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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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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반려견 키울 자격 있나요?

밤에 짖는다고 입이 묶인 새끼 푸들, 동물이 불행한 건 사람의 욕심 때문
등록 2022-10-07 02:02 수정 2022-10-07 08:33
펫숍에 전시된 반려동물들. 한겨레 자료 사진

펫숍에 전시된 반려동물들. 한겨레 자료 사진

3개월 된 크림색 푸들, 크림이가 병원에 왔다. 크림이가 밥을 잘 안 먹은 지 일주일 정도 됐다. 척추뼈 마디마디가 두드러지게 눈에 보일 정도로 저체중이었다. 어린 푸들의 급격한 체중 감소? 건강하고 어린 푸들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얼굴 쪽을 만지려 하면 크림이는 침대 밑으로 도망쳐 낮게 으르릉거렸다. 보호자는 크림이가 특히 밥그릇을 무서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밥그릇 앞에 가긴 했다. 하지만 곧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면서 멀리 도망친다고 했다. 한 달 전 입양했을 때는 밥을 잘 먹고 침도 안 흘렸는데 갑자기 밥그릇을 무서워한다고 했다.

고무줄이 살 파고들어 칼로 벤 듯한 상처가

처치실로 데려와서 보니 얼굴 상태가 엉망이었다. 얼굴에서는 악취가 났고 털과 진물이 엉켜서 입 주변에 말라붙어 있었다. 특히 입 주변을 만지려 하면 크림이는 으르렁거리면서 온몸으로 저항했다. 약물로 잠깐 크림이를 재우고 입 주변의 털을 미는데 예상하지 못한 물건이 보였다. 노란색의 얇은 고무줄이었다. 고무줄은 크림이의 입 주변 피부에 깊게 파고들어 잘 보이지 않았다.

고무줄을 당겨보니 피와 고름이 흘러나왔다. 고무줄을 제거하고 세척과 소독을 했다. 크림이의 입 주변 피부에 뭉툭한 칼로 벤 것처럼 깊은 상처가 생겼다. 크림이는 밥그릇을 무서워한 것이 아니었다. 밥을 먹으려 입을 벌리면 고무줄이 파고든 입 주변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서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보호자에게 이런 고무줄을 본 적 있냐고 물었다. 보호자는 놀라고 당황했다. 일주일 전, 크림이가 밤에 짖어서 입에 고무줄을 감아뒀다고 했다. 다음날 출근하려면 일찍 자야 했는데 크림이는 계속 짖었다. 고무줄을 감아두니 더 이상 짖지 않았다. 다음날 일어나서 풀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보호자는 고무줄을 잊어버렸다. 얇은 고무줄은 곧 크림이의 피부를 파고들어 털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마취에서 깨어나 보호자 품에 안긴 크림이는 행복해 보였다. 크림이는 보호자의 손등과 얼굴을 열심히 핥아줬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사람인데도 크림이는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그에게 주고 있었다.

병원에서 종종 만나는 이런 순간에 내 마음은 늘 불편해진다. 개는 사람에게서 먹을 것과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받았지만 대신 야생성이라는 자유를 반납하며 진화된 동물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를 가질 수 없는 개라는 동물,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사람 곁을 오래 지킨 개를 생각하며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크림이가 밤에 짖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훈련해야 하나요?”

보호자는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대답하기 전에 나는 잠깐 망설였다. 지금 중요한 건 훈련 방법이 아니다. 자신이 개와 함께 살 준비가 된 인간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크림이의 하나뿐인 가족이 돼줄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우연히 태어나서 마주한 이 세상을 살 만한 곳, 믿을 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삶의 첫 존재, 우리 모두가 원하는 그 가족 말이다.

“못 짖게 하려면 어떻게 해요?” 질문이 틀렸다

크림이는 펫숍에서 입양한 아이였다. 보호자는 최근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외로웠다고 말했다. 우연히 펫숍 앞을 지나가다가 투명창 안의 강아지를 봤고 귀여운 외모에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엔 퇴근 뒤 작은 강아지가 자취방에서 자기를 반겨주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크림이는 밤에 점점 더 많이 짖었고, 똥오줌을 방 안 곳곳에 싸서 결국 작은 울타리 안에 갇혀 살게 됐다. 그럴수록 크림이는 작은 소음에도 더 예민하게 짖고 낑낑댔다.

