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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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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싸고 친구도 사귈 수 있다…어디야?

사회주택 ‘에어스페이스’ 정필운씨
등록 2023-08-06 07:20 수정 2023-08-11 01:21
정필운씨 부부의 집 부엌 겸 거실 모습.

정필운씨 부부의 집 부엌 겸 거실 모습.

“맨날 각자 집에서 돌아가며 모여요. 어떤 날은 우리 집에서 삼겹살 구워 먹고, 어떤 날은 저 집 가서 가리비 구워 먹고. 인터뷰하게 되면 저희는 그게 제일 (이 집의) 강점이라고 말하자, 이렇게 얘기했거든요.”

‘한 건물에 사는 이웃과의 어울림’. 2023년 6월21일 만난 정필운(27)씨는 지금 집을 이렇게 정리했다. 필운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사회주택 ‘에어스페이스 4호점’에 산다. 5층 규모 다세대주택으로 총 13개 집이 있는데, 모두 ‘투룸’이다. 신혼부부용인 66~69㎡ 규모 집이 7개, 31~37㎡ 규모 1인가구용 집이 6개다. 2022년 7월 말 입주해 1년가량을 지냈다.

사회주택은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경제 주체가 공급하는 주택으로, 부담 가능한 임대료로 오랜 기간 살 수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같은 공기업이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과도 유사하다. 유럽 등지에선 국가나 공기업이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 사회주택의 하위개념으로 이해된다. 우리와 달리 그만큼 사회주택이 더 보편적이다.

2023년 6월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사회주택 ‘에어스페이스 4호점’ 앞에 선 정필운(27·오른쪽), 김도원(28)씨 부부와 아기. 사회주택은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경제 주체가 공급하는 주택으로, 시세 70~80% 수준의 부담 가능한 임대료로 오랜 기간 살 수 있다.

2023년 6월2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사회주택 ‘에어스페이스 4호점’ 앞에 선 정필운(27·오른쪽), 김도원(28)씨 부부와 아기. 사회주택은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경제 주체가 공급하는 주택으로, 시세 70~80% 수준의 부담 가능한 임대료로 오랜 기간 살 수 있다.

윗집서 쿵쿵거려도 ‘아이가 아직 안 자네’ 할 뿐

“일단 정말 든든해요. 층간소음은 무조건 이해해주고요. 어차피 다들 애가 있으니까. 윗집에서 쿵쿵 소리가 나면 ‘○○가 아직 안 자네’ 그래요. 언젠가는 501호가 고데기를 꽂아놓고 나갔다며 확인 좀 해달라 해서 제가 올라가서 봐주기도 했어요. 단톡방에서 ‘오늘 점심 같이 먹을 사람’ 찾기도 하고요.”(정필운씨)

사회주택은 입주자 간 어울림(커뮤니티 활동)을 중시한다. 에어스페이스를 짓고 관리하는 사회적기업 ‘어울리’는 입주자들에게 미리 아기 울음소리나 층간소음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사전 양해를 구하고 일종의 다짐을 받았다. 한 달에 한 번 입주자 1인당 1만원의 활동비를 지원해 모임을 연다. 벽과 바닥, 천장을 공유하는 공동주택 입주자 간에 어울림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갈등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공동주택 생활의 만족도 늘어간다. 필운씨가 사는 4호점의 경우 1층 어울림 공간이나 4층 공용테라스에 모여 먹고 마시며 논다. 필운씨와 김도원(28)씨 부부는 이 집에 사는 동안 다른 신혼부부들과 친해졌다. 1층 어울림 공간에서 월드컵 경기를 함께 본 4층 부부들과 먼저 친해진 뒤 5층 사람들을 모임에 초대했다. 그렇게 네 집이 서로의 생일을 챙겨가며 한 달에 한 번 이상, 많을 땐 사흘마다 모임을 가졌다.

