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은 종종 우리 집을 ‘개새네’라고 부른다. 개와 새가 함께 살기 때문인 것 같다. 정확히는 개 둘, 새 하나와 사람들이 함께 산다. 뿌꾸는 그 개 둘 중 하나이고, 내가 성인이 된 뒤 함께 살게 된 우리 집의 첫 강아지다. 11년 전, 3개월령의 몰티즈를 입양했다. 뿌꾸가 우리 집에 온 직접적 계기는 사랑이라는 앵무새였다.(제1441호 ‘날개 잃은 천사가 내게로 왔다’ 참조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2997.html?_ga=2.146731895.2132183492.1687740756-1690649778.1680748168)
고집 센 유황앵무 사랑이는 입양 뒤 한동안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내 어깨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라오고 상냥하게 말도 걸고 가끔 노래도 불러줬지만, 다른 인간 가족인 M에게는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았다. M이 손가락을 뻗어 가까이 다가가면 꽤애액 소리를 질렀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M의 발가락도 사정없이 물어 피를 냈다. 발가락을 감싸 쥐고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M을 사랑이는 횃대 위에서 의기양양하게 바라봤다.
1년6개월 정도 사랑이의 냉대를 받던 M은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반려견을 가정 분양받겠다고 선언했다. M은 예전에 오랫동안 반려견과 함께 살았고, 반려견들의 사랑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집에서 마음 붙일 존재가 필요하다고, 사랑이에게 노력하는 것이 이젠 지친다고 말하는 M의 반려견 입양 의사를 거부할 수 없었다. 사랑이를 돌보는 일을 대부분 M이 하고 있었다.
뿌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차 보조석에 앉은 내 무릎 위에서 작고 흰 털뭉치가 잠들었다. 나는 녀석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머리를 받쳐줬다. 차의 진동과 소음이 있음에도 이 작은 녀석은 깊이 잠들었다. 몸의 모든 부위가 말랑거리고 유연했다. 차에서 자던 녀석은 집에 도착해 담요 위에서 이어 깊은 잠에 빠졌다.
우리는 엎드려서 잠든 녀석의 흉곽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숨죽여 바라봤다. 자다가 다리를 쭉 뻗고 하품하는데 작은 유치들 사이로 꽃잎 같은 혓바닥이 보였다. 우리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졌다. 가만히 등을 쓰다듬는 M의 손가락을 알아차렸는지 기지개를 켜던 녀석은 M의 손가락을 천천히 핥았다. M이 오랫동안 목말랐던 바로 그것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녀석에게 뿌꾸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 어머니가 어린 우리 남매를 다정하게 불러주시던 별명이었다.
뿌꾸의 수많은 ‘처음’을 우리가 함께했다. 첫 목욕과 첫 산책을 했고, 이갈이를 할 때는 빠진 유치들을 모았다. 배내털이 빠지고 털 색깔이 바뀌는 것도 봤다. 자기만의 성격과 삶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것도 지켜봤다.
뿌꾸는 산책 중에 고양이를 보면 흥분해 쫓아가고 싶어 했지만, 눈에서 고양이가 보이지 않으면 빠르게 포기하고 자기 길을 갔다. 다른 개를 보면 경계하는 편이지만 고개를 돌려 옆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안심하고 무심하게 개 옆을 지나쳤다. 겁이 많지만 세상의 여러 자극에 예민한 녀석은 아니었다. 새로운 만남과 환경에 적응하는 데 자기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생명체였다. 우리 집에 방문한 지인들에게 처음부터 다가가지 않지만, 30분 정도 지나면 가서 냄새를 맡고 자기를 만져도 된다고 허락하는 표시로 앞다리로 무릎을 긁었다.
처음 녀석을 데려올 때 가장 걱정한 것은 앵무새 사랑이였다. 사랑이는 임시 보호 중에도 개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동물병원에 아픈 개가 많이 왔겠지만 오래 병원 입원장에 갇혀 있는 동안 사랑이가 그 개들과 관계 맺을 일은 없었다. 사랑이는 어린 뿌꾸를 보고 망설임 없이 달려가 몸과 머리의 깃을 한껏 부풀려 하악질 하며 위협하고 물려 했다.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어린 강아지가 사랑이에게 물릴까봐 우리는 항상 둘을 분리해뒀다.
어린 뿌꾸는 처음엔 사랑이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사랑이는 날개 한쪽이 없는 앵무새이기에 날 수 없었다. 성장하면서 뿌꾸의 신체능력은 사랑이를 금세 앞섰다. 하늘을 날며 살아가도록 태어난 앵무새가 바닥에서 걷는 속도는 결코 뿌꾸의 달리기를 앞설 수 없었다. 빠르게 뛰어가는 뿌꾸를 쫓다가 사랑이는 마음이 앞서 중간에 넘어지기 일쑤였다. 뿌꾸는 자기를 쫓아오다가 넘어지는 사랑이를 보며 파악한 것 같았다. 사랑이가 마음의 화는 많지만, 자기를 공격하기에는 신체능력이 하수임을.
뿌꾸를 입양한 뒤 11년이 흘렀다. 지금 뿌꾸는 어릴 때처럼 빠르게 뛰지 못한다.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도 두 번 했다. 치아가 좋지 않아 발치와 스케일링을 여러 차례 했다. 예전에는 작은 소리에도 번개같이 뛰어나와 짖었는데, 이젠 귀가 어두워져 큰 소리가 아니면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산책도 오래 하면 힘들어해서, 산책 시간을 줄이고 산책을 마무리할 때는 품에 안고 집에 오기도 한다.
뿌꾸의 나이가 5개월쯤 됐을 때, 나에게 찾아온 어떤 각성의 순간이 떠오른다. 뿌꾸가 영원히 나와 함께하지 못하리라는 깨달음이었다. 온몸의 하얀 털이 빛나는 어린 강아지일 때의 뿌꾸였다. 퇴근길에 M과 통화했는데, 뿌꾸와 산책 중이라고 해서 집 앞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공원에 도착하니 뿌꾸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작은 귀가 팔랑팔랑 정신없이 흔들렸다. 어제까지도 아장아장 걷는 어린 강아지였던 것 같은데 뿌꾸는 하루 사이에 훌쩍 커 있었다. 그렇게 뛰어다니는 뿌꾸를 보니 그 아름다움에 경탄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나의 시간보다 뿌꾸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렀다. 지금은 영원하지 않다. 뿌꾸는 나를 보고 반가워 정신없이 뛰어와서 내 품에 안겼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강아지 시절 뿌꾸도 처음이었지만, 지금 노년의 뿌꾸도 나에게는 처음이다. 뿌꾸와 함께하면서 내 삶도 변화했다. 그 과정을 함께한 나에게 뿌꾸는 참 특별한 존재가 됐다. 뿌꾸 덕분에 동물병원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이 이리 특별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는다. 나에게 뿌꾸가 특별한 것처럼 말이다. 매일 출근하는 내 발걸음은 그래서 조금 더 경건해진다.
글·사진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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