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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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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했다고 641명에 손배소…그래도 ‘노조’ 하는 이유

등록 2023-06-30 22:40 수정 2023-07-01 23:52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인 문승진씨가 2022년 충남 당진 공장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인 문승진씨가 2022년 충남 당진 공장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641명. 2021년 9월 현대제철 하청 노조의 파업에 회사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손배소) 피고 수다. 하청 노조가 아닌 개인을 겨냥했다. 합법 파업의 범위를 넓히고 개인 조합원의 책임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지던 때였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의 문승진 조합원은 641명 피고 중 한 명이다. 2022년 10월 <한겨레21>과 인터뷰하며 파업 손배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던 그다. 인터뷰 때 막 개시됐던 소송은 9개월이 흐른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사이 노란봉투법은 국회 소위원회 문턱을 넘어 6월30일 본회의에 부의됐다. 소송과 함께 흘러온 그의 삶은 어땠을까. 다시 이야기를 들었다.

—그사이 어떻게 지냈나.

“생활에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노조 대의원 활동은 올해는 안 하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문하는 ‘현장 위원’을 맡고 있다.”

—손배소 관련 재판이 10개월째 진행 중이다.

“마음처럼 쉽게 진행될 거라 예상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답답하긴 하다. 순리대로 지켜보자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

—피고가 600명이 넘던데.

“제가 일하는 공정의 동료 대부분이 손배소에 걸려 있다. 다만 현대제철에서 피해 입증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알아서 그런지 심적 동요가 크진 않다.”

—하청 노조가 제기한 불법파견 소송도 진행 중인 걸로 안다.

“2022년 12월 당진공장 불법파견 관련해 조합원들에게 희망적인 판결이 일부 나왔다(1심 승소). 많은 조합원이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니까 낙관만 할 순 없겠지만 다 같이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다.”

—최근 노조 파업에 대해 개인 책임을 제한하고 파업 손해도 엄격히 계산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어떻게 봤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면이 있었다. 하지만 재판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나. 실제로 노동자가 현실에서 변화를 체감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이지만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손배소가 시작된 뒤 일상은.

“내가 갖는 부담보다 가족에 대한 부담이 더 크다. 가족에게 소송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면서 부담감을 덜려 한다. 부디 쟁의행위 손배소가 무분별하게 남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재계에선 노란봉투법이 입법되면 불법 파업이 많아질 거라 우려한다.

“파업을 왜 하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지금도 불합리한 일을 겪거나 법을 안 지키는 회사가 많다. 준법이 안 되는 부분을 노조가 국민과 노동부에 알려도 시정이 안 되고 사 쪽과 대화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파업으로 가게 된다. 만약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하청 노조가 원청 사용자와 대화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노사 갈등은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억지스러운 파업은 성숙한 사회에선 점점 하기 어려워진다. 국민이 쉽게 소식을 접하고 진의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노조도 국민의 시선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조심한다.”

—당신에게 노조는 무엇인가.

“노조 활동을 하면서 ‘노조 활동은 우리끼리만 잘되고 끝이 아니구나’를 배웠다. 하청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고 일터를 안전하게 만들면서 그 노하우가 다른 열악한 사업장에도 전달된다. 그럴 때 보람을 느끼고 헛된 시간이 아니구나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야겠다 생각한다.”

—<21> 등 언론에 전하고 싶은 말은.

“노동자의 현실에 계속해서 귀 기울이고 관심 가져주어 감사하다. 앞으로도 사회적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린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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