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의원은 요즘 서울 최고의 핫플레이스라는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가정의학과 의원이다. 이곳 우석균 원장은 의료운동가이자 보건의료정책 전문가다. 얼마 전까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냈고 지금은 정책자문위원장이다. 2024년 5월25일 출범한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의 정책기획위원도 맡고 있다. 6월5일, 우 원장을 찾아갔다. 전공의 장기 파업과 한국 의료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듣고 싶어서였다. 원장실 탁자에는 여느 때처럼 <한겨레21> 최신호와 그날치 <한겨레>가 놓여 있었다.
―이제 성수의원은 이 일대 풍경에서 예외적인 소품 같다.
“하루하루 몰라보게 변해가는 성수동 풍경이 초현실적이라고 느꼈는데, 어느 날 보니 외려 성수의원이 초현실적으로 키치한 곳이 돼버렸다. 한국 의료의 초현실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무슨 뜻인가.
“성수의원은 1987년 공장지대였던 이곳에서 노동자들의 필수의료를 위해 문을 열었다. 지금은 환자가 많이 줄었고, 그나마 다른 지역에서 훨씬 많이 온다. 가령 성수동에서 중노동 하며 살다 거주비용이 폭등해 내쫓긴 노인이 적지 않다. 실손보험이 없는데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 치료를 요구받으니 그 지역 의원은 놔두고 애써 여길 찾는 거다. 과잉진료 하는 의원들은 성수동의 휘황한 가게들과 다를 바 없다. 정작 가정의학과나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같이 지역에 꼭 필요한 과목은 소멸해가고 있다.”
―의원들의 과잉진료가 심한 이유는 뭔가.
“전공 불문하고 전문의가 아무 제한 없이 의원을 열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말고 없다. 다른 나라 같으면 종합병원에만 있는 과목의 전문의들이 동네마다 즐비하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과잉진료를 하게 되는 거다. 여기에 실손보험이 도덕적 해이를 더욱 부추겼다. 의사들이 의대 정원을 한 명도 늘려서는 안 된다고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것도 경쟁자가 느는 걸 막고자 해서다.”
―전공의 집단행동이 100일을 넘었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정확한 지도부 없이 하는 ‘살쾡이 파업’(와일드캣 스트라이크)을 닮았는데, 93%가 이렇게 오래 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오로지 미래 경쟁자가 느는 걸 반대하는 사다리 걷어차기만은 아닐 것이다. 노동을 초과 착취당하고 있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반면 교수들은 말로만 집단행동을 하겠다고 하고 흐지부지했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교수직을 관둘 생각이 없는 거다. 이번 사태 해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자연적으로 이뤄진 실험 결과를 주목하는 일이다.”
―무슨 실험을 했다는 건가. 실험 결과는 어땠나.
“현역 의사 12만9200명 가운데 1만 명에 불과한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하니까 수도권 3차 병원의 기능 60%가 마비됐다. 화려한 초대형 병원이 전문의가 아닌 1만 명의 전공의, 그리고 2만 명의 피에이(PA·진료보조) 간호사의 초과노동으로 움직였다는 뜻이다. 또한 40%만 가동됐는데도 예상보다 심각한 의료 공백이 없었다는 건 그만큼 이들 병원의 공급 과잉이 심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2차 병원의 환자가 크게 는 것도 아니다. 3차 병원의 진료 수요 자체에 적지 않은 거품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의대 정원을 정하는 데도 참조할 만한가.
“적정 의사 수는 정성적인 판단에서 시작해야 한다. 3차 병원과 개원가 전문의의 거품이 큰 것과 반비례해 필수의료는 거대한 공백 상태다. 우리 국민은 이른바 ‘미충족 의료’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대다수 성형외과 의원이 찢어진 얼굴도 꿰매려 하지 않고, 서귀포 시민은 모두 제주시에서 아이를 낳는 현실이다. 지역 간, 도농 간 평등과 충족 의료를 이루기 위한 의료공급체계와 공공의료기관을 따져보고, 필요한 의사 수를 산출하는 게 맞는다. 수도권 3차 병원은 과잉 병상을 줄이고 전공의 대신 전문의를 크게 늘려야 한다. 물론 지금 의사 수로는 감당할 수 없다.”
―<한겨레21>이 다뤄줬으면 하는 기획기사가 있나.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시작된 경남 양산 웅상지역의 공공병원을 비롯해 울산 대전 광주 의료원 등 전국 각지의 공공병원 만들기 운동에 대한 관심을 기대한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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