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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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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박이 ‘부모’가 그룹홈 아이들에게 안정감 준다”

그룹홈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 인터뷰
“아동의 죽음보다 학대 예방에 더 관심 가져야”
등록 2023-08-07 19:59 수정 2023-08-12 00:37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이 7월21일 서울 종로구 삼봉로 원장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이 7월21일 서울 종로구 삼봉로 원장실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이 가장 많이 찾는 아동복지 전문가다. 2008년부터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한 정 원장은 아동복지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중 하나는 ‘가정 외 보호아동’이 자신이 생활하는 시설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보호 만족도를 조사한 것이다. 양육시설·그룹홈·가정위탁 세 유형의 시설에서 보호받는 494명을 대상으로 5년 동안 아동·청소년의 만족도를 조사해 비교했다. 연구 결과, 그룹홈 아동의 보호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그다음은 가정위탁, 양육시설 순이었다.

아동 관련 공공·민간 기관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한국아동복지학회·한국청소년복지학회 회장을 역임한 정 원장은 2023년 4월 2대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2019년 보건복지부 산하에 생긴 공공기관으로, 민간에 분산·운영 중이던 8개 아동 관련 사업의 중앙조직을 통합해 설립됐다. 입양, 학대 예방, 자립 지원, 권리 증진 등 아동복지 정책과 서비스를 총괄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정 원장은 “간단히 말해 보건복지부와 현장의 가교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사람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우리 시대의 방정환 선생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아동학대 예방과 원가정 회복이 중요

—아동학대 신고가 늘고, 2021년 정인이 사건 이후 ‘즉각 분리 제도’가 생기면서 보호아동 건수가 늘었다. 현재 있는 시설로 감당할 만한 상황인지 궁금하다.

“학대한다고 모두 분리되는 게 아니다. 그중 일부만 가정에서 분리되기 때문에 기존 양육시설·그룹홈·가정위탁에서 아직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 전체 아동 수가 감소하고 있기에 정원 대비 현원이 낮은 상황이다. 그리고 분리시키는 게 능사는 아니다. 애초에 원가정 분리가 생기지 않도록 아동학대를 사전에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학대 이후 원가정을 어떻게 회복할지도 중요하다.”

—양육시설·그룹홈·가정위탁의 아동보호 만족도를 조사한 연구에서 그룹홈 거주 아동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가정과 유사한 환경이 중요하다. 일반 가정과 비슷하게 아파트 등 주택을 이용하고, 양육시설처럼 간판을 달아서 표시가 나는 것도 아니다. 아동 처지에선 낙인감을 피하고 안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그룹홈의 강점이 아닐까 싶다. 이전에 시설에서 퇴소한 아동·청소년의 ‘자기 공개 경험’을 연구한 적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시설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밝히는 것이 ‘매번 심판대에 서는 기분’이라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아동이 그 안에서 생활하는 방식도 중요하다고 본다. 시설은 종사자들이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한다. 보호대상 아동의 처지에선 하루 동안 부모가 세 번 바뀌는 셈이다. 그룹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당시 조사에선 실무자들이 3교대를 해도 많은 그룹홈 시설장이 ‘붙박이’ 생활을 했다. 한 사람이 계속 있다는 것 자체가 아동에게는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아동·청소년은 그런 안정감이 컸기에 다른 곳보다 만족도와 자존감이 높게 나타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양육시설도 ‘가정형 거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시설은 대규모 인원이 생활했는데, 소규모 인원이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아무리 종사자들이 아동과 서로 대화하고 일관성 있게 양육하더라도 가정에서는 부모가 24시간 안에 세 명씩 바뀌진 않는다. 이 부분은 아동권리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정위탁 만족도가 다른 이유는

—가정과 유사한 곳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면 가정위탁 보호를 받는 아동·청소년의 만족도가 가장 커야 할 것 같은데 의외의 결과다.

“가정위탁 보호의 형태는 다양하다.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일반 가정에서 보호받거나, 할머니·할아버지 등 혈연관계가 있는 가정에서 보호받기도 한다. 자녀가 있는 친인척의 보호를 받을 때도 있다. 유형이 다양하기에 ‘가정위탁’이라고 한꺼번에 묶어서 보는 게 어렵다. 예를 들어 보호자가 조부모일 경우, 아동·청소년이 돌봄을 받는 게 아니라 반대로 돌봄을 제공하게 될 수도 있다. 가정위탁 형태는 다양해서 양육시설·그룹홈과 비교하기 좀 어려운 것 같다.”

