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초 사실상 전 재산일 수 있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이들이 잇따라 절망 속에 생을 마감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엔 20·30대가 많았다. 윤석열 정부는 경매 중단·유예 협조 요청 등을 뼈대로 한 뒷북 대책을 내놨을 뿐,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보증금 채권 매입’ 등 실질적 구제 방안은 외면했다. 이 와중에 곳곳에서 대규모 피해가 불거졌다.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에서부터 드러난 전세사기는 최근 세종시에서도 문제가 됐다. 한 부부가 갭투기로 1천 세대의 주거용 오피스텔(1~2인 가구용 도시형 생활주택)을 보유한 게 드러나 경찰이 수사 중인데, 피해자 절반이 젊은 공무원이다.
이런 가운데 협동조합을 이용한 전세사기 피해 구제안을 내놓은 곳이 있다. 제대로 작동한다면 피해자들은 시세 수준에서 보증금을 보전받고, 장기적으론 해당 지역에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효과도 있다. 2023년 7월4일 서울 명동 한국사회주택협회 사무실에서 문영록 상임이사를 만났다. 협회는 이즈음 한창 경기도 동탄의 전세사기 문제 해결에 매달려 있었다.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대규모 전세사기를 저지른 임대인은 박·장아무개씨 부부와 지·양아무개씨 부부다. 각 268채, 44채의 오피스텔을 갭투기로 소유했다. 전용면적 17~30여㎡에 보증금 8천만~2억2천만원 수준으로, 이 지역 여러 건물에 흩어져 있다. 동탄은 테크노밸리 등 청년 일자리가 많은 지역이라 1~2인 가구용 오피스텔이 많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2023년 6월9일 사기 혐의로 이들 임대인 부부와 공인중개사 등 6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소유권 이전 절차를 밟으라”고 하거나, 임차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피해자는 300여 명, 피해액은 220억여원에 이른다.
피해자인 임차인 일부(2023년 7월4일 기준 24명)는 5월 탄탄주택협동조합(탄탄하우징쿱)에 가입해 조합과 새로 임대차계약을 했다. 임차인들이 뭉쳐 스스로 임대인이 된 셈이다. 조합 설립은 사회주택협회가 주도했다.
“5월 초 협회가 경기도에 이 방식을 제안한 뒤, 5월11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대책을 발표했어요. 바로 다음날인 12일에 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었고요. 다시 사업자 등록하고 숨 가쁘게 달려왔죠. 이 와중에 피해자 설명회에 개별 상담, 물건 조사 등을 하고 5월 말 매매계약을 했습니다. 6월1일이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일이어서 그 이전에 계약해야 압류나 경매 등의 문제가 없거든요.”(문영록 상임이사)
다행히 이 지역의 피해 물건은 대부분 선순위 채권이 없었다. 다만 보증금을 시세보다 1천만~2천만원 높게 받은 상태였다. 조합은 조합원으로 가입한 피해자들을 대신해 임대인에게서 오피스텔 소유권을 넘겨받아 다시 피해자들과 임대차계약을 했다. 시세의 90%를 전세보증금으로 하고 10%는 협동조합 출자금으로 설정했다. 퇴거 때 전세보증금을, 조합 탈퇴 때 출자금을 돌려준다. 이러면 피해자 처지에선 시세만큼 보증금을 보장받는다. 시세보다 보증금을 더 낸 터라 시세 차액만큼 손해가 있지만, 보증금을 아예 돌려받지 못하거나 원치 않은 오피스텔을 대출까지 해가며 소유할 필요가 없다. 재산세 부과 대상이나 다주택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
문 이사는 “어차피 오피스텔은 매매가 잘되지 않고 전세사기로 인정받아 경·공매에 내놔도 동탄 지역은 낙찰률 20%, 낙찰가율이 60% 수준”이라고 했다. 잘 팔리지 않고, 팔아봐야 감정가의 60%밖에 못 받는다는 얘기다. 게다가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피해자가 부담한 취득·등록비용(거래가액의 약 5%)이나 대출이자,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조합 처지에선 당장 보유 물건 전부가 전세라 별도 수익이 없다. 하지만 조합원 퇴거 뒤 새 임차인과는 반전세로 계약해 월세 수입을 만들 계획이다. 필요한 비용을 쓰고, 남은 돈은 적립해 보증금·출자금 반환용으로 쓴다. 다만 조합원 다수가 가입 뒤 바로 탈퇴해버리면 곤란하므로 1년의 유예기간을 둔다. 결혼 등 당장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구해 조합과 전세계약을 하면(엑시트·Exit) 바로 처리해주기로 했다. 실제 문 이사는 한겨레21과 만난 이날 저녁 첫 ‘엑시트’(이 경우 피해구제) 계약을 하기로 돼 있었다. 전세사기를 당하고도 큰 피해 없이 안전하게 나가는 첫 사례가 만들어진 것이다.
