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앵무새와 함께 살고 있다. 녀석을 만난 곳은 수의대 다닐 때 방학 실습을 했던 동물병원이다. 나는 학교 야생동물의학실에 소속돼 있었다. 많은 야생 조류를 만나면서 새에게 호기심과 경외심이 생겼고 새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방학 때 동물병원 실습을 나가기로 했다. 대도시의 부모님 집에서 방학을 보내며 새 진료를 참관할 수 있는 병원을 검색했다. 다행히 조류를 진료하는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실습이 시작돼 그 병원의 입원장에 사는 유황앵무를 만나기 전까지 내 인생 계획에 새와의 동거는 없었다. 분명 실습하러 갈 때는 나 혼자였는데 실습을 마치고 학교 앞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 내 차에는 한 생명이 더 타고 있었다. 실습한 병원에서 만난 새, 생전 처음 본 유황앵무와 함께였다.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에서 나는 야생동물과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도록 배웠다. 나 역시 사람이 가져야 할 윤리적 책임에 깊이 공감했다. 구조된 야생동물의 치료 목적은 원래 서식지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귀엽다고, 예쁘다고 생각해 치료진이 야생동물과 가까워지면 결국 치료 뒤에도 서식지로 야생동물을 방생하지 못한다. 어미 잃은 너구리 새끼에게 분유를 먹여 키운다 해도 너구리가 성장하면서 사람을 경계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야생에서 살아갈 수 있다. 청소나 처치를 위해 너구리 계류장에 들어갈 때도 긴 막대기로 바닥을 세게 구르면서 입으로 ‘슉슉’ 하는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사람에게 익숙해지는 건 야생동물에게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구조해 치료하는 동물에게는 의도적으로 이름을 붙이지 않고 숫자를 부여해 관리했다. 혹시라도 자연 방생에 방해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노력이다. 어미 잃은 수리부엉이 새끼들에게 이유식을 먹일 때는 수리부엉이 성조의 사진으로 가면을 만들어 고무줄을 달아 머리에 썼다. 수리부엉이 새끼들이 사람에게 각인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무사히 성체로 자란다 해도 사람에게 각인돼 자연 방생이 어렵다면 최악의 경우 안락사 고려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학 때 실습한 병원은 야생동물구조센터처럼 동물과의 거리 유지가 필요한 곳은 아니었다. 반려동물로 키우는 앵무새 진료를 보는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유황앵무와 가까워질수록 죄책감도 커졌다. 나와 친해진 앵무새의 정보를 검색해보니 녀석은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2급으로 분류돼 보호되는 종이었다. 유황앵무는 앵무목 코카투과(Cacatuidae)에 속한 앵무새를 칭한다. 주로 인도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솔로몬제도 등의 열대우림에 서식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앵무새 수출입 제재가 엄격하지 않던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을 포획하기 위해 원래 서식지가 심각하게 파괴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국적인’ 생김새,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특성이 있는 이 유황앵무를 원하는 이들에게 팔려가기 위해 수많은 개체가 포획돼 다른 대륙으로 수출됐다. 이 과정에서 코카투과의 어떤 종들은 멸종위기에 처했다. 유황앵무종 대부분은 CITES 1급 또는 2급으로 분류돼 보호됐다.
이런 내용을 알고 나니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미 그 앵무새와 조금씩 친해지고 있었다. 유황앵무는 대한민국에 사는 야생조류는 아니지만 파푸아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에서는 야생조류였다. 국내 야생조류는 치료 뒤 자연 방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으면서, 다른 나라의 열대우림에서 살아야 할 새와 개인적 교감을 하는 내가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유황앵무와 가까워지는 것에 나름의 변명거리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유황앵무는 이유식을 먹을 때부터 사람에게 키워졌을 것이다. 사람에게 각인된 앵무새, 녀석이 원래 서식지로 돌아가도 자연 생존은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사고로 날개 한쪽이 부러진 채 행인이 병원에 데려온 새라고 했다. 원래 보호자는 끝까지 찾을 수 없어 병원이 수술 뒤 임시 보호를 하는 중이었다. 두 차례 수술했지만 골절된 날개는 붙지 않았다. 왼쪽 상완골 절단 수술을 해서 날 수 없었다. 변명 같은 이유를 떠올리며 나는 유황앵무와 급격히 가까워지는 것을 애써 거부하지 않았다. 실습 기간 내내 유황앵무와의 만남이 점점 더 즐거워졌다. 녀석을 만날 생각으로 매일 다음날을 기대했다. 야생동물의학실에서 그토록 중요하다고 배웠던 야생동물과의 거리 유지에 실패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빼앗은 유황앵무와 함께 살 미래를 상상했다. 병원 원장님은 선뜻 앵무새 입양을 허락해주셨다. 유황앵무는 이후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녀석을 집에 데려오기 전 몇 가지를 노트에 적었다. 유황앵무와 함께 산다면 내가 지켜야 할 것을 생각했다. 첫째, 야생동물을 사람에게 길들여 키우려는 인간중심주의를 성찰하자. 둘째, 유황앵무가 살았어야 할 서식지의 복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셋째, 유황앵무와 함께 살면서 얻게 될 지식은 새를 위해 사용하자. 이 원칙이 일상에 묻혀 흐릿해지면 지금도 가끔 그 노트를 펼쳐본다.
그렇게 함께 살게 된 유황앵무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사랑이와 지금까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녀석과 살면서 행복한 때가 많다. 유황앵무의 표정과 깃과 발톱, 부리를 매일 보고 목소리를 듣는다. 인간에게 허락되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을 매일 목격한다. 아름답고 신비롭다. 하지만 사랑이도 행복할까? 그 답을 찾을 때마다 나는 늘 좌절한다. 차에 부딪혀 날개 한쪽을 잃은 유황앵무가 열대우림이 아닌 내장산 근처의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사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녀석의 행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도, 우리 일상에 어떤 아름다운 표현을 덧붙여도 사랑이의 삶이 행복보다 불행에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랑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늘 행복과 슬픔이 시간 차이 없이 공존한다. 이 새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던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앞으로 사랑이와의 일상에 대해 몇 편의 글을 써보려 한다. 새와 함께 살면서 알게 된 지식이 있다면 새를 위해 사용하자고 했던 다짐,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글·사진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사랑이와의 이야기는 3주 뒤에 이어집니다.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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