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 NONHUMAN’입니다.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말인데, 쉼표가 특히 의미를 중층적으로 만듭니다. ‘비인간과 인간을 넘어’라는 경계를 탐색하는 의미 같기도 하고, 인간이 된 비인간이라는 뜻으로도 보입니다. <한겨레> 남종영 기자의 책 제목 <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에서는 인간이 아닌 동물을 가리킵니다. 도서전의 설명을 요약하면 , 인간중심주의가 흔들리는 와중에 인간이 아닌 동물·식물 ·사물 ‘비인간’과 함께 지구의 균형을 찾자, 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여전히 모호합니다.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도서전을 방문했습니다. 같이 간 출판인 혹은 출판에 관심 있는 친구들의 의견도 대체로 일치합니다. 친절하지 않다. 2022년은 ‘반걸음: 원 스몰 스텝’, 2021년의 주제는 ‘긋닛: 뉴 월드 커밍’이었습니다. ‘반걸음’은 변화를 위해 최초의 걸음을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긋닛’의 뜻은 사전을 참조해야만 아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끊어지고(斷) 이어진다(續)는 ‘단속’의 옛말입니다.
책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여서, 파이를 넓혔다는 면에서 이 ‘모호함’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스포츠스타나 개그우먼, 모델, 가수 등 책과는 관련 없지만 젊은층의 호감과 열광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홍보대사로 위촉한 전략도 주효했습니다. 이전 10만 명이 방문하던 도서전을 20만 명이 모이게 한 2017년의 변신(그해의 주제 역시 ‘변신’(Meta–morphosis))이 큰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참여 출판사들은 책의 고루한 이미지를 깨고 책을 가장 ‘엣지’ 있어 보이게 만들어왔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 흥행이 블랙리스트 때문이라고요?” 그 2017년 변화의 주역을 도서전 이후 인터뷰한 기사의 제목이었습니다. 올해 홍보대사 중 한 명으로 위촉된 오정희 소설가가 블랙리스트 집행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항의시위와 참여 작가들의 보이콧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 번 더 도서전이 변화해야 한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에스에프(SF) 소설가 최의택 작가의 새 소설집 제목도 <비인간>입니다. 최의택 작가는 근육병(선천성 근이영양증)이 있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휠체어 생활자입니다. “대놓고 ‘비인간’임을 천명하는 게, 자칫 소설 속 소수자들, 특히 장애인과 결부돼 그들을 비인간으로 매도하는 결과를 야기하는 건 아닐까.”(<비인간> ‘작가의 말’) 고민 끝에 그는 퀴어, 크립, 병신, 불구자라는 멸칭을 다시 가져옴으로써 열 미래를 상상합니다. “우리에 대한 멸칭을 하나둘 빼앗아옴으로써, 앞으로 일이십 년 뒤에 휠체어를 타고(물론 꼭 휠체어를 탈 필요는 없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단순히 용어일 뿐인 것을 듣고 위축되는 경험을 덜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이렇게 대꾸할 수 있다면. 그래, 나 불구다, 그래서 어쩌라고. 아니, 이럴 것조차 없이 그냥 가볍게. 왜? 너, 내 이름 몰라?”라고 할 수 있는 세계를. 이 ‘비인간’이 도서전의 ‘비인간’보다 훨씬 선명한 것 같습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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