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 힘들어.”
계단을 한 걸음 오를 때마다 남편 이마에서 땀이 뻘뻘 흘러내렸다. 목발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한 계단 오를 때마다 팔심만으로 몸무게를 끌어올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발목이 부러져 두 달 동안 깁스해야 하던 지난봄에 있었던 일이다.
사고로 한시적 장애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남편의 주거 생활은 큰 어려움에 부딪혔다.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건물은 현관으로의 진입조차 고난의 행군길로 만들었고, 집 안에선 화장실을 갈 때마다 한쪽 발로 문턱을 뛰어넘느라 무릎 연골이 고통받아야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따뜻한 집은 장애에 대한 고려가 하나도 없는 차가운(냉정한) 주택이라는 것을.
장애인 주거권의 핵심은 장애 특성에 따른 ‘특별한 필요’를 충족하느냐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민국의 장애인 주거권은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상태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정도랄까. 장애인 주거권 보장을 위해 실질적 정책 논의가 시급한 이유다.
남편 발목이 부러지고 한 달쯤 됐을 때 내가 병이 났다. 둘이 나눠서 하던 집안일을 혼자 하고 자폐성발달장애 아들도 혼자 돌보며 남편 수발까지 들었더니,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져 질염과 방광염에 걸린 것이다. 남편은 미안했는지 “어디 휠체어 빌리는 데 있지 않아? 휠체어 빌려 내가 집에서 혼자 이동이라도 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저씨, 그 휠체어 타고 어딜 가시게요? 화장실은 고사하고 안방 문턱이라도 넘을 수 있겠습니까?”
집 안에 휠체어가 돌아다니려면 그에 맞는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현관부터 출발해 모든 문에 턱이 없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방문에 비해 유독 작게 설계된 화장실문도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최소한의 넓이가 보장돼야 한다. 설거지가 가능하도록 싱크대 하부장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세면대 높이 조절과 샤워기 방향 조절이 가능한 공학적 장치도 뒤따라야 한다. 단지 먹고, 씻고, 자는 보통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편의시설은 장애 유형과 장애 정도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언젠가 나라에서 장애인 주택 개조를 지원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 확인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에 문의했더니,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가 50 대 50의 비율로 주택개조사업을 지원하고 있단다. 이를 위한 2023년 국토부 예산이 28억5천만원. 한 해 57억원의 사업인 셈이다.
개인당 얼마씩 지원받아 어떤 식으로 개조하는지 알고 싶어 척수장애 당사자인 지인(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이승일 센터장)에게 연락했는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그거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 중심이라 저처럼 민간주택에 사는 사람은 해당 안 돼요.” 모든 정부 사업이 그렇듯 공모로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는데 그 기준이 높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어떡하냐는 말에 그는 “우리가 자비로 공사해야죠”라고 했다.
적게 잡아도 수백만원에 이르는 공사비 때문에 많은 장애인이 최소한의 편의시설만 갖춘 채 불편함을 감수하며 산다고 했다. 이승일 센터장도 화장실을 드나들 때 문에 휠체어 손잡이가 걸리는데 확장공사를 할 엄두가 안 나 아예 문짝을 떼버리고 생활한다고 했다.
장애인 주거권을 위한 정부 지원이 미비하다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가 각개전투로 생존 투쟁을 벌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개인 사정에 따라 최소한의 주거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힘든 생활을 하는 장애인도 많다. 쪽방 거주자 등 주거취약계층 4명 중 1명이 장애인이란 사실은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케이(K)-복지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피난 약자’라는 개념이 있다. 재난이 발생할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힘든 장애인이 이에 속한다. 한 예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하거나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려 엘리베이터 가동이 멈추면 비장애인은 비상계단으로 재빨리 밖으로 나갈 수 있지만, 휠체어 이용자는 집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다. 피난 약자를 위한 정책도 지원도 전무한 실정이다.
이승일 센터장은 “장애인 주거 공간은 가능한 1층에 있어야 한다”며 “주거취약계층 중에서도 피난 약자에 속하는 장애인에게 주택 1층 우선권을 내어주는 법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 센터장의 경우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이라 집으로 올라가지 못한 적이 있고, 같은 이유로 출근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만나 밥 먹는 뇌병변장애 지인이 있다. 한번은 그가 재난 발생시 엘리베이터 이용이 중단되면 계단을 기어서 내려가는 게 빠를지 굴러서 내려가는 게 빠를지 농담처럼 말하는데, 그 웃음 속에 담긴 ‘생존에 대한 공포’가 현실적으로 다가와 마음이 묵직했던 기억이 있다.
피난 약자 처지이긴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내 아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지진이나 대형화재가 발생해 밖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뉴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도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집 안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하다. 장애인 주거생활지원 서비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보통의 주거권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주택의 물리적 위치 선정이나 편의시설 구축 외에 장애인을 직접 지원할 돌봄 서비스가 추가로 지원돼야 한다. 나는 중증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시설에 보내지 않을 생각인데 이런 꿈을 꾸는 게 가능한 이유는 ‘장애인 지원주택’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사업인 지원주택은 ‘주택’과 ‘돌봄’을 결합한 주거 모델이다. 사업을 진행하는 기관에선 장애인 당사자가 거주할 주택(공공임대주택) 옆(근거리)에 지원센터를 마련한다. 만약 한 빌라에서 102호, 201호, 202호, 301호, 302호가 지원주택이면 101호는 지원센터인 셈이다.
지원센터에선 사회복지사가 교대근무 중이다. 소규모 시설인 그룹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원주택은 시설이 아니기에 당사자가 활동지원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아들이 24시간 교대로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으면서 동시에 지원센터의 사회복지사가 엄마인 내가 해야 할 ‘어떤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다면 먼 훗날 나는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주세요”라는 명대사를 읊지 않고 눈감을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 주거생활지원 서비스는 단순 돌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사회와 유기적 연계로 장애인의 사회통합과 참여를 촉진하는 것을 지향한다.
지원주택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의 김정하 이사장은 지역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의 연계로 프리웰 지원주택에 사는 당사자들이 장애인주치의 제도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장애인 주거권이 보장되려면 지역 내에서 의료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이사장은 장애인 주거 공간의 집합성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빌라 한 채가 통으로 지원주택인 것과 비장애인이 사는 일반 빌라 몇 개 호수에 지원주택이 들어서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빌라 전체를 통으로 지원주택으로 사용할 때 처음에는 편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회통합 측면에서 배제의 길로 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애인 주거권 보장에서 가장 큰 난관은 예산이다. 당장 서울시만 해도 얼마 전 서울시 복지 포털에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사용자(서비스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많은 예산이 든다)는 지원주택 입소가 안 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고 한다. ‘비빌 언덕’이 날아가면서 다시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판이다.
‘소수를 위한 예산 낭비가 아닌 미래 사회를 준비하기 위한 사회적 예산’으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돌봄 문제는 장애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세계 제1의 고령화 국가로 치닫고 있는데, 고령에 질병이나 빈곤이 더해지면 그때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서울시 장애인 지원주택사업이 돌봄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위한 롤모델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올 고령사회에서 돌봄 문제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대규모 일자리 창출은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덤이 될 것이고.
같은 맥락에서 향후 신축될 주택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모두의 편의를 위한 보편적 설계)이 디폴트(기본값)가 되는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설치한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모두가 편하게 사용하듯, 문턱 없는 집에선 어린이도 고령자도 깁스하거나 관절이 안 좋은 성인도 편하게 오갈 수 있다. 결국 장애인 주거권이 보장되는 사회는 모두의 주거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사회는 그런 방향성을 띠고 변화할 것이다.
류승연 작가·<배려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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