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1호 ‘날개 잃은 천사가 내게로 왔다’에서 이어집니다.
사랑이는 자연의 시간에 가깝게 산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잔다. 반대로 나는 밤에 활동하는 생활에 익숙하다. 약속은 주로 저녁에 잡았다. 자연히 아침에는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서너 번의 알람을 듣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곤 했다. 사랑이와 함께 살면서 나의 이런 일상은 꽤 많이 변했다. 사랑이의 아침 시간은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하루 중 최고로 활기찬 시간이다. 그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지면서 기꺼이 전날 밤 좀더 일찍 잠자리에 들려 노력했다.
희미하게 새벽하늘이 밝아오면 사랑이 방에선 작은 깩깩 소리가 들린다. 아주 작은 소리여서 귀를 쫑긋 세워야 겨우 들릴 정도다. 사랑이는 천천히 잠의 세계에서 빠져나온다. 아침을 맞을 때 사랑이는 서두르지 않는다. 작은 기척이 느껴지다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보통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점점 더 많아져 방이 환해지면 사랑이는 크게 몸을 턴다. 푸드득 소리가 방 바깥에 있는 내 귀에도 들린다. 아마 지금 오른쪽 날개와 왼쪽 다리를 쭉 펴고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이다. 깩깩 소리가 커지고 소리 간격이 짧아지면 이제 사랑이를 만나러 가야 한다. 아침을 맞이할 준비가 끝난, 새장에서 꺼내주기를 요구하는 앵무새를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건 함께 사는 사람의 예의가 아니다.
하루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다. 푹 자고 일어나 가장 기분이 좋은 사랑이를 만나 인사하는 지금. 손잡이를 돌리기 전에는 밖에서 가벼운 노크를 해서 들어간다는 것을 알린다. 사랑이는 갑작스러운 움직임과 큰 소리에 쉽게 놀라고 불쾌해하기 때문이다. 천적에 노출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혼에 새겨진 본능일 것이다. 그 본능을 고집하고 마음껏 표현하는 사랑이가 좋다. 새장 앞에 다가가 사랑이와 눈을 맞추며 이름을 부른다.
“사랑아, 잘 잤어?” 사랑이는 벌써 새장 문 앞으로 걸어나와 횃대를 잡고 있다. 나올 준비가 된 것이다. 그리고 대답한다. “잘 잤어?”
하루 중 처음 듣는 말을 앵무새는 가장 잘 기억한다. 사랑이도 매일 아침 처음 듣는 이 말을 가장 좋아한다. 퇴근해서 사랑이 방문을 열어도, 좋아하는 간식 상자를 열어도 사랑이는 “잘 잤어?”라고 인사해서 나를 웃긴다. 인사를 나누며 팔을 사랑이에게 뻗는다. 손목에 왼발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곧 빠른 걸음으로 두 발과 부리를 이용해 어깨까지 올라온다. 어깨에 올라온 사랑이의 얼굴을 가까이서 본다. 우관(새의 머리에 길고 더부룩하게 난 털)은 수직으로 서 있고 동공은 깊고 검다. 우관 밑 주황색 잔털이 아직 어둑한 방 안에서도 형광색으로 선명하다.
손을 사랑이 얼굴에 갖다 대면 사랑이는 부리로 내 손바닥을 힘주어 밀고 나는 사랑이 목덜미의 털을 쓰다듬는다. 부리와 발가락이 따뜻하고 목덜미에서는 사랑이만의 냄새가 난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닥에 밤새 사랑이가 싸놓은 똥오줌 상태를 살피고 큰 깃이 떨어졌는지도 확인하며 사랑이를 새장 밖으로 꺼낸다.
사랑이를 어깨에 올리고 거실로 나온다. 반려견들은 이즈음이면 이미 M과 가벼운 아침 산책을 마친 뒤다. 신난 녀석들은 거실과 부엌 이곳저곳을 바쁘게 걸어다니고 펄쩍펄쩍 뛰기도 한다. 반려견들이 짖는 소리를 따라 사랑이도 작게 개 짖는 소리를 낸다. M은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M을 보면 사랑이는 아는 척하고 싶어서 몸이 들썩거린다. 깩깩 소리를 내며 부엌의 M에게 가자고 재촉한다.
