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임금 달라. 적어도 지급하겠다는 각서라도 쓰라.”
2023년 5월31일 낮 12시59분, 대구 태전동의 ‘광신프로그레스’ 아파트 현장에서 투신 소동이 벌어졌다. 이 아파트를 지은 20대 건설노동자 ㄱ씨가 ‘밀린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15층 옥상에 오른 것이다. 그는 옥상으로 올라온 경찰과 1시간가량 대화한 끝에 겨우 구조됐다. 원청 광신종합건설의 하청업체 ‘명신건설’에 소속된 ㄱ씨는 2월에 마친 일의 급여를 5월 말까지도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아파트 현장에서 임금을 체불당한 미장·타일 분야 노동자는 150여 명, 체불 규모는 6억7천만원에 이른다. 소속된 노조는 없지만 이들은 5월 중순부터 공사현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임금체불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신고가 접수된 노동자들부터 임금체불 실태를 조사 중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건설현장 불법행위’가 연일 화제다. 건설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와 건설현장에서 여는 집회 등이 시공사와 전문건설업체에 대한 업무방해나 다름없다며 ‘엄정 대응’에 나서면서다. 경찰은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을 ‘공갈’로 수사하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아예 ‘건폭’(건설업 폭력배)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노조를 때려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있다. 건설노동자가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임금체불 위협과 고용 불안, 무한 일자리 경쟁이다. 노조는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정부가 ‘노조와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부터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만3646명. 2022년 한 해 건설업에서 임금을 체불당한 노동자 수다. 모든 업종 중 임금체불 노동자 수 1위다. 2022년 건설업 임금체불액이 2925억원이니 1인 평균 397만원의 임금을 떼이는 셈이다.
건설업 수주계약 구조를 살펴보면, 건설노동자의 임금체불이 건설업 다단계 도급과 저가 출혈경쟁의 필연적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시공사는 통상 발주처가 내는 예상가격(예가)의 78∼82% 선에서 낙찰받는다. 입찰 참여 자격부터 신용등급 등으로 제한돼 경쟁해도 가격 하락폭이 크지 않다. 이후 원청이 공종별로 하청업체(전문건설업체)에 일감을 나눠주는 단계에 수십 개 업체가 몰리며 본격적인 출혈경쟁이 시작된다. 관급공사는 ‘하도급률 82% 이상’이라는 법적 하한선이 있지만 민간공사는 그마저도 없어 낙찰가가 도급액의 절반으로도 떨어질 수 있다. 여기서 2차, 3차 하청을 거듭하면 공사금액이 40%, 30%로 계속 줄어든다.
2021년 6월 해체공사 도중 붕괴한 광주 학동 아이파크 아파트 현장의 경우 현대산업개발이 애초 받은 단가는 단위면적당 28만원이었으나 1차 하도급을 거치며 10만원(도급액의 36%)으로, 2차 하도급에선 4만원(14%)으로 대폭 떨어졌다. 건설업종의 재하도급은 법적으로 금지되지만 실상은 현장에 만연해 있다.
가격 하락과 탈법은 원청이 직접 시공하지 않고 하청업체에 외주화하는 구조에서 더욱 심화한다. 경쟁적으로 저가 투찰을 하다보면 하청업체 사업주는 사실상 그 금액으로 기한 내 시공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청사가 요구하는 ‘부당특약’(물가상승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식의 계약서상 독소조항)도 맞춰야 하는데 자재비와 인건비까지 더하면 까딱 적자다. 이럴 경우 수수료만 뗀 뒤 다른 업체에 넘기는 불법 재하도급, 즉 ‘폭탄 돌리기’가 발생한다. 일을 건네받은 업체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면 결국 노동자 임금을 체불한다. 원청이 손 놓은 현장 관리와 하청의 저가 출혈경쟁에 노동자 임금이 비용으로 지불되는 것이다.
수시로 실직을 반복하는 고용 불안도 노동자를 종속적 위치에 놓이게 한다. 일감을 상시로 구할 수 없으면 소개업자의 힘이 세진다. 2, 3차 하도급인 걸 알아도 생계가 위협되면 소개료를 내고 일감을 받는다.
2022년 12월 건설근로자공제회의 건설근로자 수급 실태조사를 보면 ‘건설현장에서 가장 불만족스러운 사항’을 묻는 말에 “항상 일자리가 불안하다”는 건설노동자 답변(19.6%)이 가장 많았다. 구직 경로를 묻는 말엔 “팀·반장을 통해 (일을 구한다)”(72.1%)라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알선하는 무료 인력소개소나 전자 인력소개 창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포털식 공개채용은 정량화하기 힘든 건설노동자의 숙련도를 다 담지 못한다. 공종별로 노동자 실력을 속속들이 아는 각 지역 ‘오야지’들이 대우받는 이유다.
도급을 거듭할수록 사용자 책임은 분산되고 노동자 일자리는 붕 뜬다. 건설노조는 하청업체가 법을 준수해 건설노동자를 직고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건비 때문에 노동자를 모두 고용할 수 없다면 적어도 (모집책 역할을 하는) 팀·반장이라도 직고용하라고 하죠. 그런데 그것도 안 해줘요.” 강한수 민주노총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의 말이다. 건설노조는 차선책으로 직접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조합원 채용을 요구한다. 수수료는 받지 않는다.
인건비 절감 요구가 커지면서 노동처우가 갈수록 후퇴하는 문제도 있다. 이주 노동자들과 자주 갈등하는 지점이다.