크림이는 태어나 2개월 된 즈음 지금 보호자에게 입양됐다. 2개월 된 강아지는 아직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 모견은 2개월 된 새끼에게 이유(젖을 그만 먹게 함) 훈련을 하며 먹고 싸고 노는 것을 지켜보다가 필요할 때 개입해 교육한다. 이 시기를 통과하며 강아지들은 자연스럽게 세상이 두려운 곳이 아니라 환하고 즐거운 일로 가득 찬 곳임을 배운다. 하지만 펫숍에서 산 강아지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다. 보통 엄마 젖도 떼지 못한 상태에서 펫숍의 투명창 안, 환한 조명 아래 전시되기 때문이다.

하루 중 12시간 이상 어두운 방에 혼자 있어야 하는 것은 3개월 된 강아지에게 가혹한 일이다. 퇴근 뒤 보호자는 한두 시간 크림이와 놀아줬다지만 새로운 집에 적응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낮 동안 활동량이 부족하면 밤에 깊은 잠을 자기 어렵다. 조용한 밤이 되면 문 밖 계단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는 더 크게 들렸을 것이고 크림이는 그때마다 날카롭게 짖었을 것이다. 새로운 집을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느끼게 된다면, 그리고 보호자를 신뢰하게 된다면 크림이의 불안증은 자연스럽게 개선됐을지도 모른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동물보호센터와 관련한 새로운 공지를 확인했다. 개 50여 마리의 사진과 이름이 적혔는데, 모두 7일 뒤 안락사 시킬 예정인 개였다. 해당 보호소 쪽에 문의하니 유기 동물은 점점 늘어나는데 새로운 보호자에게 입양되는 수가 너무 적어 보호소가 포화상태라고 했다. 보호소에 있는 개들 사진에서 흐릿한 눈의 노령견, 흰색 푸들이 보였다. 문득 크림이가 떠올랐다. 준비 없이 충동적으로 입양한 뒤의 과정은 특징적 형태가 있다. 입양된 동물은 오래 방치되다가 지인의 지인, 그 지인의 부모 혹은 먼 친척에게까지 물건처럼 떠돌다가 결국 유기로 이어져 보호소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많다.

대도시에 사는 대학생 손주가 원룸에서 키우던 개를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시골집에 보내는 경우도 많다. 대학생활이 바빠지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하고 군대도 가야 하니 개를 키우지 못할 이유 하나쯤 찾기란 어렵지 않나보다. 결혼 혹은 임신 이후에 키우던 개, 고양이를 시골집에 보내는 일도 많다. 도시가 아닌 시골집으로 보낸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좀 덜었을까? 넓은 마당에서 자유롭게 살 것이라고 애써 믿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착각이고 얄팍한 정신승리다.

“시골 가면 자유롭겠지” 얄팍한 정신승리

그들이 시골로 보낸 개를 만나는 게 시골 수의사인 내 일이다. 그 개들은 오랫동안 혹은 평생 자기의 첫 가족을 기다린다. 나는 그런 개들을 보며 속이 터질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1m 짧은 목줄에 묶인 채 남은 평생을 마당에서 지내기도 한다. 목줄이 풀린 어느 날, 열린 문으로 나가서 큰 개에게 물려 죽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살도록 태어난 생명은 없다. 그렇게 살도록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외로워서, 귀여워서, 과시하고 싶어서, 한번 키워보고 싶어서 하는 가벼운 입양이 이 생명들의 삶을 불행과 고통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가장 핵심에는 돈만 내면 누구든 쉽게, 귀엽고 예쁜 동물을 살 수 있다고 부추기는 펫 산업과 그 산업을 지탱하는 지옥 같은 개와 고양이 농장이 있다.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시골 수의사의 동물일기: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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