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는 스스로 동물병원으로 걸어 들어온 개였다. 개들은 아파도 스스로 병원에 올 수 없다. 사람이 데려와야 치료받을 수 있다. 병원 앞까지 개를 데려와도 동물병원 문 앞에서 안 들어오겠다고 버티며 보호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개가 대부분이다. 소아과에 온 어린 환자들이 병원을 무서워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유의지로 병원을 찾은 개는 병원 개원 뒤 지금까지 아토뿐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날도 평소 같은 하루였다. 어? 이상했다. 병원 앞 나무데크에 어떤 개가 혼자 앉아 있었다. 주변에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녀석은 천천히 꼬리를 흔들었다. 꼬리에 자란 길고 풍성한 털이 함께 부드럽게 흔들렸다. 온몸이 긴 하얀 털로 덮였고 둥근 눈은 선해 보였다. 살펴보니 한 살이 채 안 된 어린 강아지였다.
녀석이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데크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돌려봤다. 녹화된 화면에서 오후 3시쯤 흰색 개가 병원 앞에 나타났다. 병원 앞에서 잠시 망설이듯 걸음을 멈췄는데 놀랍게도 곧 주둥이를 데크 문틈으로 밀어넣어 문을 열고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진료를 기다리는 개들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고, 의자에 앉은 사람에게도 다가가 꼬리를 흔들었다. 화면 속 개는 머리를 쓰다듬는 낯선 사람의 손길에도 편안하게 몸을 맡겼다. 모두 진료를 보고 떠난 뒤에도 그 개는 병원을 떠나지 않고 데크에 남아 있었다.
마이크로칩 인식 장치를 가져와 녀석의 몸 이곳저곳에 대봤지만 동물 등록은 돼 있지 않았고 목줄도 없었다. 2개월 이상 된 반려견은 동물등록이 의무화됐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아 답답한 경우가 많다. 동물등록이 됐다면 바로 보호자를 찾아 집에 보낼 수 있는데 말이다. 시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소에 연락해 강아지를 인계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개를 유기하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경계 없이 친절하고 몸이 깨끗한 것을 보니, 아마 최근까지도 누군가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고 기간 내에 보호소로 강아지를 찾으러 오리라 생각하며 녀석을 보호소로 보냈다.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소에 유기동물이 구조되면 동물보호법에 따라 7일 동안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공고한다. 보호소 입소 뒤 열흘이 지나도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유기동물의 소유권은 지자체로 넘어간다. 이후에도 새 입양처를 찾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이들은 약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로 생을 마감할 가능성도 있다.
녀석을 보호소로 보내고 2~3주가 지난 뒤 보호소에 전화했다. 그동안 그 개를 찾는 사람이 있었는지, 녀석은 보호소에서 잘 지내는지 물었다.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그 개를 찾는 사람의 전화는 없다고 했다. 녀석을 주로 돌봤던 자원활동가는 녀석이 보호소 펜스 안에서 종일 짖는다고,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펜스 안에서 종일 짖고 있을 녀석이 눈앞에 그려졌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처음 보는 나에게 다가와 냄새를 맡고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잠깐이었지만 우리 병원 데크에 앉아 지나가는 차와 사람을 구경하는 모습이 편안해 보였는데, 지금 녀석은 고통 속에 있다. 우리 병원에 찾아온 귀한 손님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듯해 괴로웠다. 녀석을 보호소로 보낸 이가 나였기 때문이다. 우리 시 보호소에서는 구조된 동물의 복지를 위해, 그리고 새 입양처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보호소 자원활동가를 생각하면 늘 깊은 존경심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그분들의 노력에도 구조되는 유기동물 수는 매일 늘어나 보호소는 늘 포화상태다.
병원 실장님과 간호사들도 안타까워 보호소 에스엔에스(SNS)에도 자주 들어가본다고 했다. 병원 식구들 모두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선 병원 입원장에라도 며칠 임시 보호하면서 입양처를 구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녀석을 데려올 케이지를 차에 싣고 보호소로 출발했다. 보호소로 들어서자 개들이 동시에 짖었다. 보호소 직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직원을 따라 걸어가니 펜스로 만들어진 모든 공간에 개들이 있었다. 펜스 안의 모든 눈이 우리 움직임을 좇으며 짖었다. 이른바 ‘품종견’으로 알려진 리트리버, 말라뮤트도 보였다. 펫숍의 인기 품종인 비숑과 몰티즈도 언뜻 보였다. 펫숍에서 돈을 내고 쉽게 품종견을 샀던 사람들은 개들을 버리기도 쉬웠을 것이다. 애초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개를 입양한 것이 아니었겠지.
몇 주 전에 비해 보호소의 녀석은 많이 달라 보였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꼬리를 흔들던 여유는 사라졌고 바닥에 엎드려 곁눈질로 우리를 쳐다봤다. 차를 타고 병원으로 오는 길에 꾸벅꾸벅 졸았다. 케이지 안으로 손을 넣어 머리를 만지니 녀석은 앞다리를 쭉 펴서 기지개를 켜고 내 손가락을 핥았다. 긴 꿈에서 깨어난 듯 표정이 조금 편안해 보였다.
녀석은 아토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됐다. 간호사 선생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아토를 보고 있으면 보호소 펜스 안에서 마주쳤던 많은 눈이 떠오른다. 아토가 우리에게 특별해진 것처럼 보호소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그들 모두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글·사진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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