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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내 친구들은 공공임대주택 청약을 넣지 않는다

저출생 대책 들러리가 된 청년 1인가구, 소유권 중심 주거정책 강화하는 윤석열 정부
등록 2023-08-07 19:51 수정 2023-08-12 17:20
2020년 10월5일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권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를 향해 코로나19로 주거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20년 10월5일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권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를 향해 코로나19로 주거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코로나19 확산 이후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충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고야 말았다. 뉴스에서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생계가 끊겨 자살을 시도하는 여성, 홀로 방치된 장애인, 돌봄에서 소외된 홀몸노인,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해 호명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이 ‘1인가구’로 불리고 있다. 그리하여 1인가구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간 미뤄뒀던 빈곤의 종식과 돌봄의 사회화에 관한 문제임이 드러났다. 그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수많은 사람을 잃고 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누구를 위한 주거정책인가

이 글은 1인가구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혼자 사는 일은 삶에서 많은 일이 그렇듯이 한번쯤 해볼 만하다. 스스로를 돌보고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감각은 한 인간에게 자신감의 원천을 부여한다. 그런가 하면 사회가 ‘1인분’으로 요구하는 역할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은 앞으로의 삶을 상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편 우리는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불가피하게 인지하게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근원적 절망감 혹은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슬픔과 기쁨이 혼재된, 당연한 삶의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1인가구라는 이름에 가려진 어떤 존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2016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의중앙선 가좌역 옆에 행복주택을 짓는 모습. 한겨레 자료

2016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의중앙선 가좌역 옆에 행복주택을 짓는 모습. 한겨레 자료

1인가구 주거정책은 사실상 중산층 이상을 타깃으로 하는 청년주거정책이나 다름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주거정책 자체가 고소득자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크게 삭감된 주거정책 예산을 확인하면 빠른 이해가 가능하다. 주거정책의 최전선이라고 볼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정책 예산은 2023년 정부 예산안에서 전년 대비 5조7729억원 삭감됐다. 반면 분양주택 등에 대한 지원 예산은 1조1138억원가량 증액돼 전년 대비 3배 이상 규모가 됐다. 주거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주거정책이 아니라 소유권 중심의 주거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이렇게 헛발질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주거정책 성적표는 말 그대로 최악이다. 장기 거주가 가능한 공공임대주택은 사실상 전체 주택의 10% 미만에 불과하다. 정부가 사들이는 매입임대주택이 있지만 아직은 규모가 소소하다. 최근 공공임대주택이 많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박근혜-문재인 정부에 대량 공급된 행복주택과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은 임대료가 비싸서 취약계층 진입이 어렵다.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은 민간과의 결탁이라는 비판을 들을 만큼 비싼 임대료와 민간 중심 수익구조를 가진다.

윤석열 정부는 한술 더 떠서 공공분양주택 50만호 공급을 발표했다. 분양이라는 형식이 가진 계급적 한계는 차치하고라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분양자에게 가는 시세차익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투기를 권하는 셈이다. 참고로 한국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 수가 170만이 넘는다. 고시원에서는 화재로 사람이 죽고, 반지하에서는 폭우로 사람이 죽고, 전세사기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과연 이들이 공공분양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가? 주거취약계층인 청년층에 68%가량을 할당했다지만, ‘가난한’ 청년에게 분양받을 돈이 있을까?

입주 가산점을 위해서는 임신진단서까지

고소득자를 위한 소유권 중심의 주거정책 방향과 더불어 한국 주거정책의 또 다른 특성이 하나 있다. 주거정책을 인구정책, 즉 ‘저출생’ 대책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1인가구 주거정책이 유독 청년세대에만 집중된 이유는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다. 청년이라면 당연히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혹은 낳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나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청년세대가 아닌 1인가구는 정책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1인가구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은 집단은 여성 노인임에도 청년세대에 하듯 대대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년 빈곤통계연보 참조). 그 이유를 여성 노인이 ‘정상가족’에서 탈락한 비노동인구 비가임기 여성이기 때문이라 보면 너무 지나친 시각일까.(공공임대주택 입주 가산점을 받기 위해 임신진단서까지 제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리 지나친 판단은 아닐지 모른다.)

공공임대주택 종류만 보더라도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많은 경우 1인가구에는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불리는 ‘원룸’을 공급한다. 앞서 말한 장기 공공임대주택은 나이, 자녀 수, 해당 지역 거주 기간 등을 충족하지 않으면 감히 넘볼 수 없었다. 이는 가족형태에 대한 차별이자 빈곤에 대한 편견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있었고, 실제로 1인가구가 급증하자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행복주택과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1인 청년 가구에 주어지는 집은 대체로 원룸이다. 원룸은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집어넣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다. 최저주거기준을 겨우 상회하는 5~6평짜리 원룸 안에서 1인가구는 식사, 공부, 수면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이런 집을 공급하는 이유는 1인가구를 임시적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곧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국가에 인구를 보탤 것이다. 따라서 1인가구에는 ‘정상가족’을 이루기 전까지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아주 최소한의 재생산만을 보장하는 임시거처가 주어진다. 1인가구를 독립하기 전의 원가족에 예속된 상태로만 바라보기도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2018년 10월을 기준으로 개별급여 중 주거급여에 한해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으나 30살 미만 비혼 청년 가구의 경우 주거급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후 원가족과 따로 거주할 경우 주거급여를 분리 지급할 수 있도록 바뀌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거주지가 다를 경우에 한하며, 독립가구가 아닌 분리가구로 인지한다는 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처럼 정부는 1인가구 주거정책의 ‘실제 대상자’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청년주거정책, 아니 인구정책의 하위 카테고리로 인식할 뿐이다.

