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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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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기억하는 건축

‘협소주택의 육하원칙’ 나만의 공간을 꿈꾸는 이들, 그 꿈에 동행하는 건축가
등록 2023-07-28 15:54 수정 2023-08-04 20:12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있는 3층짜리 초소형 사옥의 모습. 현창용 교수 제공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있는 3층짜리 초소형 사옥의 모습. 현창용 교수 제공

‘시대가 건축을 낳는다.’

글의 주제에 비해 거창한 시작일까? 하지만 ‘협소주택’이라는 유형의 집이야말로 시대 변화의 산물이다. 세 가지를 들어보자. 첫째, 경제의 수축.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저출생, 그리고 저성장 국면의 영향은 거대 건축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의미한다. 둘째 다원주의, 다핵화 시대. 코로나19 대유행을 관통하며 가속화된 경향이다. 이제 모두의 공간에서 보편적인 평균치의 만족을 얻는 시대는 갔다. 나만의 공간을 넘어 나만의 ‘장소’를 원한다. 셋째, 치솟은 땅값과 물가. 2015년 이후 급격히 상승한 원자잿값, 기술자 인건비, 부동산가 급등과 함께 찾아온 지가 폭등은 대규모 개발 시대의 수명 연장을 억제하고 있다.

더 이상 팽창하지 않는 도시경제, 그런 녹록찮은 환경이라면 건축도 태어나지 않는 것일까? 건축은 하나의 생물과도 같다. 변화에 맞게 적응해 나가고, 또 새로이 잉태되어 그 변화의 틈에서 태어난다. 시대의 파고를 기회 삼아 오히려 나만의 공간을 꿈꾸는 이들, 그리고 그 꿈에 동행하는 건축가들은 어떻게 사고하고, 기획하고, 실행할까? 시대가 낳은 건축, 협소주택이 태어나는 과정에 대한 여섯 가지 질문에 답해본다.

누가: 협소주택을 꿈꾸는 이들

협소주택에는 대전제가 있다.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여덟 글자다. 협소주택이란 단어 그대로 작은 집, 좁은 공간으로 인한 불편함이 예상됨에도 협소주택은 현대도시의 훌륭한 공간적 대안이 되고 있다. 특히 집단화돼 공급되는 공간에 개인의 몸과 삶을 맞추어내는 데 익숙한 한국 현실에서, 상기한 사회 변화와 함께 점점 공간의 획일화, 몰개성화에 대한 철학적 반항이 번졌다. 게다가 개별화된 삶의 물리적 실현을 도시라는 훌륭한 사회시스템의 이점을 누리며 현실화할 수 있다면 협소주택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즉, 협소주택은 공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열려 있다. 재화와 교환하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이, 내 사업이, 오롯이 개인화된 공간 속에 깃들어 공간과 삶이 분리되지 않길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협소주택이 태어난다. 최근 협소주택을 통해 소규모 임대사업을 실현하는 경우도 만나볼 수 있다. 작지만 알찬 단일 건축물을 구현해 한눈에 잡히는 스케일로 관리하고 운영하며, 이에 더해 그 건축물의 디자인을 하나의 자기표현 창구로 여기는 이들에게도 협소주택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언제: 협소주택이 잉태되는 순간

그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협소주택을 향한 무형의 마음이, 유형의 건축으로 태어나기 위한 씨앗은 어떻게 심어야 할까. 바로 건축가와의 만남을 통해서다. 필자는 협소주택을 마이크로 하우징(Micro Housing)이라 번역한다. 협소주택이 삶을 미시적으로 세밀하게 담아낸 그릇이라면, 건축가에게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전달해야 한다. 담대한 인생 철학부터 우리 가족의 시시콜콜한 생활습관까지 모두 다 열어놓자. 건축가 역시 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인간미, 1㎝조차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치열함, 열악한 대지에서 효율과 디자인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지 않을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건축가란 존재는, 시각적 자극을 주는 오브제를 창작하는 디자이너의 영역을 넘어선다. 수많은 제약조건 안에서 인간의 안전을 담보하는 범주의 공작물을, 특정된 사용자의 행태와 패턴에 맞게 구현해내는 매우 복합적인 직능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협소주택은 면적은 작지만, 훨씬 더 큰 고민과 입체적 발상이 요구된다. 건축주는 ‘이렇게 작은 집을 맡아줄까?’ 자문하지만, 오히려 건축가는 ‘과연 물리적 제약을 넘어서는 만족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반문한다. 이런 서로의 염려의 벽이 허물어지는 대화의 순간, 협소주택을 꿈꾸는 이들의 특별한 삶의 이야기와 강렬한 행복의지를 건축가가 공감하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협소주택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마장동 협소주택의 외관. 현창용 교수 제공

