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인 박희원(46·가명)씨를 만난 건 2022년 6월 서울 성북구의 한 오래된 주택 원룸에서였다. 전기요금을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밴 그는 당시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낮이라 괜찮다”며 불을 켜지 않고 있었다. 10대 때부터 희귀난치성 질환인 모야모야병으로 몸이 심하게 떨리는 증상을 겪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된 뒤 시장 등에서 일했지만 결국 그만둬야 했다. 한때 노숙 생활을 하면서 건강이 악화했던 박씨에게 2년여 전(제1420호 표지이야기 ‘월 58만원에도 존엄을 지키는 방법’)과 비교해 상황이 나아졌는지 물었다.
—당시 차비가 걱정돼 왕복 1시간 넘게 걸리는 동묘시장까지 걸어가 유통기한이 임박한 햄 등을 사던 기억이 난다. 동묘시장 식품도 물가가 올랐나.
“그때는 동묘시장에서 유통기한이 다 된 큰 사이즈 햄 5개를 1만원 주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한 개 500원씩 올라서 이젠 한 묶음에 1만2500원 주고 산다.”
—25% 오른 셈이면, 2년 전과 비교해 수급비가 올랐지만 식사가 나아지진 않았겠다.
“그때보단 나아졌다. 동사무소에서 원래 노인분들만 반찬 나눔을 해줘서 당시 나는 반찬 나눔을 못 받았다. 그런데 동사무소 (직원)분이 나왔을 때 내 건강(심한 손떨림, 발목뼈 악화 등)이 안 좋은 걸 보고 올해부터 반찬 나눔 대상에 넣어줬다. 일주일에 한 번 반찬을 받으면 양은 부족하지만 아껴서 먹는다. 도시가스나 전기 요금 이런 게 다 오르다보니 가스레인지도 잘 안 켜는데 다행이다.”
—여름엔 에어컨 전기요금이 많이 나갈 텐데.
“에어컨은 못 쓰고 선풍기는 한 번씩 쓴다. 여름은 일단 너무 더우니까 힘들긴 하다. 주방이랑 세탁실에 불이 나갔는데 전기요금 아낄 겸 일부러 안 갈고 있다.”
—기준중위소득이 오르면서 2024년부턴 70만원 정도 생계급여를 받았을 텐데, 그럼 여력이 생기지 않았나.
“내 경우엔 여전히 마이너스다. 일단 희귀병 때문에 1년에 한 번 50만원짜리 검사를 병원에서 받는 게 있지 않나. 그렇게 큰 목돈이 없기 때문에 홈리스행동(반빈곤운동 단체)에서 무이자 대출을 받는다. 한 달에 5만원씩 그걸 갚아야 한다. 또 당뇨 합병증 때문에 받는 치료가 있는데 그 돈은 병원 가서 쓰고 나중에 환급받을 수 있지만, 일단 내가 내고 15~20일 정도 환급금을 받을 때까지 버텨야 한다. 이 돈이 부족할 때도 단체에서 무이자 대출을 잠깐씩 받기 때문에 그것도 갚아야 한다. 또 전달에 슈퍼마켓에서 외상한 걸 갚아야 할 게 있다. 근처 슈퍼마켓 사장님이 좋은 분이다. 지난달 돈이 떨어졌을 때도 물건을 가져가게 해줘서, 14만원 정도 외상비를 이달에 내야 한다. 주로 사는 건 우유나 라면. 담배를 사기도 한다. 끊어야 하는데 자꾸 생각이 많아져서. 생각이 많아지면 담배를 피우게 된다.”
—답답해서 바뀌었으면 하는 게 있나.
“내가 얼마 전엔 발목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잘 걷지 못해 활동가(반빈곤운동 단체) 선생님 2명에게 도움을 받아 응급실에 갔고, 이도 아픈데 치과는 안 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픈데 돈은 없는 사람을 위해 무이자대출을 해주는 정책이 나온다고 한다.(최근 서울시의회에 상정된 ‘서울특별시 보건의료 취약계층 의료비 융자지원 조례안’. 취약계층이 이자 없이 의료비를 대출받게 하고, 이후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구체적 규정을 명시.) 그런데 수급비로 생활하면서 계속 대출을 받으면, 다 갚을 수가 없다. 대출받으면 한 달에 10만원이라도 또 갚아야 할 텐데 우리한텐 그게 되게 큰 돈이고 그건 병원을 가지 말란 소리와 비슷하다. 대한민국은 최고로 기술이 발달한 나라라고 하는데, 우리에겐 너무 먼 이야기로 들린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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