탈락한 사람을 빈곤으로 몰아가는 자본과 정상성

“거기 들어가면 따로 살아야 하잖아.” 언젠가부터 내 친구들은 공공임대주택 청약을 넣지 않는다. 한번은 친구네 집 근처에 경쟁률이 낮은 아주 좋은 건물이 공공임대주택으로 나왔기에 청약을 넣으라고 했다. 하지만 안 넣을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 넣는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오랜 시간 함께 산 동성 애인이 있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에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계약자의 무주택 직계존비속이어야 한다. 친구도, 동거인도, 친척도,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형제자매도 신고할 수 없다.

결국 현재의 정책기조는, 정상성에 편입하지 않으면 시민의 권리와 복지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 혹은 협박이나 다름없다. 혼인과 혈연으로 만들어진 정상가족 체제에서 탈락한 이들은 복지 시스템에서도 탈락한다. 그리하여 인구정책이나 다름없는 정상가족 중심의 주거정책은 곧 계급 재생산 수단으로 작동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칼날이 사람들의 삶을 재편하고, 복지가 장악하지 못한 빈곤의 자리는 시장이 잠식한다. 자본과 정상성은 그렇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탈락한 사람들을 빈곤으로 몰아간다.

2019년 민달팽이유니온과 가족구성권연구소는 ‘모두를 위한 주거권’ 강의를 공동 기획했다. 강사로 참여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은 가족제도에 대한 논의 및 소수자들의 다양한 가족실천 행동을 소개했다.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2019년 민달팽이유니온과 가족구성권연구소는 ‘모두를 위한 주거권’ 강의를 공동 기획했다. 강사로 참여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은 가족제도에 대한 논의 및 소수자들의 다양한 가족실천 행동을 소개했다.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주거정책에서의 1인가구는 바로 이들, 탈락한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나 다름없다. 정상성도 자본도 가지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 말이다. 실제 1인가구의 절반은 가난하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년 빈곤통계연보 참조). 그들은 갖가지 이유로 정상가족에서 ‘탈락’했거나 정상가족을 선택하지 않는다. 혼자가 편한 사람들, 이성애를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으나 함께 살지만 않을 뿐인 사람들, 혈연관계도 혼인관계도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공동체가 된 사람들. 이들은 같이 살고 싶어도 같이 살지 못하며, 같이 살아도 같이 사는 것이 아니다. (‘성소수자 가족 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발표를 보면, 실제로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동성 커플은 가구 현황에 입력 자체가 불가능했다.) 복지시스템은 다양한 존재를 지워버림으로써 빈곤 상황을 되풀이시킨다.

복지제도가 수용하는 가구 범위가 지나치게 좁아서 사각지대가 많다는 비판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비판 입장은 달랐지만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는 데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건 공통됐다. 이러한 비판은 여러 차례 법적 제도로 현실화하려는 조짐을 보였다. 과거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사회적 가족도시 구현을 위한 1인가구 지원 기본조례’를 참고해 “사회적 가족”의 개념을 구체화한, 조례 단위의 ‘생활동반자법’을 만들려 했다. 2023년 4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최초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출처: 통계청

출처: 통계청

지금의 나와 언젠가의 당신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가구에서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33.4%, 즉 3분의 1에 이른다. 처음으로 그 수가 700만 명을 돌파했으며, 동시에 비친족 가구의 수 또한 엄청난 증가폭을 보이며 47만을 돌파했다. 국가가 이들의 존재를 모른 척하는 동안 작은 물결은 어느새 파도가 됐다.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이 많은 사람을 1인가구 혹은 비친족 가구라는 이름으로 무마할 수는 없다. 이제는 혼인제도가 아닌 다른 형식의 제도를 마련해 1인가구 뒤에 있는 존재들을 밝혀내야 할 때다.

그들은 정상성과 자본 사이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 오직 1인으로서만 호명되는 사람들, 하지만 기어코 이 견고한 톱니바퀴에 균열을 낼 사람들이다. 지금의 나와 언젠가의 당신이다.

김경서 전 민달팽이유니온 정책국장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특별한 변신,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통권호를 아홉 번째 내놓습니다. ‘21이 사랑한 작가 21명’,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비거니즘의 모든 것, 비건 비긴’(Vegan Begin) 등에 이어 ‘집’을 열쇳말로 삼았습니다. 한옥, 농막, 협소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집에 깃든 사연, 반려동물을 위한 집, 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담은 집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다양한 집의 존재 이유와 미래 전망도 더했습니다. _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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