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이었다. 미국에 사는 동생이 한 달여 머물고 돌아간 뒤,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렸다. 재택근무를 하다가 드물게 출근한 어느 날, 머나먼 경기도의 집으로 바로 돌아가긴 싫었다. 몇 해 전까지 오래 밤마실을 다니느라 익숙한 서울 이태원에 들러 혼자 저녁을 먹었다. 그 여름 동생·조카와 같이 갔던 인도네시아 식당에서 나시고렝을 먹고, 거리를 배회하다 간이 의자가 놓인 편의점에 앉아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구경했다. 시원한 탄산수를 마시면서 삼삼오오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젊은이들의 활기에 넋을 놓았다. ‘그래, 너희에겐 참 밀도 높은 시간이 있구나’, 질투도 했던 것 같다. 2022년 10월29일 159명이 숨진 바로 그 좁은 골목이었다. 불과 두 달여 전이었다.
2023년 5월16일, 그날로부터 200일이 흘렀다. 그사이 이태원에 다섯 번 갔고, 갈 때마다 거리에 사람이 늘어 다행이다 싶었다. 지난겨울엔 기자 후배들과 이태원에 갔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에서 희생자들의 사진과 추모하는 글에 가슴이 미어졌고, 시민분향소도 들렀다. <한겨레21>이 연재를 시작한 ‘미안해, 기억할게’(제1443호 ‘밤 9시58분 “밥 먹었엉” 문자, 엄마는 얼굴 보고도 못 믿었다’)에서 본 17살 동규의 영정 사진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볼살이 채 빠지지 않은 얼굴은 어려도 너무 어렸다. “태어나 이태원에 간 것도 처음”이라는 동규는 “12시는 넘지 않게 들어올게”라고 했지만 끝내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분향소 옆에서 떠드는 신자유연대도 봤다. 우리는 그날의 만남을 ‘이태원 다크투어’라 불렀다.
너무도 가까운 거리를 눈으로 확인했다. 이태원 파출소에서 참사가 일어난 골목까지 도보로 113m. 골목 앞 이태원 지하철역 1번 출구에서 파출소에서 휘날리는 태극기가 보이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다. 그 밀접함이 알고도 믿기지 않아 건너편 길에서 파출소를 보고 또 보고, 찍고 또 찍었다. ‘경찰이 차량을 통제하고 골목 앞 도로로 길을 터주기만 해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답답해 한참을 서성였다. 200일이 지났지만 아직 참사의 원인은 명확지 않고, 사과는 분명치 않으며, 유족은 거리를 헤매고 있다. “피해는 피해야 한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25년 기자생활의 교훈이랍시고 후배들에게 떠들었다.
‘미안해, 기억할게’를 읽으며 새삼 배웠다. 참, 한결같이 인생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사람들이었구나. 열심히 살던 이들이라 그날 거기도 갔던 거구나. 그 목숨 하나하나의 숨결이 와닿고, 눈시울이 흐려지는 사연이 한둘이 아니다. 이태원 주민은 아니지만, 그 동네를 15년 넘게 쏘다닌 내외부자로 그날의 참사가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고등학생 희생자 동규의 어머니는 동규가 그날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정확히 모른다. 기사는 “심지어 지금까지 동규가 어디서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설명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전한다.
어차피 떠난 사람인데 왜 최후의 순간을, 구체적 이유를 그토록 알려고 할까. 그렇게 간절한 이유가 뭘까. 지난 1월,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기 전엔 그 절실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행 중에 어머니와 떨어져 있었던 10분은 내 인생에 가장 결정적 시간이 됐다. 지금도 바다에서 어머니가 쓰러지신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답답해하는 나에게 친한 후배는 “어머니가 남기신 블랙박스”라고 위로했다. 오늘도 눈만 감으면 그 블랙박스 속으로 들어간다. ‘미안해, 기억할게’의 많은 유족도 ‘마지막 모습을 알고 싶다. 보신 분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애원한다. 찾지 못한 블랙박스는 평생의 슬픔으로 남는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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