필운씨는 제주도에서 직장을 다니다 3년 전 서울로 왔다. 서울은 너무나 비좁고 답답했다. 보증금 2천만원, 월세 50만원에 오래된 다세대주택의 작은 방을 구했는데 ‘할머니 집주인’의 간섭이 심했다. 필운씨가 출근한 사이 방에 에어컨을 새로 설치하러 들어와선 신발장 위치를 멋대로 바꿔놨다. “이렇게 써보고 맘에 안 들면 다시 원래 위치로 돌리라”면서. 계단에서 보이는 창문을 통해 방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친구들이 놀러 왔다 가면 ‘이번 달엔 몇 명이 왔으니 물세를 얼마로 내자’고 했다. 필운씨는 다음 이사 땐 반드시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구한 첫 신혼집이 이곳이다.

에어스페이스 4호점은 어울리가 서울시의 토지를 30년간 장기임대(토지임대부)해 지었다. 신혼부부나 청년 같은 주거 취약층이 입주 대상이다. 2년 단위로 계약하지만 원하면 최장 10년까지 살 수 있다. 임대료는 시세 80% 이하(신혼부부는 70% 이하)이고, 보증금 비율도 40~70%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필운씨네는 보증금 2억800만원에 월세 44만원을 낸다. 임대료는 4년까지 동결된다.

“서울에서 이 돈으로 이만한 크기의 집을 구하려면 욕실이 춥거나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주차를 못하거나인데, 여긴 다 새것에 아기가 만지고 물어뜯어도 되고 욕실도 크고 주차 가능하고 병원 가깝고. 고향 친구들은 저더러 ‘안정을 찾은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2022년 10월 열린 에어스페이스 4호점 첫 입주자 총회. 어울리 제공

2022년 10월 열린 에어스페이스 4호점 첫 입주자 총회. 어울리 제공

주말에도 애쓰는 집주인의 ‘살뜰함’

역시 서울 신림동에 있는 ‘에어스페이스 2호점’ 거주자 배시은(25)씨와는 6월30일 만났다. 시은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내내 기숙사, 하숙집, 원룸을 전전했다. 2년마다 집을 바꿔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집은 “불안의 원천, 불안함을 촉진하는 단어”다. 다행히 2022년 2월 에어스페이스에 들어오고 나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서울 집이 워낙 비싸니까, 20억 30억 같은, 언론에 나오는 것만 봐도 딴 얘기 같잖아요. 여긴 월세 부담도 적고 웬만하면 내쫓지 않아요. 부모님도 엄청 좋아하셨어요. 다시 이사해야 할 때도 사회주택으로 알아보려고요.”

시은씨가 직전에 살던 학교 앞 원룸은 부엌이 딸린 20㎡ 규모였다. 지은 지 15년 된 다세대주택인데 보증금 500만원에 관리비를 포함한 월세가 60만원가량이었다. 오래되고 허술한 자물쇠를 열쇠로 열어야 했고, 환기가 안 되는 부엌에선 벌레가 자주 생겼다. 부모님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뒤 비싼 월세가 부담됐다. 하지만 서울의 대학교 앞 자취방은 죄 비슷한 수준이었다. 에어스페이스로 오고 나선 부담이 절반으로 줄었다.

새로 지은 다세대주택인 4호점과 달리 에어스페이스 2호점은 오래된 고시원을 개조해 만든 공유주택(셰어형)이다. 상가 건물 3층과 4층에 층마다 20개 넘던 방을 6개로 줄이고 방마다 넓은 창을 달았다. 7~8㎡ 크기의 방은 각자 쓰고 거실과 주방, 샤워실, 화장실을 공유하는 구조다. 한 층 면적이 135.3㎡다. 20~30대 여성이 입주 대상으로, 층 입구에도, 각자의 방에도 비밀번호로 여닫는 도어록이 설치돼 있다. 이사 때 와본 시은씨 어머니가 가장 마음에 들어한 부분이다.

에어스페이스 2호점에 사는 배시은(25)씨의 방 내부. 낡은 고시원을 개조해 방 크기를 키우고 창을 달았다.

에어스페이스 2호점에 사는 배시은(25)씨의 방 내부. 낡은 고시원을 개조해 방 크기를 키우고 창을 달았다.