5월14일 동탄에서 열린 조합 설명회에서 최경호 경기도 정책자문관은 이런 방식의 현금흐름이 창출되는 안정적 수준을 ‘조합원 50명’ 선으로 내다봤다. 최 자문관은 “화재보험료, 특별수선충당금, 수선유지비, 회계감사비 같은 법정 운영비를 다 내고도 가능한지를 계산해본 결과”라며 “조합원 수가 50명보다 많아지면 피해복구 속도도 빨라진다”고 강조했다.
당장 필요한 초기 자금은 경기도와 화성시 같은 공공의 지원과 함께 사회적경제 영역의 도움을 받을 계획이다. 협회는 2020년 재단법인 밴드,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사회연대은행과 같은 사회적금융의 도움을 받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퇴거한 청년 약 50명에게 보증금 5억원을 돌려준 경험이 있다. 이번 동탄의 전세피해자를 위해 설립된 탄탄주택협동조합도 사회적금융으로부터 대출 받고, 그 돈으로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면 그만큼 자산 여력이 만들어진다.
“물론 가격이 어찌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자산(오피스텔)은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저희가 떠안은 게 한 30억원 정도 되는데 이 중 90%는 전세보증금이고 10%는 출자금이라 기존 금융권에선 대출이 나올 수 없어요. 근데 반전세로 돌리면 그만큼의 자산 여력이 생기고 담보가 되죠.”(문영록 상임이사)
사회주택협회는 전세사기 문제가 다 치유되고 나면 이들 오피스텔을 시세 80% 수준의 저렴한 임대주택(사회주택)으로 직접 운영하거나,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공기업에 매각해 공공주택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전세사기 구제는 사회주택이 갖는 강점 가운데 일부다. 일반 영리기업이 전세사기 물건인 오피스텔을 매입해 임차인 보증금을 보장하며 수익을 내겠다는 구상을 하기 쉽지 않다. 사회주택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경제 주체가 짓고 운영한다. 사회적 목적, 조합원을 위한 가치가 우선이라 비영리나 저영리로 운영된다. 특히 협동조합은 조합원 1인 1표로 운영돼 특정인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수익이 아니라 조합원의 안정적 주거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사회주택이 통상 시세의 70~80% 이하로 저렴하고, 10년까지 살 수 있어 안정적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공공도 사회주택의 순기능을 활용해 LH 등 주택 공기업이 할 일을 나눈다. 공공의 땅을 장기임대해주거나(토지임대부), 토지와 집을 모두 공공이 소유한 채 운영만 사회적경제 주체에 맡긴다(사회적주택, 최근엔 ‘테마형 임대주택’이 그런 경우). 사회적주택은 시세의 50% 이하다.
국내에 사회주택을 지은 것은 2010년대 초반부터다. 사회적기업 육성법(2007년), 협동조합 기본법(2012년) 등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서 시작했다. 한국사회주택협회는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사회주택 조례를 만든 2015년 출범했다. 그동안 주로 청년 등 주거 취약층이라 할 이들에게 사회주택이 공급됐다. 이젠 아는 사람은 아는, 저렴하고 안정적이며 질 좋은 주택이다.
“사회주택에 사는 청년들을 보면, 예를 들어 마을과집(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사회주택에 살다가 다시 아이부키(사회주택 기업)가 운영하는 사회주택으로 가고 그렇게 찾아다니더라고요. 장점이 있음을 아는 거죠. 장안생활(아이부키의 관광호텔을 개조한 사회주택, 안암생활도 같은 종류)에 사는 청년에게 ‘어떻게 여기 들어왔냐’고 물어보면 친구가 안암생활에 사는데 여기가 괜찮다고 해서 들어왔다, 그래요.”(문영록 상임이사)
국내 주택임대 시장에서 공공 비중은 초라하다. 국내 주택은 대략 자가가 55%, 임대가 45%다. 전체 주택 중 공공임대는 8%가량. 그나마도 전세임대나 분양전환 아파트 등 민간 소유이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민간 소유로 넘어갈 주택 등을 제외하면 4%대에 그친다는 게 시민단체들 주장이다. 사실상 다수가 민간인 것이다. 국내 사회주택은 현재 5176호가 공급돼 운영되고 있고 1542호가 추진 중이다. 국내 전체 주택 2191만7200호(2021년 기준)의 0.03%에 불과하다. 문 이사는 주택임대 시장을 사회주택이 선도해야 시장이 건강해진다고 강조했다.
“공공임대주택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주택이고 장점도 많지만 사회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많잖아요. 민간 시장에서는 전세사기 등 여러 문제가 생기죠. 사회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저렴한 임대료와 안전함, 주거 안정성 같은 것들입니다. 사회주택은 공공과 민간 사이에서 주택임대 시장을 건전하게 만드는 틈을 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회주택이 10만 호쯤 되면 한국의 임대시장 문화가 확 바뀔 겁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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