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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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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반려동물은 내가 즐겁자고 태어난 게 아니야

아미가 8년간 서서히 가족이 되면서 보호자가 느끼고 배운 훈련과 학대의 경계
등록 2023-04-21 06:51 수정 2023-04-29 07:39
반려견 아미가 집안에 적응한 모습

반려견 아미가 집안에 적응한 모습

아미는 흰 털이 부드러운, 까맣고 동그란 눈을 가진 작고 예쁜 강아지였다. 아미를 처음 만난 곳은 예전에 근무했던 동물병원이다. 보호자는 개인 사정으로 아미를 키우기 어려워했고, 좋은 입양처를 찾아달라며 아미를 병원에 두고 갔다. 보호자가 아미를 병원에 두고 간 날, 입원장 안에 엎드려 조용히 동그란 눈만 굴리던 녀석에게 마음이 갔다. 몇 달을 망설이다가 가족을 설득해 아미를 입양했고 우리는 한집에 살게 됐다.

하필 지각한 날 “아미야!”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살며 병원에서는 전혀 몰랐던 아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미는 사람과 함께 일상을 사는 것에 서툴렀다. 우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법을 몰랐다. 원하는 게 있어도 짖지도 낑낑대지도 않고 조용히 자기 방석 위에 엎드려 있었다.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때도 아미는 멀리 떨어진 곳에 엎드려서 우리를 쳐다봤다. 내 무릎 위에 다른 반려견이 편안하게 누워 있어도 그 모습을 바라볼 뿐 내 무릎 위로 올라오려는 욕심도 내지 않았다. 자신을 이방인으로 규정하고 우리 집의 가족이 되기를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것 같았다.

그날, 눈을 떴을 때 이미 지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늦게 일어난 나는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가방을 들고 신발장으로 걸어가는데 바닥에 축축한 무언가를 밟았다. 양말이 다 젖을 정도로 바닥에 물기가 흥건했다. 짜증이 밀려왔다. 아미는 우리 집에 온 뒤 한 번도 배뇨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날 아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처음 배뇨 실수를 한 아미가 아픈 건 아닌지 걱정하고 살펴야 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아미를 걱정하는 쪽이 아니라 아미에게 화내는 쪽을 선택했다.

“아미야!”

목소리 높여 아미를 찾았다. 늘 혼자 앉아 있던 방석 위에 아미가 보이지 않았다. 둘러보니 아미는 식탁 밑에 앉아 있었다. 집에 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와 늘 거리를 유지하는 아미였다. 서운했다. 나는 식탁 밑 구석에 있는 아미를 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아미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미야, 너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이러려고 우리 집 왔어?”

하지만 이 말은 여러모로 틀렸다. 아미는 우리 집에 스스로 오지 않았다. 내가 아미를 데려왔다. 누군가가 어린 아미를 펫숍 투명창에 전시했을 때도, 또 다른 누군가 돈을 내고 아미를 투명창에서 꺼내어 사갔을 때도, 그리고 그 사람이 아미를 포기하고 병원에 두고 갈 때도 아미가 선택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집에 빠르게 적응하리라 기대하며 아미를 데려온 것도 내 선택이었다.

입양한 지 8년이 흘렀다. 아미는 이제 퇴근하고 거실에 앉으면 아미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물고 와서 내 앞에 툭 던지고 꼬리를 흔든다.

입양한 지 8년이 흘렀다. 아미는 이제 퇴근하고 거실에 앉으면 아미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물고 와서 내 앞에 툭 던지고 꼬리를 흔든다.

이미 한 번 이별을 경험했기에

식탁 밑에서 내 호통을 들으며 엎드려 있던 아미는 그 상태로 오줌을 쌌다. 아미는 모든 걸 체념한 듯 고요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순간 알았다. 나는 아미가 이 집에서 제일 믿는 구석이었다. 아직 낯선 이 집에서 아미와 제일 오래 알아온 사람이 나였다. 제정신이 돌아오니 죄책감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의지했던 가족과 이미 한 번 이별을 겪은 녀석은 낯선 집과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아미는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지독하게 외로웠을 것이다. 미안해, 미안해… 말하면서 아미의 등을 쓸어줬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아미에게 상처를 준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아미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로부터 8년이 흘렀다. 아미는 이제 우리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다. 퇴근하고 거실에 앉으면 아미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물고 와서 내 앞에 툭 던지고 꼬리를 흔든다. 같이 놀자는 당당한 요구를 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산책 전 하네스(반려동물의 어깨와 가슴에 착용하는 줄)를 꺼내면 신나서 뱅글뱅글 돌며 온몸으로 기쁨을 전한다. 좋아하는 간식통 앞에서 간식을 요구하며 왕왕 짖기도 한다. 처음 우리 집에 와서 불안하게 지냈던 시기를 생각하면 아주 큰 변화다. 아미는 어떻게 이리 변했을까?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다만 내 욕심으로 아미를 바꾸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아미에게 호통쳤던 그날, 아미를 껴안고 펑펑 운 뒤로 나도 바뀌었다. 미안한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내 마음을 단단히 바꿔 먹었다. 아미가 평생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 바라만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 집에서 자기 방식대로 편안하기를 바랐다. 내 조급증이 사라지니 아미는 자기만의 속도로 한 걸음씩 걸어와 어느새 우리 가족이 돼 있었다. 욕심만 앞세워 아미를 다그쳤던 나를 용서하고 다시 나를 믿어주는 아미를 보면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반려견에게 받는 사랑이 내가 그에게 주는 사랑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다.

아미의 자는 모습

아미의 자는 모습

엄연히 나와 다른 삶을 사는 개별 생명체

동물병원에선 입양한 지 얼마 안 된 손바닥만 한 작은 개와 고양이를 자주 만난다. 진료대 위에서 꼬물거리며 기어다니는 녀석들을 보면 보호자도 나도 “너무 귀여워요!”를 연발한다. 하지만 요즘엔 귀엽다는 말을 하기 전에 잠시 주저하게 된다. 귀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그 귀여움의 대상이 되는 동물 사이에 명확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함을 알면서다. 귀엽다는 감정은 상대가 나에게 무해한 존재일 때, 위협이 되지 않을 때 일어난다. 반대로 이 작은 존재가 나를 귀찮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면 귀엽다는 평가는 쉽게 철회되곤 한다.

그들은 내 즐거움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내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지만 그들은 엄연히 나와 다른 삶을 사는 개별적인 생명체다.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의 힘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훈련과 학대의 경계를 쉽게 넘나든다. 그 성찰의 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그들의 삶은 지옥이 되고 우리는 괴물이 된다. 나의 아미가 내게 준 선물 같은 깨달음이다.

글·사진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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