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오랫동안 비어 있던 큰 건물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가 끝나면 새로운 사업장이 들어설 것 같았다. 인테리어가 끝나갈 무렵, 건물 앞을 지나가는데 못 보던 움직임이 보였다. 주차장 옆 도로변에 파란 지붕의 개집도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제 3∼4개월 된 강아지가 콘크리트 바닥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목에는 초크체인이 걸려 있고, 초크체인은 짧은 줄로 연결돼 벽에 묶여 있었다. 줄의 길이는 1m가량 돼 보였다. 개를 주차장에 묶어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건물을 지키게 하려고 키우는 걸까?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건물을 지키기엔 개의 목줄이 너무 짧았다. 게다가 처음 보는 누구에게나 꼬리를 흔들면서 반갑게 다가오는 녀석이었다. 이곳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출퇴근할 때 지나가는 곳이어서 나는 개와 계속 마주쳤고 본의 아니게 녀석의 일상을 관찰하게 됐다. 개집은 들어가면 움직이기 어려운 작은 크기였다. 개는 항상 개집 밖에 나와 있었다. 녀석이 묶인 곳은 4차선 도로변 바로 옆이었고, 지나가는 차의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도로와 인접해 있었다. 동시에 건물로 드나드는 사람과 차가 하루 종일 보이는 곳이었다. 주차장 바로 옆이어서 차도 녀석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드나드는 사람과 차를 보면서 처음에 녀석은 꼬리를 흔들며 짖거나 뒷다리로 점프해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1m 목줄을 한 상태에서 뛸 수 있는 최대의 높이로 점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녀석은 사람이 지나가도 움직이지 않고 엎드려서 무심한 얼굴로 지나가는 이를 쳐다보았다. 짖거나 점프해도 관심을 보이는 이가 없으니 아예 주변 상황에 무감각해진 것 같았다. 개가 살기에 좋지 않은 곳이었다. 3∼4개월 된 강아지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파악하고,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배워야 한다. 온갖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을 물고 핥고 뒹굴면서 온 감각으로 알아간다.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도 배우고, 주변 강아지 혹은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도 학습할 때다. 부모견, 동배 형제자매의 역할이 필요하다. 사람과 살게 된다면 함께 사는 사람과의 상호작용도 배워야 할 때다. 하지만 이 녀석이 경험하는 세상은 1m 목줄 반경 내의 세상이다. 움직이는 것은 대로변의 차, 건물을 오가는 사람들, 길을 걸어가는 행인뿐이다. 애정과 관심에 목마른 어린 강아지에게 허락된 세상은 가혹했다.
내가 병원에서 만나는 강아지들이 떠올랐다. 접종시키러 데려오는 2∼3개월령의 강아지들은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아갈 세상을 환하게 경험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주어지는 사랑을 받는다. 간식이나 칭찬 같은 긍정적인 보상을 통해 훈련된다. 처음 강아지를 입양한 보호자 역시 이 시간 동안 강아지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배운다. 사람과 강아지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다. 병원에서 만나는 강아지들이 누리는 일상을 이 녀석은 평생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선뜻 녀석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내가 힘들어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녀석과 친해지면 그의 삶이 얼마나 고될지 더 깊이 알게 될 것이 뻔했다. 한번 녀석의 얼굴을 만져주면, 등을 쓸어주고 나에게 점프하는 녀석을 안아주면 아마 나는 매일 그 녀석을 생각할 것 같았다. 그리고 녀석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할 것 같았다. 내가 녀석을 입양할 환경이 아니라는 이유로 녀석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었다. 퇴근할 때 병원에서 가져온 간식만 가끔 챙겨주면서 나는 녀석의 얼굴을 만져주는 것도 꺼렸다. 간식만 주는 나를 용케 알아보는 녀석은 나를 보면 1m 목줄을 하고도 공중으로 점프했다. 하지만 나는 간식만 물려주고 반가워하는 녀석의 등을 한 번도 쓸어주지 않았다. 간식만 주고 도망치듯 걸어 나왔다. 친해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병원에서도 이미 고통은 포화상태였다. 최선을 다해도 살리지 못한 동물들을 볼 때 느끼는 고통에 또 하나의 고통을 추가하기 싫었다.
눈이 펑펑 오는 날이었다. 밤새 온 눈이 차바퀴보다 높게 쌓여서 길에는 차가 다니지 못했다. 눈이 와서 세상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눈 신발을 신고 두꺼운 옷과 목도리로 무장을 하고 천천히 걸어서 출근하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데,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들어 보니 멀리서 녀석이 나를 보고 짖고 있었다. 밝고 경쾌한 목소리였다. 녀석은 1m 목줄을 하고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점프를 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온통 하얗게 잠들어 있는 세상에서 녀석만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눈을 헤치고 녀석에게 걸어갔다. 눈이 펑펑 오는 그 추운 지난밤을 녀석은 밖에 있는 개집에서 지냈는지 수염에 고드름이 맺혀 있었다.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녀석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얼굴 한번 만져주지 못하고 간식만 주고 돌아오던 나를 기억하고 반가워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내 얼굴을 핥아주는 개의 등을 쓸어주니 녀석은 펄쩍 뛰어올랐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을 크게 안아주었다. 눈에서 녀석과 함께 뒹굴면서 오랫동안 참아온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그 개의 관리자에게 허락받아 산책을 시키고 있다. 산책할 때는 최대한의 애정을 주고, 할 수 있는 훈련도 하려 한다. 처음에는 목줄을 당기며 앞으로 뛰어가려고만 하던 녀석이 두어 번의 산책만으로도 나와 보폭을 맞추며 걷는 법을 배웠다. 산책하면서 알게 된 녀석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이 가득한 개였다. 작은 훈련만으로도 곧 공원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산책이 가능했다. 열심히 뛰어다니다가도 잠시 쉬자는 사인을 보내면 옆에 앉아서 물을 마시고 코를 킁킁 하늘로 올리며 가만히 바람에 실린 계절 냄새를 맡기도 했다. 참 예뻤다. 잠깐의 산책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코끝이 찡해졌다. 산책을 마치고 다시 1m 줄에 녀석의 목줄을 연결할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나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다음 시간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친해질 것을 두려워하며 녀석과 거리를 두던 때보다, 당장 할 수 있는 녀석과의 산책을 하며 웃을 수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반려동물과 관련한 많은 이슈에는 냉소와 혐오가 가득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개는 개답게 키워야 한다고. 개답게 키우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보다 더 춥고 더 배고프고 더 아픈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한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게 개를 개답게 키우는 걸까? 나는 나답게 살고 싶어서 그 개를 돌보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이용되고 방치되더라도 끝까지 복종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개들에게 최소한의 우정을 보이는 게 나다운 것, 인간다운 것이라고 믿는다. 4월27일 시행을 앞둔 동물보호법 개정안에서는 2m 미만 줄에 묶어서 개를 기르는 것이 금지된다. 짧은 목줄에 묶여 좁은 세상에서 사는 개들의 삶이 개선되기를 바란다. 우선 내가 산책시키는 개의 관리자에게 이 개정안을 알리고 녀석의 환경 개선에 관해 의논할 작정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나아갈 뿐이다. 나라는 인간의 존엄을 잠깐이라도 환기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글·사진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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