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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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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이와의 저 깊은 사랑

부쩍 큰 진돗개와 장난치다 세 차례나 물려 깊은 상처…동물병원 간호사와 새 보금자리
등록 2023-02-10 23:07 수정 2023-02-16 08:55
노랑이는 눈이 크고 갈색 털이 풍성하게 흔들리는 개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조금 튀어나온 부정교합마저 참 귀여웠다. 허은주 제공

노랑이는 눈이 크고 갈색 털이 풍성하게 흔들리는 개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조금 튀어나온 부정교합마저 참 귀여웠다. 허은주 제공

“노랑이가 또 물렸어요, 어떡해요.”

보호자는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온 것 같았고 노랑이는 보호자 품에서 조용히 몸을 떨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긴 한숨을 쉬었다. 간호사 Y의 표정도 어두웠다. 한두 달 사이에 벌써 세 번째 물림 사고였다. 자세히 보니 노랑이 목덜미에 검붉은 피가 털과 함께 뭉쳐 있었다. 털을 밀어보니 생각보다 상처가 심각했다. 목덜미 등 쪽부터 오른쪽 목 아래까지 피부와 근육이 길게 찢어져 있었다.

노랑이가 병원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났다. 1~2년 전이었다. 주차장에 들어와서 추위를 피하던 개에게 몇 번 밥을 챙겨줬더니, 녀석은 아예 그 주차장에 눌러앉았다고 했다. 사람의 작은 호의에 쉽게 마음을 연 다정한 녀석은 눈이 크고 갈색 털이 풍성하게 흔들리는 개였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조금 튀어나온 부정교합이었는데 그 모습마저 참 귀여웠다.

엄살 많은 노랑이가 가장 싫어하는 발톱 깎기

사람을 잘 따르고 누구보다 착한 노랑이가 질겁하는 것이 유일하게 하나 있었다. 바로 발톱 깎는 일이다. 발톱깎이가 발에 닿기도 전에 소리부터 지르는 노랑이의 엄살이 안쓰러우면서도 웃음을 참기 어려울 정도로 귀여웠다. 발톱을 깎을 때면 노랑이는 병원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고, 모든 병원 스태프가 함께 노랑이를 어르곤 했다. 그렇게 떠돌이 개는 우리 병원에서 건강검진과 기본접종을 마쳤다. 그때 노랑이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 행복해 보였다.

시련이 찾아온 것은 노랑이네 가족이 두 달 된 어린 진돗개 봄이를 입양하면서였다. 노랑이는 누구에게나 그랬듯이 봄이에게도 곧 친밀하게 옆자리를 내줬고, 어린 봄이의 장난도 다 받아줬다. 어린 진돗개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말이다.

봄이는 곧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건강하게 쑥쑥 자랐다. 노랑이의 몸무게는 4~5㎏ 정도였는데 봄이가 4개월이 되자 가뿐하게 노랑이 몸무게를 뛰어넘었다. 봄이가 성장하면서 둘이 하던 몸싸움 장난은 어느 순간 노랑이에게 위협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 노랑이가 봄이에게 물려서 왔을 때는 봄이가 막 7개월이 됐을 때다. 보호자는 노랑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왔다. 노랑이 엉덩이에 이빨 자국이 선명했고, 배 쪽에는 찰과상이 있었다. 보호자는 봄이가 어릴 때부터 노랑이와 장난치는 게 습관이 됐고, 아직 어려서 무는 힘을 조절하지 못해 실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동물에게 물린 경우, 처음에는 이빨 자국 정도로 상처가 작아 보여도 근육 내 감염이 진행되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상처가 악화되면 마취하고 수술해야 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한 달 뒤 노랑이가 다시 병원에 왔을 때는 봄이가 노랑이의 등을 물어서였다. 봄이와 노랑이가 격렬하게 놀 때 다시 물렸다는 것이다. 봄이는 몸무게가 13㎏ 이상으로 자라 있었다. 다행히 이빨이 깊게 박히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이 다시 생길까 걱정됐다. 봄이와 노랑이가 쫓고 쫒기며 놀다가 봄이가 노랑이에게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이니 노랑이는 배를 보이며 눕는 항복 자세를 보였다고 했다. 봄이는 그런 노랑이를 앞발로 툭툭 건드렸고 노랑이가 몸을 돌려 등을 보이니 갑자기 등을 물었다고 했다. 더 걱정됐다. 봄이가 노랑이를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장난감 정도로 취급하는 듯 느껴졌다.

