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슈나우저가 사라졌다 출입문도 열려 있었다

가슴줄 챙기려던 1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원칙 느슨해지면 환자가 위험해진다
등록 2023-03-02 06:31 수정 2023-03-13 00:18
한 동물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슈나우저 모습. 동물병원에서 생기는 최악의 일 중 하나는 환자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한겨레 자료

한 동물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슈나우저 모습. 동물병원에서 생기는 최악의 일 중 하나는 환자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한겨레 자료

동물병원에서 생기는 최악의 일 중 하나는 환자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사람과 달리 동물 환자는 자기가 병원에 있는 이유를 모른다. 이들은 대부분 병원이라는 낯선 곳에 갇힌 상태를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탈출할 기회를 엿본다. 입원장 문이 열리면 작은 틈이라도 머리를 들이밀어 밖으로 나가려 한다. 그들의 탈출 욕구를 아는 우리는 문을 열 때 더더욱 조심한다. 대부분의 동물병원 출입문에 2중, 3중 안전문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이 열리는 짧은 순간, 순식간에 튀어나가는 아이들을 잡지 못하면 생각하기도 싫은 사고가 날 수 있다. 차나 오토바이에 부딪혀서 사고를 당하거나, 잃어버려서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가끔 수의사들과 만나 이야기하다가 다른 동물병원에서 있었던 잃어버림 사고를 들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리고 예전의 경험이 떠오른다.

첫 당직날에 만난 첫 환자를 하필

수의대 3학년 때, 학교동물병원 실습 중 처음 당직을 서는 날이었다. 병원에서 처음 밤새우며 환자를 본다는 생각에 긴장되고 설레었다. 출혈성위장염(HGE)으로 3살 슈나우저가 입원 중이었다. 내가 입원장 앞으로 다가가니 슈나우저는 얼굴을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반짝’ 하고 눈에서 장난기가 보였는데 아직 기운이 없는 듯 옆으로 누워 꼬리만 흔들었다. 차트를 보니 일주일 전 심한 혈액성 설사로 병원에 왔던 녀석은 일주일 동안의 처치로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다음날 간단한 검사 뒤 퇴원할 예정이었다.

내 첫 당직 업무는 녀석의 산책이었다. 설사는 멎었지만 변을 보지 못한 지 사흘째라고 했다. 평소 늘 실외에서 배변하는 것에 익숙한 아이라 입원장에선 절대 변을 보지 않을 거라고 보호자는 걱정했다.

담당 수의사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짧은 산책을 준비했다. 그때 입원장이 있는 처치실 안에는 나 혼자 있었다. 처치실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녀석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전날 당직자에게서 입원장 선반의 가장 높은 칸에 보호자가 놓고 간 하네스(가슴줄)가 있다고 들었다. 내 눈높이보다 선반이 더 높았다. 딛고 올라갈 작은 의자를 가져와서 하네스를 갖고 내려왔다. 그 순간 누군가 처치실로 들어왔다가 나갔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의자에서 내려와 보니 아까 분명히 닫혔던 처치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치실 바닥에 있던 슈나우저도 보이지 않았다. 수의대에 입학한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1층 병원 복도로 뛰어나갔다. 긴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로비까지 뛰어가니 하필 병원 건물의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청소나 환기를 위해 잠시 열어둔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 입구를 통과해서 녀석은 밖으로 나가버린 걸까?

병원 건물 밖은 차가 많이 드나드는 주차장이다. 벌써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해가 지고 나면 슈나우저를 찾기 더더욱 힘들 것이다. 비상 상황이었다. 병원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손전등을 가지고 밖으로 나와 슈나우저를 찾았다. 팀을 나눠 주차장 근처 잔디밭과 맞은편 건물까지 샅샅이 돌아봤다.

“고마워, 고마워…” 말할 수밖에

시간은 천천히 동시에 빠르게 흘렀다. 슈나우저가 사라진 지 한 시간이 지났다. 이미 병원 밖은 어둠에 잠겼다. 포기할 수 없었다. 첫 당직날에 만난 첫 환자를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추운 날씨인데도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녀석의 흔적은 아무 데도 없었다. 현기증이 났다. 찬물로 세수하고 정신을 차리자는 생각으로 병원 건물로 들어갔다. 세수하고 나오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요! 여기 있어요!”

처치실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정신없이 안으로 뛰어갔다. 슈나우저는 처치실 문 뒤편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엎드려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까의 상황을 생각해봤다. 내가 선반에서 하네스를 꺼내고 있을 때 누군가 처치실에 들어왔다 나갔고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던 것 같다. 녀석은 그때 밖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열린 문 뒤로 걸어갔던 것 같다. 슈나우저가 없어졌다고 생각해서 놀란 내가 문을 활짝 열어 밖으로 나갔기에 문 뒤는 더 어둡고 아늑한 공간이 됐다. 거기서 녀석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우리 모두가 병원 밖 주차장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동안 말이다.

슈나우저는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고마워, 고마워…”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녀석의 등을 쓸어주니 슈나우저는 내 손가락을 핥으며 무릎 위로 올라와서 무릎에 턱을 괴었다.

슈나우저를 찾던 병원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하나둘 처치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 때문에 한 시간 넘게 추운 밖에서 애태웠을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다들 손가락과 얼굴이 추위에 빨갛게 얼어 있었다. 그중에 대학원생 선배도 한 명 있었다. 실습 발표 시간에 조금이라도 발표자의 불성실함이 보이면 발표자를 끝까지 매섭게 혼내는 것으로 유명한 조교 선생님이었다. 나는 혹독한 질책을 예상 혹은 기대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고생시켰다는 것에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자고 있던 네 편한 얼굴이 떠올라

“입원 환자 바닥에 내려놓을 때면 1초라도 눈을 떼면 안 되는 거, 이제 왜 그런지 알겠지요? 그리고 환자 사라지면 항상 문 뒤부터 먼저 봐야 해요. 그런데 잘한 건 하나 있어요. 그 상황에서 바로 도움 요청한 거.”

이 말을 남기고 그 무섭다고 알려진 선배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밖으로 나갔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슈나우저의 머리와 배를 한 번씩 쓸어준 뒤 나를 보며 씩 웃고 나갔다. 직접적인 위로의 말은 없었지만 나는 그때 큰 위로를 받았다. 그들 모두 슈나우저의 안위를 걱정했기에 안도하고, 동시에 죄책감에 눈물 흘리던 내 마음도 살펴줬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동물병원 처치실에서 환자를 바닥에 내려놓을 때는 그 순간 꼭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위험한 돌발 상황이 생기는 동물병원의 환경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환자와 사람의 언어로 소통할 수 없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긴장의 끈을 놓고 원칙이 느슨해지는 순간, 위험에 노출되는 건 동물 환자임을 뼈저리게 알았다.

오래전 그날을 떠올리는 지금, 고마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깜깜해진 동물병원 주변에서 강아지 이름을 부르면서 찾아다녔던, 같이 애태웠던 사람들이다.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내가 바닥까지 내려가 자학하지 않도록, 하지만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담백한 조언을 해준 조교 선생님의 얼굴도 떠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지금 떠오르는 가장 고마운 얼굴은 그날 밖으로 나가지 않고 문 뒤에서 잠자고 있던 슈나우저의 편안한 얼굴이다.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