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수줍게 내민 명함에는 ‘탈시설 협동조합 도약(준) 준비위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약’은 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2021년 12월 출범했다. 그는 “이사급이야, 이사급”이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던 2023년 7월14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박기진(62)씨를 만났다. “아저씨, 약간 긴장하셨나봐.” 곁에 앉은 강자영 사회복지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사는 언제 하셨어요?”
“한 4년 됐나?”
“그 전에는 어디서 사셨어요?”
“시설, 시설요…. 자유가 없어요. 사다먹고 싶은 것도 있고, 해먹고 싶은 것도 있고, 친구도 만나고 싶은데. 공동생활이라….”
“음식 잘 해드세요?”
“그럼요.”
“뭘 제일 좋아하세요? 독립하니까 좋으세요?”
“김치찌개도 해먹고. (…) 김치찌개가 제일 쉬워요. 12시에 나가서 공공 일자리 일도 하고. (박씨는 평일 오후 1~5시 일한다.) 좋지, 뭐. 가끔 친구 만나 술도 한잔하고.”
발달장애 당사자인 박씨는 평생 병원과 시설을 전전하다 2020년 5월 ‘독립’했다. 탈시설을 ‘인권’이라 굳게 믿는 김치환·강자영·서재덕 사회복지사 등이 ’이웃’으로 곁을 지켰다. 김치환 복지사는 “누구도 원해서 시설로 가지 않는다. 다른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간 거다. 결국 강요, 강제된 입소”라고 말했다.
집을 알아보느라 숱하게 발품을 팔았다. 장애인의 탈시설을 위한 영구임대, 전세임대, 재개발임대 가리지 않고 찾아봤다. 계약을 마친 뒤 도우미와 함께 도배도 하고 살림살이도 장만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간절히 원하던 순간이기도 했다. 처음 가져보는 ‘내 집’이었다. 서재덕 복지사는 “시설 밖으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당사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탈시설을 지지해주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당사자의 장애 때문에 가족이 걱정하고 (탈시설에) 회의감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서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동생 2명과 누나 1명이 있다. 탄자니아에 사는 누나는 박씨에 대해 걱정만 하다, 임대아파트를 얻어 독립한 뒤 1년에 한 번 한국에 올 때마다 한 달 정도 박씨 집에서 같이 지낸다. 시설에서 생활할 땐 스치듯 잠깐 면회만 하고 돌아서야 했다.
“누나하고 한집에 있어보니까 좋아요?”
“괜찮아요, 아주 좋지. 내 집에서 (누나가) 있는 거니까, 자랑스럽고. (…) 산도 있고 좋아요, 경치가 좋아. 운동도 하고.”
시설에 있을 땐 당뇨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인슐린 주사까지 맞아야 했다. 이사 온 뒤 건강이 좋아져 주사를 맞지 않게 됐다. 시설에서 생활할 때를 묻자 박씨는 “갑갑했어요, 자유도 없고. 나오니까 활동도 있고, 내 집도 생기고. 좋아요, 참 좋아”라고 말했다.
임대 기한은 20년이다. 60대 박씨는 요즘 저축에 열심이다. “기한 되기 전에 새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박씨가 공문 한 장을 강자영 복지사에게 내민다. 한 달 14만9700원이던 임대료가 곧 15만7100원으로 인상된다는 내용이다. 글을 모르는 박씨에게 강 복지사가 “나랑 같이 해결하자”고 말했다.
“내 집에 오셨는데, 마실 거 드려야지.”
박씨 집에서 고개 하나를 넘어 오래된 빌라촌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장동학(64)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비타민 음료를 하나씩 쥐여주곤 그가 침대맡에 앉아 얼굴을 훔쳤다. 신고 있는 초록과 노랑으로 알록달록한 양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다이소에서 샀어요. 어, 예뻐서. 이거 싸요. 하나에 2천원.”
환하게 웃는 장씨 표정이 편안하다. 발달장애 당사자로 개농장에서 7~8년 무임금으로 일했던 그는 장애인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다.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 ‘도란도란’에서 생활하며 안정을 되찾은 그는 ‘2020년 3·1절’에 독립했다. 같은 시설에서 생활했던 14명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독립해 한동네에서 살고 있다. 역시 복지사들이 든든한 버팀목 노릇을 해줬다.
“그전(구출되기 전) 기억은 잘 안 나요. 2년 계약으로 들어갔던 처음 집이 누수가 심했는데, 집주인이 안 고쳐줘서 이리로 왔어요. 재개발임대는 좁아서 이리로 왔는데, 넓고 좋아요. 혼자서도 살아보고.”