동물병원 간호사에게 입양된 노랑이는 이제 그 가족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가 됐다. 허은주 제공

동물병원 간호사에게 입양된 노랑이는 이제 그 가족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가 됐다. 허은주 제공

두 반려견 격리 어려워, 눈물의 이별

보호자에게 둘을 격리하도록 권했다. 보호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둘이 사이좋게 지내고, 봄이가 노랑이를 위협하면 혼내면서 교육하겠다고 했다. 또다시 물림 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 일어나면, 둘 중 한 아이는 다른 곳으로 입양을 보내도록 권했다. 보호자는 당장 입양처를 알아보기 어렵고, 집에서 봄이와 노랑이를 격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때 병원 간호사 Y가 나에게 대화를 청했다. Y의 눈빛은 간절했다.

“제가 노랑이 입양할게요. 오늘 봄이랑 같이 있는 집으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요.”

Y는 노랑이의 두 차례 물림 사고를 보면서, 앞으로 다시 노랑이가 물린다면 집으로 데려오자고 가족에게 이야기해놓았다고 말했다. 발 근처에 발톱깎이만 대도 무서워 울 정도로 겁도 엄살도 많은 노랑이였다. 그런 노랑이를 공포 상황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고 했다. 내가 아는 Y는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지고 가족으로 함께하는 사람이다. 나도 노랑이를 봄이와 함께 있는 환경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노랑이 보호자에게 말했다.

“봄이가 이번에는 목을 정확하게 물었고, 이빨이 깊게 박혀서 근육이 찢어졌네요. 격리하시기 어려우면 노랑이를 오늘 병원에 두고 가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책임지고 노랑이가 잘 지낼 수 있도록 할게요.”

보호자가 당장 노랑이를 데려간다 해도 봄이와 격리해두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보호자는 망설이다가 노랑이를 잘 부탁한다며 노랑이를 병원에 남기고 갔다. 보호자는 눈물을 흘리며 병원 문을 나섰고 노랑이는 보호자가 나간 문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생각해보면 노랑이가 처음 물려서 병원에 온 순간부터, Y는 마음에 방 하나를 만들어 그 안에 노랑이를 살게 했던 것 같다. 세 번째 물렸던 날, 노랑이는 Y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 단란한 가족의 충실한 구성원이 됐다. 이제 노랑이는 Y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몇 년 뒤 Y는 첫딸을 출산해, 지금 그 딸이 두 살이 됐다. 노랑이는 Y의 딸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Y의 딸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 돼주고 있다.

노랑이가 똥 싸면 아기도 덩달아 ‘끙’

최근에 Y가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노랑이가 화장실에 가서 똥 싸는 자세를 취하면 아기도 화장실 가서 따라 ‘끙’ 하고 힘주고 있어요. 그렇게 둘이 지내는 거 보면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요. 아기가 노랑이와 같이 살면서 크는 거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도 Y를 따라 한참 웃었다.

Y는 딸과 노랑이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 Y의 저 깊은 사랑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Y의 사랑으로 함께하게 된 생명들의 관계는 따뜻하다. 태어나면서 노랑이와의 진짜 우정을 경험한 Y의 딸은 동물과 함께 웃고 울 줄 아는,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자기보다 약한 생명을 위해 결정적 순간에 좋은 선택을 하는 용기도 갖게 될 것이다. 엄마 Y처럼 말이다. 새삼스럽게 간호사 Y와 함께 일하는 동물병원의 일상이 고맙게 느껴졌다.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는지는 참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다.

글·사진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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