“아파트 1개층을 올리려면 원래 열흘은 잡아야 해요. 근데 요즘은 일주일이나 닷새 만에 1개 층 올릴 사람을 찾거든요. 그렇게 되면 부실시공도 문제지만 30㎏짜리 자재를 지고 나르는 알폼(알루미늄 거푸집 공정) 노동자는 4∼5년이면 몸이 망가지거든요.” 강한수 위원장의 말이다.
2022년 1월 공사 도중 붕괴한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도 노조가 확보한 ‘201동 타설일지’를 보면 엿새 만에 1개층을 올렸다. 콘크리트가 굳는 시간조차 기다릴 수 없었던 작업 스케줄은 결국 건물 붕괴 참사를 낳았다.
살인적 노동 요구의 이면에 다시 인건비 절감 요구가 있다. 대한건설협회가 공시하는 2022년 형틀공 일일 시중노임단가는 25만9126원이다. 이 금액으로 열흘이면 259만원의 인건비가 들지만 닷새면 129만원만 줘도 된다. 고령의 내국인 노동자가 수용할 수 없는 노동조건을 외국에서 온 젊은 노동자가 수용한다. 그 결과 하루 8시간 근무 등 노조가 세운 노동 기준선이 허물어지고 내국인이 갈 일자리도 줄어든다. 현장에서 내국인-외국인 갈등이 극에 달하는 이유다.
현재 건설노동자는 노동강도가 더 높고 임금이 더 낮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다. 노동조건을 지키면 실직을 감수해야 하고 노동조건을 포기하면 건강이 망가진다. 건설근로자공제회는 2023년 국내 건설현장 인력 수요 176만 명 중 161만 명만 내국인 공급으로 채워질 거라고 내다봤다. 건설 수요에 비해 내국인 공급이 15만명 가량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 35만 명을 더하면 노동 수요 대비 공급이 도리어 20만 명이나 넘친다. “강구조, 건축배관, 형틀목공, 철근공, 토공의 내국인력 공급 부족 규모가 크다. 반면 외국인력이 포함될 경우 모든 직종이 공급 과잉으로 전환된다.”(공제회 실태조사 자료)
불법 하도급과 임금체불을 함께 해결하는 대책으로는 시공사의 직접시공 비율을 높이고 공사금액에 하한선을 두는 안이 거론된다.
현재는 법률상 70억원 미만 공공 부문 공사에 한해서만 직접시공 의무가 있고 민간공사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대기업 브랜드를 단 아파트 건설 현장인데도 실제 시공은 영세한 전문건설업체가 도맡는 이유다. 시공사가 공사를 직접 하지 않으니 하청업체 의존도가 높아지고 현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불법 하도급이나 부실시공 등 일탈이 있어도 시공사가 통제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받아야 하는 임금을 산정해 미리 낙찰가 하한선으로 설정하자는 안도 있다. 하청업체가 저가경쟁을 벌여도 노동자 임금을 좀먹는 수준까지 낮추지는 못하도록 브레이크를 걸자는 것이다. 임금체불과 내-외국인 간 저임금 경쟁을 해소할 방안으로도 꼽힌다. 현재는 공시된 시중노임단가를 업체들이 지킬 의무가 없다. 미국에선 ‘적정임금제’(Prevailing Wage)라는 이름으로 공공부문 공사에서 시행 중이다. 한국도 2021년 국토부가 공공 공사에 적용하도록 법안 개정을 추진했으나 아직 진척이 없는 상태다.
신영철 건설경제연구소장은 “불법 하도급과 임금체불을 근절하고 공사 품질도 유지하려면 장기적으로 시공사가 시공을 직접 하는 게 옳다. 오랜 기간 외주화로 인건비를 절감하는 관행이 누적돼 한 번에 바꾸긴 어렵겠지만 방향성을 갖고 직접시공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장은 “적정임금제를 도입해 지키도록 하면 특정 금액 이하로 단가를 낮출 수 없으니 재하도급을 하는 유익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탈법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감독해야 한다. 건설업의 일자리 질을 개선하려면 근로기준법과 노조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범위를 넓히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점차 줄여가야 한다. 법 적용을 못 받는 불법 하도급 노동자 등이 많아지면 일자리 개선이 요원하다.
임금체불과 불법 하도급 근절, 고용 불안 해소는 모두 건설노동자가 계속 요구했으나 해결되지 못한 문제다. 시간이 흘러 건설업에 청년이 오지 않고 숙련공도 플랜트산업 등으로 빠져나가자 결국 노조가 나섰다. 조합원을 모아 건설사에 직고용을 요구하고 공사현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임금을 체불한 업체를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전문건설업체는 ‘폭력행위’라며 문제 삼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시급한 요구가 해결되자 노조에 대거 가입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은 2016년 3만 명에서 2022년 7만 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양대 노총이 일자리를 놓고 노노갈등을 벌이기도 하고 신생단체들이 노조를 사칭해 돈을 달라고 하는 일도 있다. 노동조합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고 정부도 우후죽순 생겨난 단체들의 옥석을 가려야 할 때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혁’은 결국 노동자 처우 개선에 맞춰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건설노조가 해왔던 일은 그동안 정부가 방치한 불법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정부와 건설업계가 그것을 스스로 하나하나 해결해야 한다.” 김민아 법무법인 도담 노무사의 말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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