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에서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쪽이 강자가 된다. 돈을 빌려주는 쪽이 이자율이나 수수료, 상환 능력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거머쥐고 빌려 쓰는 쪽을 쥐락펴락한다. 이렇게 분명 헤게모니는 돈을 빌려주는 쪽이 쥐고 있는데, 빌려 쓴 쪽이 돈을 갚지 못하고 연체에 허덕이면 모든 책임을 빌려준 쪽이 아니라 빌려 쓴 쪽에 몰아서 묻는다. 금융인 출신 정치인인 제윤경은 저서 ‘약탈적 금융 사회’에서 이를 두고 “폭풍이 칠 때 입산금지 조처를 취하는 것과 반대로 금융시장은 위험에 대한 판단을 개인에게 전적으로 내맡기면서 책임 또한 철저히 개인에게 따져 묻는 구조”라고 표현했다.
투자에서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쪽이 승자가 된다. 주식시장은 대표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곳인데, 정보를 가지지 못한 이들은 투자 리스크를 상대적으로 크게 감수하게 되거나 혹은 아예 시장에 진입하지도 못하게 된다. 그런데 소수의 투자자에게서 비공개로 자금을 모아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해 운용하는 사모펀드의 경우에 이르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주는 효용은 훨씬 더 커진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버스 준공영제는 이 효용이 극대화한 사례다. 버스 준공영제는 지자체가 공공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해 시내버스 회사가 운행 실적을 완수한 뒤 적자가 나면 전액 보전해주고, 서비스 품질과 무관하게 기본 이윤을 보장해주며, 성과 이윤까지 추가로 지원하는 제도다. 이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의 존재를 파악한 사모펀드 운용사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서울과 인천의 버스회사를 공격적으로 인수한 뒤 수년 동안 막대한 배당금을 챙기고 조만간 엑시트(투자금 회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사이에 시내버스 운영은 황폐화하고 있고, 서울시와 인천시 정부의 재정 투입금은 나날이 불어나고 있다. 수협중앙회, 엔에이치(NH)농협손해보험, 한국투자증권, 롯데카드와 같은 대형 금융사들이 이 사모펀드의 주요 투자사다.(이번호 특집)
금융사들의 탐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빈국인 캄보디아에서는 저소득층이나 금융서비스 소외계층을 위해 무담보 소액대출 등을 해주는 마이크로파이낸스(소액금융) 기관들이 약탈적 대출 행태를 보이며 가난한 농민들을 빚의 수렁에 빠뜨리고 이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토지를 수탈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약탈적 대출이란 돈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 소득 수준을 뛰어넘는 돈을 굳이 빌려준 뒤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행위다. 문제는 캄보디아에서 이뤄지는 약탈적 대출에 한국의 대표적 은행인 케이비(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이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이 은행 소속 대출영업전담 직원들이 마을을 돌며 무리한 대출을 권하고 심지어 악성 채권추심까지 병행한다.(이번호 표지이야기)
캄보디아 극빈층 농민과 한국의 공공교통 체계를 가로질러 약탈하는 금융의 행태를 막을 수 있는 건 국가의 의무와 기업의 책임, 사법적/비사법적 구제책 마련이라는 세 가지 축이다. 유엔이 2011년 제정한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에 담긴 내용이다. 무엇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한겨레21 독자와 같은 시민의 감시다. 함께 읽고 비판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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