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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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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고도 잔인한 4월에 부치는 편지

열매가 될 꽃들 활짝 피는 ‘생명의 달’로 찬양받지만
무고한 이들의 무수한 죽음 떠오르는 ‘잔인한 4월’
우리의 기억과 애도는 어떻게 왜곡되고 훼손되는가
등록 2023-04-07 22:54 수정 2023-04-11 10:06
‘10·29진실버스’가 2023년 3월30일 광주광역시에 도착해 시민문화제가 열렸다. 한 시민이 ‘언제나 기억할게 사랑한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10·29진실버스’가 2023년 3월30일 광주광역시에 도착해 시민문화제가 열렸다. 한 시민이 ‘언제나 기억할게 사랑한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오랫동안 우리는 3월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습득해왔지만 실상 체감되는 봄은 늘 4월부터이지 않았을까. 꽃샘추위가 사라지는 달, 겨울 외투를 세탁소에 맡기고 솜이불을 가벼운 이불로 바꾸는 달, 나무의 움트는 연둣빛과 피어나는 꽃을 보며 감탄하는 달, 작물의 모종을 심는 달이 모두 4월에 해당하니 말이다. 인디언은 ‘만물이 생명을 얻는 달’(동부 체로키족)이라거나 ‘잎사귀가 인사하는 달’(오글라라 라코타족)이라며 4월을 환영했고, 때로는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블랙풋족)이라는 표현으로 4월에 최고의 찬양을 헌사하기도 했다.

열매가 될 꽃들이 활짝 개화했다가 지기도 하고 여름과 가을에 걸쳐 탐스럽게 영글 배추니 상추니 하는 작물의 모종을 심는 찬란한 4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4월에 우리는 많은 죽음을 보았고 슬퍼했으며, 때로는 분노했다.

애도가 혐오가 되는 ‘변곡점’은 누가 만드나

9년 전인 2014년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서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해 304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세월호 참사를 완전히 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단순히 참사 규모가 커서는 아니리라. 그날, 9년 전 4월16일 우리는 각자의 일상과 공간에서 거대한 여객선이 뚜렷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침몰하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을 공유하기에 ‘세월호’라는 이름이 마음의 가장 어둡고 안타까운 바닥까지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아이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서서히 수몰되는 과정을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픈 경험…. 우리는 그날 생존자를 확인했다든지 구조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간절히 기다리며 텔레비전이나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새벽에야 잠들었을 것이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배가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 기울어져 있는 걸 확인해야 했고 기다리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힘없이 늘어진 몸으로 학교나 일터, 약속 장소로 나갔을 터다. 그사이 배는 조금씩 더 가라앉다가 4월18일 뱃머리마저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아무도, 살지 못했다. 살아나와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했다. 그날 이후 아무리 비통해하고 괴로워해도 그 감정은 결코 충분히 채워지지 못하리라, 나는 예감했다. 매년 4월16일이 되면 바람이 차든 날이 좋든,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리게 될 거라 생각했다.

마음들이 그렇게 모이고 결속했기에 다시는 그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리라 믿기도 했고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 우리의 애도는 지겨운 푸념이 되는가 하면 정치적 목적이 있는 불온한 목소리로 변질되기도 했다. 거리와 국회, 팽목항에서 단식하고 순례하고 울부짖던 유가족은 더 많은 배상금을 요구하는 파렴치한으로 몰렸다.

세월호 참사 9년에도 “아직 세상은 변하지 않아”

우리의 기억과 애도는 어째서 이토록 쉽게 오염되고 매도되는 것일까. 함께 끌어안고 아파하는 것이 유난이 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그 변곡점은 왜 이렇게나 자주, 그리고 가깝게 존재하는가.

작년 10월29일,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참사가 있었다. 그 밤과 새벽에 깨어 있던 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청년들이 선 채로 죽어간다는 속보를 이번에도 속수무책으로 듣고만 있어야 했다. 한 자리 숫자였던 사망자는 금세 두 자리가 되더니 결국 158명이 됐다. 다시는 없으리라 믿고 싶었던 참사가 반복된 것도 비참했지만 이전처럼 애도가 훼손되는 일을 목도하는 것도 비참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가 이만큼 자랐는데도 아직 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세월호 생존학생 유가영 씨는 최근 용기 내어 출간한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다른)에서 이렇게 썼다. “이런 일을 계속 무시하고 지나치면 그다음 차례는 자신과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상처와 죄책감, 악몽과 자해와 수많은 신경정신과 알약으로 점철된 9년을 통과한 뒤 써낸 이 경고는 너무도 당연하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생존 학생에게 이 무책임하고도 비정한 현실을 또다시 마주하게 했다는 점에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얼마 전 제주 4·3을 두고 여당 최고위원이라는 사람이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말했다. 비슷한 내용의 현수막이 제주 전역에 내걸렸다 철거됐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다. 올해 4·3 희생자 추념식에 현직 대통령은 불참했고 그가 보낸 추념사는 그의 연설이 늘 그랬듯 차고 공허했다. 4·3의 희생자가 많이 나온 제주 정방폭포에 유적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주변 아파트 주민과 상인들 반대에 부딪혀 그 부지를 옮겨야 했다고 들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뒤 희생자의 피 묻은 옷과 신체 일부가 쓰레기로 소각되고 그 자리에 비싼 아파트가 들어선 것처럼.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공원이 희생자의 무덤 하나 없이 ‘시민안전테마파크’가 됐던 것처럼. 이태원 참사 직후 영정도 이름도 없는 검은 벽 앞에 헌화하고 묵념해야 했던 것처럼.

무고한 이들의 죽음 딛고 세워지는 나라의 무참함

우리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숨도 내어줄 수 없고 기부를 할 수도 없으며 미안하다는 말도 전할 수 없다.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행위는 오직 기억과 애도뿐이지만, 우리 사회는 그마저 불길하고 불온하다고, 장사와 재산에 해롭다고 외면하고 혐오하고 배척한다.

4월은 생명의 달이지만, 또 누군가는 ‘잔인한 달’이라고도 말할지 모르겠다. 그 유명한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한 구절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미래의 한국 사회에 접속한 것도 아닐 텐데, 그가 표현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4월의 잔인함은 지금 이곳과 썩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그토록 무고하고 아픈 죽음을 딛고 세워지는 나라는, 나의 집과 상점은 충분히 잔인하지 않은가.

기억과 애도를 잊은 자는,

그 얼마나 무참하도록 잔인한가.

조해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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