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깔끔하다. 집이 넓어서… 어, 생각보다 큰 집은 아니네. 아, 가구가 별로 없어서… 음, 가구도 있을 거 다 있는데. 왜 넓어 보이지?’
tvN 예능프로 <신박한 정리>에 출연했던 공간 크리에이터 이지영(44) ‘새삶’ 대표의 집 안에 들어서자 처음 든 느낌이었다. 방문 전에는 왠지 라이프스타일 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화려할까 상상했는데 직접 가보니 평범한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구와 물건이 잘 정돈된 덕에 깔끔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의 한 26평 아파트에서 주중에는 이 대표와 중1 아들이 지내고 주말엔 대구에 있는 남편과 고1 딸이 와서 네 식구가 오손도손 산다. 거실에는 넓은 소파가 있고 베란다 창가 쪽에 테이블이 있는데, 테이블이 놓인 공간을 이 대표는 가장 좋아한다. 여기서 일하고 밥도 먹는다. 소파 맞은편에는 1인용 의자와 기타가 있다. 아들이 기타를 치는 자리다.
거실에 티브이(TV)는 보이지 않는다.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 식탁도 없다. 가족이 모이면 상을 펴서 둘러앉아 먹는다고 한다. 주방 옆 작은방은 문이 없다. 멀티룸으로 쓰는 공간인데 작은 티브이가 여기 있어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티브이를 본다.
연예인과 일반인의 집을 정리해주고 그들의 마음속 응어리까지 풀어줬던 이지영 대표. ‘정리왕’은 집을 어떻게 해놓고 살지 많은 시청자가 궁금해했다. 그동안 언론에 집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 대표는 <한겨레21>의 ‘집’ 통권호 취지에 공감해 처음으로 집 내부를 공개했다.
―정리 전문가답게 집이 깔끔하네요. 대표님의 공간 활용법이 배어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주방에 커피머신 올려놓은 수납장에 식재료가 있는데 저게 전부예요. 저 안에 음식이 다 들어 있으니 재고 파악이 잘돼요. 흔히 ‘팬트리’라고 하는 건 서양에서 들어와 우리나라 생활과 맞지 않아요. 집에 들어오는 길에 편의점이 있고 배달이 잘되는 우리는 그렇게 음식을 쟁여놓을 필요가 없어요. 왜 집을 편의점으로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수납장 안까지 물건을 열 맞춰 정리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늘 쓰는 물건인데 호텔식 수건 접기나 ‘칼각’ 정리 같은 건 굳이 필요하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공간을 깔끔하게 해둬요. 그리고 집에 철 지난 앨범이나 아이들이 어릴 때 썼던 것 등 과거의 물건이 없어요. 미래를 대비해 쟁여둔 물건도 없고요.”
―스스로를 ‘공간 크리에이터’라고 부릅니다. 본인이 직접 이름 붙인 직업이죠.
“집을 변화시켜주는 사람 가운데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있고 정리 전문가가 있잖아요. 저는 사실 정리만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정리를 통해 공간을 마련하고 공간을 변화시켜주는 사람이거든요. 제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매일 하는 정리 습관이 있나요.
“우리 집은 시스템화가 돼 있어 모든 가족이 썼던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놓습니다. 집안일을 하면서 많이 싸우고 힘들어하는 이유가 ‘이거 누가 여기 갖다놓았어?’ ‘이거 어디 갔니?’ ‘제자리 안 갖다놓니?’잖아요. 아들도 집에 오면 옷을 벗어 세탁기에 갖다놓는 것, 밥 먹고 개수대에 그릇을 놓고 테이블을 닦는 것, 욕실을 쓴 뒤 스퀴지(고무 밀대)로 물기 닦아내는 것까지 해요. 그게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집안일은 제가 하는 일이 아니에요. 집에 사는 사람이 같이 해야 하는 일이에요. 그렇게 하면 진짜 집안일은 많이 할 게 없습니다. 정리 한 번 하고 나면 어떻게 유지하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는데요. 유지하려면 가족이 같이 해야 하고, 습관을 바꿔야 해요.”
―책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에서 자살하려던 사람이 집 정리 뒤 마음을 바꿨다는 사례가 인상적이었어요.
“의뢰인은 화려한 이력을 가졌고 잘나가는 분이었는데 좀 우울해 보였어요. 집도 무척 넓고 물건이 많았어요. 저희 팀 15명이 가서 사흘간 정리하면서 묵은 걸 비워내고 가구 구성을 다르게 하고, 유학 간 자녀 방은 의뢰인이 쓸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정리 마지막 날, 돈 계산을 한다고 현관 앞에 있는데 갑자기 그분이 얘기하시더라고요. 사실은 이 집 안에 있는 물건처럼 자신도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외로워서 죽으려 했다고요. 아파트 난간에 섰는데, 내가 죽으면 많은 사람이 어지럽힌 집 안을 보고 욕할 것 같아 집을 정리해놓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첫째 날 저희가 묵은 걸 다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마음속에도 묵은 체증이 가셨대요. 유학 간 자녀의 방을 고객의 운동방으로 만들어주니 운동하는 자기 모습이 상상되고, 먼지 쌓인 커튼을 걷어내고 새 커튼을 달아 햇살이 들어오고 집에 여유가 생기니까 죽으려던 마음이 없어졌다고 해요. 내가 좋아하고 돈 벌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지만 단순히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걸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구의 삶을 어루만질 수도 있는 일이라는 자부심이 들었어요.”
―정리할 때 ‘고정관념을 깨라’ ‘가구보다 무거운 게 생각이다’라고 강조하시는데요. 우리가 흔히 갖는 고정관념이 뭔가요.