마장동 협소주택의 외관. 현창용 교수 제공

어디서: 협소주택이 자리잡는 곳

협소주택이 법적인 건축물 분류기준은 아닌 만큼 정해진 기준은 없다. 필자는 통상 약 50㎡(약 15평) 내외 면적의 필지에, 약 100㎡(약 30평) 안팎의 연면적(각주 1)을 가지는 초소형 건축물을 협소주택이라 정의한다. 소규모 부지인 만큼 필지를 구하는 일부터가 난관이다. 매물이 많지 않을뿐더러, 통합 개발되지 않은 자투리땅이 대부분이기에 보편적으로 개발 친화적이지 않은 조건과 환경인 경우가 많다.

필지 구입부터가 불안정하기에 때론 그 필지를 찾는 과정까지 건축가와 함께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 또한 한 가족을 위한 협소주택을 맡아 세 차례나 필지가 변경되는 과정을 함께하며 대상 부지의 조건을 검토하고 조언한 경험이 있다. 이쯤 되면 건축가는 더는 관계자가 아닌 프로젝트의 일원이다. 그렇게 기어코 만나게 된 작은 땅, 누구도 건축을 꿈꾸지 않은 도시의 틈새가 운명의 주인과 건축가를 만나게 되어 낯설 정도의 훌륭한 결과물로 세상에 선다면, 그 작은 틈새는 더는 틈새가 아닌 골목의 작은 등대이자 동네 이정표가 된다. 존재조차 모르던 한 뼘 땅의 변화, 숫자를 뛰어넘는 짜릿함이 있지 않은가?

왜: 협소주택이 사랑받아야 하는 이유

협소주택이 도시의 틈새에 자리잡는다면, 그 ‘땅’에 대한 이해는 ‘틈’에 대한 이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틈이란 새롭게 만들어진 표면이 아닌, 기존의 표면에 난 작은 생채기 같은 공극이다. 기존 도시 공간의 연장으로서의 사이 공간, 그런 틈새까지 돋보이려는 시각적 욕망으로 채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변 도시의 색, 주로 관찰되는 질감, 주변 건물의 높이, 발견되는 창문 모양, 주변을 채운 건물들의 덩어리감 등 틈의 배경이 되는 도시 공간을 존중하고 그와 가장 닮은 무엇인가로 채워주는 게 바로 협소주택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는 마치 상처 위에 새살이 돋을 때 상처가 완벽히 아물면서도 동시에 흉터로 도드라지는 것이 아닌 상처의 순간이 지워지길 바라는 마음과도 같다. 도시의 틈에 기존 도시와 조화되고 스스로도 담담하게 자리잡은 작은 집. 하지만 그 집의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은 완벽히 개인 맞춤화(Customizing)된 소우주가 펼쳐진다. 도시의 틈을 그 도시를 참조해 채워내되 내면은 고유하게, 1% 부족했던 우리 도시를 채워주는 하나의 꽉 찬 점이 바로 협소주택이고, 또한 협소주택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다.

어떻게: 협소주택이 만들어지는 과정

매력적인 소우주, 쉽게 만들어질 리 없다. 건축을 꿈꾸는 이와 건축을 만드는 이는 각각 어떤 노력을 할까. 필자는 즉 클라이언트에게 한 편의 에세이를 써 건네길 권한다. 나만의 공간을 가졌을 때 기대하는 삶의 패턴, 생활의 캐릭터와 세밀한 습관까지도 정성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풀어낸 한편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건축가는 그의 삶의 묘사를 한편의 공간적 서사로 풀어낸다. 신체의 보편적 특징, 인체의 행동반경, 최적화된 치수, 행태에 따른 공간 활용 방안까지. 건축가는 클라이언트의 삶이 부족함 없이 작동하도록 치열하게 고민해낼 것이다.