어려서부터 장씨만 보면 “미안하다”고 울먹이던 스무 살 터울 누나는 장씨가 ‘탈시설’을 한다고 하자 마냥 눈물만 훔쳤다. 얼마 전 탈시설 장애인 사례 발표를 위해 누나가 사는 대구를 찾았을 때, 장씨가 누나와 조카에게 밥을 샀다. 장씨는 “용돈도 드리고 왔어요, 10만원. 기분 좋지” 하며 환하게 웃었다.
시설 생활을 할 때 장씨는 ‘화’가 많았다. “사람이 다 다르니까요. 여럿이 사니까 같이 하는 거 싫어했지. 성격이 다 다르니까. 고함 소리도 크고, 성격 급하기도 하고.” 시설에서 나오자 친구가 좋아졌다. “맨날 친구들이랑 통화하고, 단골 카페도 있고.” 좁은 거실 한쪽에 ‘내가 왕이다’라고 쓴 벽걸이가 걸려 있다. “그럼, 내 집인데 내가 왕이지. 이다음에 집을 사면 아예 내가, 어, 임금님이지.” 장씨가 또 웃는다.
산동네 비탈길 꼭대기 방 두 칸 낡은 빌라에 사는 장씨는 연신 “경치가 좋아. 경치가 좋아” 했다. 주방엔 냉장고도 두 개나 된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조기가 한 두름 있다. “어제 시장에서 샀어요. 1만2천원 줬어. 행사해서 (값이) 헐해요. 무 넣고 지지면 맛있어.” 그는 활동지원사에게 부탁할 반찬거리를 사러 혼자서도 시장에 자주 들른다.
집에서 가까운 협동조합 ‘도약’ 사무실을 지날 때면, 간혹 사과며 참외 따위 장씨가 좋아하는 과일을 한 봉지씩 놓고 온다. “나눠먹고 해야 가족이지.” 장씨 지론이다. ‘도약’ 사무실은 장씨가 독립하기 전까지 생활했던 시설 ‘도란도란’ 자리다.
“빨리 도움받아 나오면 좋죠. 집하고 돈만 있으면 되는데. (…)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독립한다니까 ‘어떻게 살 거냐’고 시설장이 막 뭐라 그래요. (내가) 말은 못하고, 왜 그리 반대하는지. 지금 잘 살고 있거든요. 밖에 못 나가게 하는 거, 그게 아쉬워요. 시설에 사는 사람 많은데, 외출도 못하고….”
독립한 장씨도 작은 꿈을 품고 산다. 상상만 해도 맘이 설렌다. “친구랑 여행을 가고 싶어요. 한국에도 안 가본 데가 너무 많아….”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8길에 자리한 신축 빌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2022년 6월부터다. 뇌병변 중복 장애로 누워서 지내야 하는 이원재(25)씨는 201호에 산다. 역시 뇌병변 장애 당사자로 전동휠체어를 타는 김명이(37)씨는 203호에 산다. 김명이씨 직장 동료인 발달장애 당사자 최민준(33)씨는 401호에 산다.
‘아지트’란 팻말이 걸린 301호는 주거지원센터다. 사회복지사와 함께 입주자의 주거생활과 건강을 챙기는 전담 코디네이터까지 따로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건물을, 서울시가 종사자 인건비를, 서울시복지재단 장애인 전환팀이 서비스를, 대한성공회유지재단이 운영을 맡은 이곳은 장애인 9명이 사는 지원주택이다. 거주자 명의로 된 ‘내 집’이다.
최민준씨는 2022년 8월 본가에서 이곳으로 이사했다. 처음엔 조금 무섭고, 혼자 있으면 외롭기도 했다. 입주 1주년이 다가오는 지금은 어떨까? 최씨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잔소리도 없고. 동생이 용돈 아껴 써라, 술 먹지 마라, 그런 소리 했어요. (…) 본가에 있을 땐 환청도 들리고 했는데, 환청 이제 없어졌어요.”
주변에 사람도 많아졌다. 직장 동료들이랑 같이 “뭐 사먹고 다니는” 걸 좋아하게 됐다. 얼마 전에 맘에 드는 식판을 하나 샀다. 설거지하기도 편하고, 식사량을 조절해 살도 뺄 수 있을 거 같아서 샀다. 일주일에 나흘을 서대문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5시간씩 일한다. 지원주택 2층에 사는 직장 동료 김명이씨와 함께 장콜(장애인 콜택시)을 타고 출근하는데, 비용은 정확히 절반씩 부담한다.