“한국 사람들은 모델하우스에 그대로 사는 것 같아요. 그건 하나의 예시이지 똑같이 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집 식구들은 요즘 티브이를 많이 안 봐요. 그렇다면 넓은 거실을 가족이 좋아하는 거로 꾸며보세요. 그리고 요즘엔 부부가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서 따로 자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도 왜 큰방을 꼭 침실로 써야 할까요. 어린 자녀들이 있으면 안방을 아이들 방으로 하면 좋고, 옷이 많은 사람이면 드레스룸으로 해도 돼요. 침실은 잠만 자면 되기 때문에 제일 작은 공간으로 해도 되거든요. 자기 라이프스타일을 돌아보고 자신한테 맞춰 살아야 해요.”
―저도 한때 미니멀 라이프에 빠져 물건을 막 버렸다가 필요해서 다시 산 경험이 있어요.
“일본식 미니멀리즘 때문에 물건을 막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옷도 신발도 많아야 해요. 그리고 물건을 비울 때 주변에 있는 것들, 쓰고 있는 물건을 비우면 또 사게 돼요. 묵은 걸 버려야 해요. 추억이 있어 버리기 힘든 것들 있잖아요. 집은 한정적인데 추억은 자꾸 늘어나요. 우리는 오늘을 살아야 해요. 좀 스마트하게 하려면 사진 찍어놓고 비디오테이프는 영상파일로 변환해서 보관해보세요. 추억의 물건을 사과상자에 담아두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네이버 ‘리빙판’이나 ‘오늘의집’을 보면 가구를 싹 바꾸고 싶은 유혹에 휩싸입니다.
“자기 취향을 모르고 이것저것 사다보면 집이 정돈되지 않아요. 비워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을 수 있어요. 정리는 버리는 게 아니에요. 비워내고 남겨보고 그래서 제대로 채우는 거예요.”
―정리가 귀찮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해도, 안 해도 표가 안 나서 그래요. 좋은 옷을 입는 것과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좋은 옷을 입으면 스스로 태도가 달라지고 남들도 바로 알아보고 피드백을 주잖아요. 집 정리는 해도 남이 모르니까 급하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이 모든 것을 하지는 않잖아요. 결국은 내가 즐겁자고 하는 거예요. 계절이 돌아왔으니까, 잔소리 들으니까 정리하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면 분명히 즐거워지고 그 공간에 있는 내가 달라져요.”
―흔히 집안일은 밖에서 돈 버는 일에 비해 시간을 많이 뺏기고 돈이 안 되는 거라는 인식도 있는데요.
“집안일은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어요. 바깥에서 뭔가를 잘할 수 있게 하는 건 결국 우리 가족이 머무르는 공간을 잘 정리·정돈하고 집에서 잘 먹는 거예요. 밖에서 돈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근원은 살림에 있다고 봐요.”
―대표님의 유튜브 강의 중에 ‘사람들이 열심히 돈 벌고 주식·부동산 공부해 집을 사는 것에만 관심 있고, 그렇게 산 집을 유지하는 데 관심 없다’고 한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가 좋은 옷이나 신발, 가방을 사면 무척 아끼잖아요. 가방 하나도 소중히 여기면서 왜 제일 크고 비싼 집은 그렇게 쓰고 있나요. 집을 돌보면 내가 성장하고 가족이 힘을 얻게 돼요. 총체적으로 살림의 중요성을 진짜 이야기하고 싶어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뭔가요.
“물건 몇 개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얘기할 게 아니에요. 제가 개그우먼 박나래씨 집을 정리하러 갔는데 그는 흔히 맥시멀리스트라고 하잖아요. 근데 제가 생각할 때 박나래씨는 미니멀리스트예요. 물건이 어디 있는지 다 알고 다 쓰고 있어요. 썩어 나가는 게 없어요. 내 물건을 머릿속에 다 저장하고 활용하고 내가 그 물건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미니멀이라고 생각해요. 가짓수가 적어도 내가 뭘 얼마나 가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집 안의 내 물건을 통제하지 못하면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관계도 잘 풀어나가기 어려워요. 사람은 내 마음대로 안 돼도 물건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걸 해보면 습관이 되고 결국은 밖에 나가 사람을 대할 때도 관계를 잘 풀어나갈 수 있다고 봐요.”
―집이란 어떤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집은 나다운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남들한테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요. 모던이 유행이니 모던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나답게 꾸며서 내가 그곳에서 편히 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타일이 필요 없어요. 그냥 나를 위한 공간이어야 해요.”
글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사진 박승화 선임기자 eyeshot@hani.co.kr이지영 대표는 누구?15년간 보육교사로 일했던 그는 30대 후반에 경력 단절을 겪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집 정리’로 사업을 구상했다. 먼저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무료로 집 정리를 해주겠다’는 글을 올려 다섯 집을 정리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신청인들이 고마워하며 음식을 대접하고 자발적으로 돈을 건네기도 해서 사업을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2018년 ‘우리집공간컨설팅’ 회사를 차리고 블로그·유튜브 등으로 홍보하던 중 배우 신애라씨가 유튜브를 보고 tvN <신박한 정리> 제작진에게 이 대표를 추천했다. 2022년 회사 이름을 ‘새삶’으로 바꿨다. 2023년 7월 현재 회사 정직원이 42명이고, 지난 5년간 6천 가구의 집을 정리했다. 이 대표는 공간 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아카데미도 운영한다. 현재 새벽 5시부터 경영 노하우를 구독자와 공유하는 유튜브 라이브방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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