필자의 경험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고민이 가장 치열했던 프로젝트는 한 층이 약 10㎡(약 3.3평)에 불과한 3층짜리 초소형 오피스였다. 한 개 층에서 업무·회의·응접·수납·휴식이 복합적으로 일어난다. 동선은 최대한 중첩하고, 벽면은 최대한 입체적으로, 허리 아래 공간에는 고정적 수납을, 작업대 높이에서는 회의-식사-작업이 가변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접이식 가구를, 어깨 위 공간에는 수납 대상에 따라 가변 조립되는 수납 시스템을, 계단은 공간을 최소한으로 차지하는 돌음계단으로 풀어냈다. ‘체류하지 않는’ 공간(공용부)은 최소화하되 ‘체류하는’ 공간(전용부)에 균등하게 접속시키는 것이 협소주택 공간 구성의 기본인데, 공용부의 희생을 즐거운 불편함으로, 전용부는 최적의 효율성으로 구현한다면, 작은 건축은 큰 집으로 존재할 수 있다.

무엇을: 협소주택을 위한 고민

협소주택이 소위 ‘남의 일’, 회자하는 이슈로 다가올 땐 재기발랄하고 멋진 작업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은둔한 기존 대지의 열악함과 대비되면 다른 건축물보다도 훨씬 환상적인 성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 일’, 즉 그 과정을 오롯이 마주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협소주택을 기획한다면 반드시 ‘작은 공간 리허설’을 해봐야 한다. 하나의 공간이 여러 목적으로 사용되는 현장에 대한 체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수납, 가변적인 가구에 대한 경험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유형의 공간을 수용할 수 있는지를 진단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 즉 비용 또한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다르다. 건물 규모에 비례해 설계비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건축가의 일은 더욱 복잡하고 난해하기에, 때론 협소주택의 설계 대가가 더 높을 수 있다. 또한 이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공사비 역시 높다. 동일 내부 면적 대비 외벽 면적이 클 수밖에 없으며 건축물의 외벽은 구조, 단열, 외장, 방수 등 수많은 기능을 수행하기에 일반적인 건축물의 단위면적당 공사비를 크게 상회한다. 그럼에도 협소주택은 ‘규모의 경제’ 관점에서 판단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신공덕동 협소주택의 모습. 현창용 교수 제공

신공덕동 협소주택의 모습. 현창용 교수 제공

개발의 시대가 저물고, 기존 도시의 작은 편린과 그 틈새를 고쳐 쓰거나 혹은 새로운 공간을 섬세하게 수놓는 일은 필자만의 혜안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건축가 모두가 관심을 갖는 우리 도시 생애주기의 숙명이다. 집을 팸플릿에서 고르고 집의 공간적 가치보다 교환되는 재화의 양으로 판단해온 지난 시간의 끝에, 치열하게 나만의 공간을 원하면서 도시의 아름다움에 더욱 깊게 심취하고자 하는 우리 중 누군가의 열망과 집념으로부터 시작된 움직임이 협소주택이 다. 어떤 프로젝트보다 치열하고 고되지만 도시의 틈새, 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개인화된 소우주는 분명히 그 과정의 치열함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건축의 선물’이 돼줄 것이다.

현창용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각주1)

건축물의 각 층 바닥면적의 합계를 의미한다. 필지마다 연면적의 지상부 면적에 대한 상한선이 정해져 있고, 일반적인 주거지역에서는 필지 면적의 200%를 기준으로 제한된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특별한 변신, 한 가지 주제로만 제작하는 통권호를 아홉 번째 내놓습니다. ‘21이 사랑한 작가 21명’,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비거니즘의 모든 것, 비건 비긴’(Vegan Begin) 등에 이어 ‘집’을 열쇳말로 삼았습니다. 한옥, 농막, 협소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집에 깃든 사연, 반려동물을 위한 집, 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담은 집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다양한 집의 존재 이유와 미래 전망도 더했습니다. _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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