면 등 혜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지원은 사람들이 전통 집을 선택하는 데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최근 최 감독이 우려하는 것은 전통 집들이 주거 공간에서 숙박이나 관광 시설로 바뀌는 현상이다. “서촌에서 리모델링되는 한옥 가운데 많은 수가 게스트하우스나 상업시설, 세컨드하우스(별장)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동네가 튼튼하게 발전하려면 주거 기능이 바탕이 돼야 한다. 동네에 숙박시설이나 상업시설이 너무 많아지면 사람이 살지 않는 껍데기 동네가 될 수 있다.”

최문용 광고 촬영 감독의 한옥 마루에서 본 마당의 모습. 김진수 선임기자

최문용 광고 촬영 감독의 한옥 마루에서 본 마당의 모습. 김진수 선임기자

거주자 내쫓는 관광지화, 상업화 경계해야

서울시나 종로구도 멀쩡히 사람이 살던 집을 사들여 불필요한 전시관이나 방문자센터, 공공시설로 바꾸는 일도 많다. 이런 공간은 거주자를 밀어낼 뿐 아니라 제대로 활용되지 않기도 한다. “주민들이 원하는 공원이나 놀이터, 주차장, 공공주택 같은 공간은 잘 공급되지 않고, 관광객이나 공무원을 위한 공간만 늘어난다. 이것은 주민을 쫓아내는 정책이다.”

끝으로 전통 집에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최 감독은 “주저하지 말고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선택하라”고 잘라 말했다. 그 이유는 어느 광고 문구처럼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한다’는 것이다. “집에는 내 자아가 있고 내 정서가 있다. 집이 단단하면 내 삶도 더 단단해진다.” 좋은 집을 선택하는 방법을 물었더니 “한옥이나 단독주택 등 여러 집을 가보고 되도록 생활도 해봐야 한다. 여러 집을 경험하다 보면 내가 살아야 할 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특별한 변신,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통권호를 아홉 번째 내놓습니다. ‘21이 사랑한 작가 21명’,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비거니즘의 모든 것, 비건 비긴’(Vegan Begin) 등에 이어 ‘집’을 열쇳말로 삼았습니다. 한옥, 농막, 협소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집에 깃든 사연, 반려동물을 위한 집, 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담은 집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다양한 집의 존재 이유와 미래 전망도 더했습니다. _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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