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된 작은 요크셔테리어(요키)가 병원에 왔다. 이삼 주 전부터 통 움직이지 않고 걸을 때는 한쪽 다리를 종종 들고 다닌다고 했다. 우리 병원에는 처음 온 환자였다. 걷는 모양을 관찰하니 왼쪽 뒷다리에 체중을 덜 싣고 걸었다. 신체검사 중 엉덩이 근처에 손을 대니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뒷다리를 굽혔다 펼 때는 소리를 질렀고 다리를 끌어당겼다. 통증이 심해 보였다. 무릎 관절을 촉진하니 양쪽 모두 슬개골 탈구가 있었다. 고관절을 천천히 구부렸다 펴봤다. 관절 내 구조물이 충돌하는 듯한 염발음(Crepitation)이 느껴졌다. 무릎, 고관절 모두 안 좋았지만 통증 반사 정도를 보면 고관절 문제가 통증의 직접 원인인 것 같았다.
엑스레이를 찍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뒷다리를 평가하려면 기본 두 장을 촬영한다. 배를 보이고 누운 자세와 옆으로 누운 자세이다. 개는 낯선 공간에서 배를 보이고 눕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엑스레이 촬영에서 정확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세가 틀어지면 어렵게 찍은 엑스레이를 진단에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 뒷다리 촬영의 정확한 자세에서 골반과 두 다리는 양쪽이 대칭적으로 반듯해야 한다. 하지만 요키의 촬영은 만만치 않았다. 2㎏이 조금 넘는 이 작은 녀석은 온몸으로 격렬하게 저항했다.
녀석을 어르고 달래서 하늘 보고 눕는 자세를 겨우 취했지만 촬영하는 순간에 움직여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두세 차례 반복한 뒤 겨우 촬영에 성공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왼쪽 대퇴골두는 골반 관절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있었다. 대퇴골두 탈구였다. 많은 경우 개의 대퇴골두 탈구는 고관절 이형성(Hip Dysplasia)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는 유전적 소인이 있는 질병이다. 대퇴골두가 비정상으로 평평하거나 골두를 감싸는 관골구가 얕게 형성되는 것 등이 원인인데, 이 경우 관절에 비정상적 힘이 가해져서 고관절에는 만성 관절염과 통증이 유발된다.
보호자에게 물었다. 이 정도로 완전 탈구 상태였으면 그동안 통증이 극심했을 거라고, 세 다리로만 걷지는 않았는지 물으니 보호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움직임이 줄어들고 왼쪽 뒷다리에 힘을 덜 싣긴 했지만 네 발을 다 딛고 걸을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아마 오래전부터 고관절 이형성이 진행돼 만성통증에 익숙해져서 그럴 것이라 설명하고 수술 상담을 권했다. 보호자는 좀더 지켜보다가 결정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진통제 주사와 먹는 약을 처방했다.
다음날 오전 화가 잔뜩 난 보호자들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어제 자신들의 개가 병원에 다녀온 뒤 이상해졌다고 했다. 병원에 오기 전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바닥에 살짝 딛고 다닐 수 있었는데, 병원에 다녀온 뒤 아예 다리를 들고 다니고 훨씬 아파한다는 것이었다. 보호자가 촬영한 휴대전화 동영상에서 요키의 왼쪽 뒷다리는 완전한 파행(절뚝거림)을 보였다. 엑스레이 찍는다고 안으로 들어가서 요키한테 뭘 한 거냐고 언성을 높였다. 떨어뜨리거나 때렸냐고 소리치며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보자고 요구했다.
진정하시라는 내 말에 보호자가 점점 더 흥분하는 것 같아서 아무 말 하지 않고 보호자와 함께 CCTV를 0.5배 저속으로 돌려 봤다. 화면 속 요키는 처음부터 발버둥 치며 저항했다. 몸부림이 심해 요키의 호흡이 힘들어지면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게 했다가 다시 촬영 자세를 취하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화면에 담겨 있었다. 그들이 의심한 것처럼 개를 때리거나 떨어뜨리는 장면은 없었다. 요키를 달래려 노력하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당시 상황을 되돌아봤다. 건강한 고관절은 엑스레이 촬영을 위한 보정 정도의 힘으로는 탈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유전 질병인 고관절 이형성으로 어제 요키가 우리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아탈구(Subluxation·탈구에 가까운)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간호사는 요키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고 저항하는 요키가 몸을 뒤틀면서 아탈구 상태에 있던 대퇴골이 비교적 쉽게 빠졌을 것이다. 촬영 뒤 갑작스러운 완전 파행이 시작됐다면 이 시나리오가 가장 개연성이 높아 보였다.
머릿속에서 생각은 정리됐지만 친절함과 평정심을 유지하며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CCTV를 보기 직전까지 내가 자기 개를 때리고 그 사실을 숨겼을 것이라 확신하며 진료대를 손으로 내리친 사람이었다. 억울한 마음, 보호자에게 서운한 감정이 동시에 올라왔다. 유체이탈 화법으로 보호자에게 최대한 담백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요키의 수술 일정을 잡았다. 이후 요키는 무사히 회복했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당시 상황을 복기하면서 좀더 선명해졌다. 진료 과정에서 보호자와 나 사이에 수의학적 지식의 불균등함이 존재한다는 자명한 사실이 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아픈 환자의 상태에 대해, 검사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일에 대해 최대한 성실히 그리고 자세히 고지해야 함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진료는 보호자와 수의사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 일이기에 서로 신뢰가 크게 깨진다면 이후의 진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피해는 아픈 개들이 떠안게 된다. 요키를 둘러싼 이번 사건에서 서로를 고통스럽게 한 이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일을 겪으며 나에게 변화가 생겼다. 나쁘게 말하면 방어적 면이 커졌고, 좋게 말하면 앞뒤 상황을 보며 신중해졌다. 몸부림이 심하고 파행이 있는 노견은 관절 엑스레이 촬영을 할 때 마취하고 찍기를 권한다. 마취 이후 안전하게 회복할지 걱정되는 노견은 아예 처음부터 2차 병원으로 전원을 권하기도 한다. 2차 병원 내원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탈구를 포함한 위험 가능성을 인지한다는 서면동의서를 받고 검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엑스레이 촬영뿐 아니라 병원 안의 많은 검사와 처치에도 이와 같이 신중해지는 편이다. 늘어나는 절차는 번거롭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마다 이 모든 과정이 요식행위가 아닌지 자신에게 물으려고 노력한다. 환자의 안전과 보호자의 알 권리, 그리고 수의사인 나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인지 매 순간 질문한다.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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