—가정 외 보호아동은 학대 피해를 경험하면서 발달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많다. 아동복지시설 종사자가 심리·정서적 문제가 있는 아동을 돌보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정부는 어떻게 지원하고 있나.

“현재 아동권리보장원은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아동복지시설 아동 치료·재활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심리·정서적 문제가 있는 아동에게 상담·심리 치료비를 지원하고, 종합심리검사 비용 등을 지원한다. 그런데 예산이 한정됐기에 필요한 아동에게 모두 지원할 수 없고, 또 ‘신청주의’에 따라 신청하지 않으면 지원받지 못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 밖에 보건복지부는 2021년부터 17개 시·도 권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거점 심리지원팀’을 뒀다. 전문인력 세 명이 학대 피해 아동에게 체계적인 심리치료를 지원하고, 의료기관을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아동학대 사건) 수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늘려갈 필요가 있다. 2023년부터는 광역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인 ‘새싹지킴이병원’을 전국으로 확대해 운영하는 등 병원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의 ‘봄볕’ 그룹홈 현관.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동·청소년의 신발들이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경기도 화성시의 ‘봄볕’ 그룹홈 현관.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동·청소년의 신발들이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전체 아동학대 사례 중 재학대가 14.7%

—한국에서 아동학대 논의는 ‘아동의 죽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아동학대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회복을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적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는 아동이 학대로 죽거나 다칠 때 사회적 관심이 가장 많다. 그 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아동학대 관련 정책에서 처벌은 일부이고, 그 외에 많은 사안이 있지만 처벌에만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부모의 친권이 완전히 박탈되지 않는 이상, 아동이 원하고 사례결정위원회가 원가정 복귀가 바람직하다고 결정하면 아동은 원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학대 뒤 아동이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아동의 건강과 안전, 부모의 교육·치료·재활, 원가정 회복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21년 기준으로 전체 아동학대 사례 가운데 재학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14.7%다. 이 수치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학대 행위자들은 거부적 성향이 있어 접근과 치료·교육·재활 등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2023년 10월부터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사례관리전문기관으로 거듭난다. 그동안은 사건 조사와 사례관리를 둘 다 했는데, 공공이 아동학대 조사를 맡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례관리만 전담한다. 재학대 예방과 가족 기능 강화를 위한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사례관리를 하는 아동을 만나 회복됐는지도 확인하고, 원가족도 아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가정 복귀 프로그램 진행 등을 전담하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룹홈이나 시설 관련 중앙지원 조직 없다”

—아동학대, 가정 외 보호아동에 대한 방안으로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원래는 사업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그보다는 조직에 좀더 신경 쓰려 한다. 가정 내에서 성장할 수 없는 아동을 통합 지원하는 조직체계를 만들려 한다. 아동권리보장원은 8개 기관을 합쳐 만들어졌다. 여기에 양육시설이나 그룹홈 관련 중앙지원 조직은 없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입양·가정위탁·자립 등을 지원한다. 사실상 아동·청소년의 성장 과정에서 중간단계 일부가 빠져 있다. 가정 내에서 성장할 수 없는 아동들을 체계적으로, 통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아동권리보장원이 증거에 기반한 사회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새로운 정책을 만들 때 먼저 시범사업을 한다. 그 뒤 시범사업을 평가해 전체로 정책을 확산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문제가 생기면 신념에 따라 정책부터 만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후 정책은 지속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정책이 만들어지면 적어도 1~3년이 지나서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수정·보완한 뒤 본정책으로 넘어가는 게 필요하다. 이런 절차가 증거에 기반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아동권리보장원이 있는 것도 증거에 기반해 정책을 수립·집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아동권리보장원 내부에 정책평가센터가 있는데, 아직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특별한 변신,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통권호를 아홉 번째 내놓습니다. ‘21이 사랑한 작가 21명’,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비거니즘의 모든 것, 비건 비긴’(Vegan Begin) 등에 이어 ‘집’을 열쇳말로 삼았습니다. 한옥, 농막, 협소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집에 깃든 사연, 반려동물을 위한 집, 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담은 집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다양한 집의 존재 이유와 미래 전망도 더했습니다. _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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