윤 정부 들어 LH 사회주택사업단 사라져

시은씨가 보기에 어울리는 ‘친절한 집주인’이다. “김수정(46) 어울리 대표님이 애쓰는 게 느껴져요. 입주자 회의를 정기적으로 하고 싶어 하고, 2~3개월에 한 번씩 층 대표를 바꾸는데 따로 불러서 불만 듣는 자리도 만들어요. 주말엔 직원이 근무하지 않으니 일 생기면 자기한테 직접 연락하라 하고. 얼마 전에 다른 층 친구가 주말에 불러서 나왔더라고요.”

직원들이 또래이다보니 필요한 걸 쉽게 이해한다. 입주 뒤 어울리 직원이 된 이도 있다. 입주자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에어컨 청소 얘기가 나오자, 어울리가 2만원씩만 받고 에어컨을 분해해 청소하는 업체를 불러줬다. 얼마 전 천장 보수 공사 땐 담당 직원이 과정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카톡방에 공유했다. 각자의 방 외 공용공간은 일주일에 두 차례 ‘이모님’들이 와서 청소해준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게 일자리를 주는 지역 자활센터의 주거환경개선단에 어울리가 비용을 내고 제공하는 서비스다. 시은씨는 “입주자가 혼자 사는 대학생, 직장인이다보니 낮에 집에 잘 없는데 일일이 챙겨주니 정말 좋다. 한데 월세도 적게 받고 이렇게 해서 어떻게 (기업을) 운영하는지 살짝 불안하기도 하다”고 했다.

실제 사회주택을 공급하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은 비영리나 저영리로 운영된다. 그러면서 SH나 LH 같은 주택 관련 공기업이 할 일을 일부 대신한다. 아직은 비중이 극히 작다. 2023년 7월25일 현재 한국사회주택협회에 속한 70여 개 회원사 가운데 어울리를 포함해 실제 주택을 공급한 회원사는 40개가량이다. 5176호가 공급돼 운영 중이고 1542호가 추진 중이다. 국내 주택 수가 2191만7200호(2021년 기준)이니 사회주택의 비중은 0.03% 수준에 불과하다. 박원순 시장 시절의 서울시가 임대주택 8만 호 공급 목표를 발표하면서 2만 호를 사회주택으로 짓는 계획을 세웠고,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국토교통부가 ‘사회주택 활성화 방안’을 내어 해마다 2천 호 이상 공급을 목표로 했지만 제대로 구현되진 않았다. 윤석열 정부로 바뀌고 나선 LH에서 아예 사회주택사업단이 사라졌다.

에어스페이스 2호점 공용공간인 거실.

에어스페이스 2호점 공용공간인 거실.

낙선했지만 공약 지키려 시작

에어스페이스를 짓고 관리하는 사회적기업 어울리는 김수정 대표가 서울 관악 지역에 주거비 부담을 느끼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하자는 목표로 2018년 10월 설립했다. 1~4호 모두 서울대 고시촌 골목에 있다. 1·2호는 상가 공실과 낡은 고시원을 개조한 공유주택, 3·4호는 서울시 땅을 장기임대해 지은 다세대주택이다. 모두 시세 70~80%의 저렴한 비용으로 최장 10년 동안 살 수 있다. 애초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있던 김 대표가 사회주택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정의당 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공약 이행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김 대표는 “LH나 SH 같은 공기업이 해야 할 일의 일부를 대신한다고도 할 수 있지만, 사회주택은 그보다 더 세심한 관리가 이뤄질 수 있다. 입주자들이 좋은 집에서 지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글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사진 박승화 선임기자 eyeshoot@hani.co.kr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특별한 변신,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통권호를 아홉 번째 내놓습니다. ‘21이 사랑한 작가 21명’,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비거니즘의 모든 것, 비건 비긴’(Vegan Begin) 등에 이어 ‘집’을 열쇳말로 삼았습니다. 한옥, 농막, 협소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집에 깃든 사연, 반려동물을 위한 집, 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담은 집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다양한 집의 존재 이유와 미래 전망도 더했습니다. _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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