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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대 감독 홍명보? 2002년에 갇힌 한국 축구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 토론회 좌장 맡은 정용철 서강대 교수
등록 2024-09-07 16:40 수정 2024-09-10 19:12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정용철 제공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정용철 제공


어떤 나라의 축구협회는 2013년부터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무지개 끈(Rainbow Laces) 캠페인’을 벌인다. 협회가 주관하는 기간 선수들은 축구화에 무지개 끈을 묶고 경기에 임한다. 경기장 곳곳에도 무지개 깃발이 나부낀다. 어쩌면 별다른 일이 아닌 당연한 풍경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국제축구연맹(FIFA·피파) 경기규칙서 서문을 보면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축구에 참여하고 축구를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 축구협회도 저런 캠페인을 할 수 있을까.

대한축구협회는 지금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를 받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현대가’ 재벌의 축구협회 지배가 낳은 문제들을 비로소 들여다보겠단 취지다. 2024년 8월 초, 성인 국가대표팀에 홍명보 감독이 선임되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고 절차적 위법 소지마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시작된 감사다. 감사 착수 이후 축구협회가 하나은행에 600억원대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는 등 불투명한 회계 처리를 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9월2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 좌장을 맡았던 정용철 서강대 교수에게 물었다.

—지금 축구협회 상황은 어떤가.

“길고 긴 현대가의 점령을 끝낼 기회이자 동시에 더한 수렁에 빠질 수도 있는 위기다. 팬들로 인해 기회가 왔지만 연임을 노리는 현대가는 여전히 협회를 장악 중이다. 팬들이 좋아하는 한준희 해설위원도 축구협회 부회장이 되고 입장이 많이 바뀌었더라. 다시 기득권이 가져가느냐, 새롭게 가져가느냐의 기로다. 물론 전망은 밝지 않다.”

—현대가의 축구협회 지배는 수십 년 된 구조적 문제인데.

“맞다. 현대가의 치적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재벌이 협회를 운영하는 것이 이득이 없다는 점이다. 축구협회의 경우 중계권료, 스폰서 계약 등을 통해 1400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려 더는 재벌에 기댈 이유가 없다. 정몽규 회장이 출연금을 얼마 냈는지만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축구협회에 재벌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20~30년 전 이야기고 이제 현대가의 축구협회 지배는 당위성이 없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며 불거진 문제인데, 사실 대표팀 감독은 언제나 논란이었다.

“언제나 논란이었던 것은 맞는데, 문제를 그렇게 일반화시켜선 곤란하다. 한국 스포츠의 문제가 뭐냐고 묻는데, ‘구조적인 문제다’ ‘지도자 육성의 문제다’ ‘학습권의 문제다’ ‘최저학력제의 문제다’ 하면 결국 아무것도 안 하겠단 말 아니겠나. 홍명보 감독의 문제는 클린스만 감독 때 시작된 협회의 여러 헛발질이 인지됐음에도 또 안일하게 축구계 가장 셀럽을 별생각 없이 그냥 ‘잘해보자’ 수준에서 읍소해 데려왔다는 점이다. 능력을 안 따졌고, 절차도 무시됐다.”

—한국 축구는 여러 면에서 여전히 2002년에 머무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포인트다. 2002년의 관성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2002년의 성공이 무엇인가. 기존 축구 시스템을 새로 간 것이다. 연줄 안 따지고, 열심히 안 하면 자르고 그런 상식적인 것들 아닌가. 그게 그동안의 축구 문법과 다른 방법이었다는 것인데, 지금 보면 그 수혜를 입은 사람들이 2002년만도 못한 방식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 안정환, 이영표 같은 2002년의 선수들이 홍명보 선임을 비판했는데 이를 두고도 ‘문제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유튜브 조회 수에 반응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게 바로 축구계다.”

무지개 끈 캠페인을 벌이는 어떤 나라는 축구의 종가 영국이다. 손흥민 선수도 무지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뛴 바 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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