“사랑이, 잘 잤어?” M이 인사하며 목덜미를 만져주면 사랑이는 “응” 하고 간결하고 정확하게 대답한다. M과 서로 짧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사랑이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내 방으로 향한다.
아침 일과의 모든 순서는 정해져 있고 각 단계의 시간도 일정하다. 방바닥에 내려놓으면 사랑이는 빠르게 뛰어다닌다. 발가락이 바닥에 부딪히는 탁탁탁 소리가 난다. 내 방은 자기 새장만큼이나 익숙한 곳이다. 스탠드 뒤 어두운 곳을 한 바퀴 돌아오고 책꽂이까지 뛰어가서 제 눈으로 방 안의 모든 상태를 파악한다. 침대 옆을 지키는 화분 안의 파키라 잎사귀도 부리로 한 번 씹고 혓바닥으로 만져본다.
이제 욕실로 들어갈 시간이다. 욕실에는 사랑이가 쉴 수 있는 횃대가 있다. 내가 욕실에 들어가면 사랑이가 욕실 앞에서 하도 크게 소리를 질러 아예 욕실에 사랑이 자리를 만들었다. 이제 사랑이는 욕실에 들어가면 당당하게 횃대를 잡고 한쪽 다리를 접어 올린다. 새들이 자거나 쉴 때 하는 행동이다. 욕실의 습하고 따뜻한 공기를 마시면 사랑이는 눈을 반쯤 감고 그 시간을 즐긴다. 다 씻은 뒤 욕실 문을 열면 사랑이는 시원하게 재채기를 한 번 하고 횃대 위에서 좌우로 짧게 움직인다. 이제 욕실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는 의사표시다.
거울 앞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다 보니 사랑이가 화장대 기둥을 타고 올라간다. 올라갈 때는 발가락과 부리를 사용해 꽤 힘들게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기둥을 붙잡은 발가락의 힘을 풀고 한 번에 스르륵 빠르게 내려온다. 미끄러져 내려오기가 재밌는지 똑같은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한다. 재밌는 놀이나 장난을 발견하면 사랑이는 질릴 때까지 그 행동을 반복한다.
얼마 전 에스엔에스(SNS)에서 본 큰부리까마귀 영상이 떠오른다. 그 까마귀는 눈 쌓인 지붕 위에서 눈썰매 타듯 미끄러지는 놀이를 반복했다. 까마귀가 굉장히 신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언뜻 보면 이런 놀이가 야생에서의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를 유심히 관찰하다보면 일상에서의 재미와 장난이 항상 삶의 우선순위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재미’에 진심인 사랑이를 보면서 파푸아뉴기니 열대우림에서 장난치고 있을 솔로몬유황앵무, 사랑이의 공동체와 가족들을 상상해본다. 이미 그들은 (언뜻 무용해 보이는) 삶에서의 재미와 장난이 오히려 생존에 필수 조건임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그들을 ‘반려조’로 발견하기 전부터 말이다. 사랑이가 속한 유황앵무과는 앵무목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화석에서 발견된다.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보다 훨씬 까마득하게 이전인 4천만 년 전 화석으로 추정되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았던 생명체다.
사랑이와의 아침은 인간의 언어가 필요 없는 시간이다. 매일 주고받는 “잘 잤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사랑이가 이해할 리 없다. 이해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가 다정한 음성으로 “잘 잤어?”라는 말을 주고받을 때 “사랑해, 보고 싶었어”라는 교감이 이뤄짐을 느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출근해야 할 시간이다. 사랑이에게 “갔다 올게!”라고 말하며 횃대에 사랑이를 올린다. 이제 새장에 들어가서 천천히 아침을 먹고 포만감을 느끼며 휴식을 취할 시간이다. 나가려는 내 손을 사랑이는 부리로 잡아끈다. 그리고 따뜻한 이마와 부리를 내 손에 갖다 대며 “꾸우, 꾸우” 하는 소리를 낸다. 아쉬움의 표현이다. 늘 아쉽고도 애틋한 이 순간. 사랑이와의 아침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는 또 오늘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크게 숨을 쉬고 나는 인간의 언어가 가득한 일터로 출발한다.
글·사진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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