밤엔 온라인게임을 즐긴다. 전에 일했던 곳에서 받은 퇴직금 중 200만원을 들여 에어컨을 두 대나 샀다. 방에서 게임할 때 덥기도 하고, 거실에도 에어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활동지원사 선생님도 일하시는데 더우니까요.” 최씨가 말했다. 지원주택 임대료는 32만원이다. 지원주택 입주기한(20년)이 차면, 직장 가까운 곳에 살고 싶다. 그래서 가끔 로또도 산다. 지하철 6호선 응암역 근처에 단골 순댓국집도 생겼다. 가끔 순댓국에 소주 1병을 비우고 버스 타고 집에 온다. “좋아해요.” 최씨가 웃었다.
이원재씨 집 안방에는 알록달록한 만화영화 캐릭터 풍선이 매달려 있었다. 2023년 7월5일은 그의 스물다섯 번째이자, 탈시설 뒤 처음 맞은 생일이었다. 직장 동료를 초대해 파티를 하면서 붙여놓은 것을 떼기 아까워 좀더 두고 볼 참이다. 방 한쪽에는 각종 피규어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커다란 비행기와 공항, 자동차 등도 최근 조립을 마쳤다. 발달장애(자폐스펙트럼장애) 당사자인 자원활동가가 이씨와 함께 만들었다.
연고가 없는 이씨는 평생을 시설에서 생활했다. 기회가 생겼을 때, 그는 “탈시설을 원한다”는 의사를 외마디 비명과 함께 분명하게 밝혔다. 시설에서 함께 생활했던 선생님들이 지원주택까지 바래다줬다. 이씨는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웃었다. 뇌병변 중복 장애로 누워서 생활하는 이씨는 24시간 돌봄을 받고 있다. 직장(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선 따로 월 80시간 근로지원도 받는다.
누워서 탈 수 있는 이너 휠체어도 마련했다. 활동지원사와 함께 외출도 하고, 마트에서 본인이 원하는 식재료도 고른다. 시설에선 모든 걸 한꺼번에 갈아 먹었다. 탈시설 직전 이씨를 24시간 지켜봤던 김치환 복지사는 “활동지원사 3명이 교대로 근무했는데, 모두 음식 먹여주는 속도가 달랐다. 원재씨는 그때그때 속도에 맞춰 받아먹어야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죽과 리소토 중간으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 이날 아침엔 새우채소볶음밥에 김을 곁들였다. 요즘 이씨는 침대 옆에 달아둔 태블릿피시로 ‘유튜브 먹방’을 즐겨 본다. 이젠 그도 먹고 싶은 걸 골라 먹을 수 있다.
척추측만증과 강직(관절굳음)이 있는 이씨는 매주 몸을 풀어줘야 한다. 휴일인 월요일 오전에 물리치료사가 그의 집으로 출장을 나온다. 물리치료를 받던 그가 시원한지 소리를 내며 웃는다. “시설과 지원주택 중 어디가 좋으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그가 힘주어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
휴일이라 늦은 아침 식사를 막 마친 김명이씨는 분홍색 고운 티셔츠로 갈아입고 손님을 맞았다. “언제 이사했느냐”고 물었더니 손가락 7개를 폈다. “꼭 1년 됐다”고 했더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웃는다. 뇌병변 장애 당사자인 그의 집 바닥엔 두툼하고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다. 2022년 말 마련한 전동휠체어에 스스로 팔을 짚고 오르기 위해서다. 아직 운전이 서툴지만, 이제 가지 못할 곳이 없다.
김씨는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최민준씨와 같은 직장에 나간다. “힘들지 않으냐”고 물으니 “해야 돼”라고 말했다. 시설에서 생활했던 그는 집을 가리키며 ‘엄지척’을 하고는 한참 웃었다. 인터뷰를 끝내려는데, 김씨가 자꾸 손을 들어 흔든다. 약지에 낀 반지가 반짝인다. 지원주택 같은 층에 살던 뇌병변 장애 당사자 공선진(28)씨가 2023년 3월 결혼할 때 던진 신부 부케를 김씨가 받았다. 공씨는 결혼과 함께 임대주택 청약에 당첨돼 지원주택을 떠나 독립했다. 김씨도 그럴 참이다. 그가 다시 웃고 있다.
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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