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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영안소 이송 완료 28분 만에 해산…유가족은 온종일 헤맸다

새벽 3시15분 희생자 44명 이송 끝나지만 곧 서울시 모바일 상황실서 “병원 이송 조치하라”
김의승 서울시 부시장 “예의가 아니라서”
등록 2023-01-09 12:31 수정 2023-01-10 00:20
2022년 10월30일 새벽 이태원 압사사고 희생자들이 임시 안치된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체육관 앞에 가족과 지인들이 서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2022년 10월30일 새벽 이태원 압사사고 희생자들이 임시 안치된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체육관 앞에 가족과 지인들이 서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몇 시간을 아이 찾으러 헤매고 다녔죠. 이 병원에 있다고 해서 전화했는데 그런 사람 없다고, 다른 병원에 연락하고… 다음날 오후까지 헤맸는데도 왜 내 아이가 그 병원까지 가 있는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어요.”(이태원 참사 유가족 정미진씨)

“저희로서는 알 수 없다” “확인해드릴 수 없다”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2022년 10월30일, 희생자 가족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자녀의 생사조차 모른 채 여러 병원을 헤매야 했던 상황이었다. 경찰서와 실종 신고를 하는 콜센터에 쉼없이 전화했지만 “저희로서는 알 수 없다” “확인해드릴 수 없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다.

그날 밤, 이런 혼란은 불가피했던 것일까. 사고 이후 ‘지연 환자’(생존 가능성이 없는 환자) 이송 지시와 경로를 포함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윤건영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서울시의 모바일 상황실 대화 내역’ 등을 토대로 되짚어봤다.

사고 현장 인근의 순천향대학병원에는 10월30일 0시18분부터 지연 환자 79명이 이송됐다. 그 뒤 새벽 2시16분께 서울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이 임시영안소로 지정되면서 또 다른 45명의 지연 환자는 체육관 쪽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곧 이들은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등의 신원확인용 지문 채취만 거친 뒤 임시영안소 지정 1시간27분 만인 새벽 3시43분 수도권의 여러 병원으로 다시 흩어졌다. 많은 실종자 가족이 순천향대학병원과 다목적체육관을 헤매고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야 했던 까닭이다.

이런 이송을 지시한 주체는 서울시였다. 서울시 간부들로 구성된 ‘모바일 상황실’의 10월30일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을 임시영안소로 지정한 뒤 ‘철수하라’고 지시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87분이었다. 서울시 지시에 따라 임시영안소(다목적체육관)로 이송하기로 한 지연 환자 중 44명의 이송이 끝난 시점은 10월30일 새벽 3시15분께. 그런데 불과 28분 만인 3시43분 서울시 모바일 상황실에선 이들을 다시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라는 지시가 나온다. 이처럼 잦은 이송 지시로 혼란은 가중됐다.

구체적으로 지시가 이뤄진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10월30일 새벽 2시16분. 서울시 간부들이 모인 모바일 상황실에 공지가 올라왔다. “(지연 환자들을)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에 이동 결정됐다.” 최아무개 서울시 안전총괄실장이 올린 글이었다.

구급차들 영안실 찾아 헤맬 때도 현장엔 ‘응급 환자’ 수십 명이

이때부터 구급차가 이태원 현장에 있던 지연 환자들을 다목적체육관으로 이송했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운영하는 의료상황실(모바일 상황실)에서도 서울시 관계자가 “순천향대학병원에 있던 지연 환자들도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으로 이송 예정”이라는 공지를 올렸다. 이 의료상황실에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센터 의료상황실과 소방, 응급의료기관, 지자체 관계자 등 400여 명이 들어와 각각 메시지를 올리는 식으로 소통이 이뤄졌다.

새벽 3시15분.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에 주검 44구를 이송 완료했다는 정보를 서울시 관계자들이 모바일 상황실에 공유되는 지휘버스 내 현황판을 통해 확인했다.

그런데 28분 뒤인 새벽 3시43분. 김의승 서울시 행정1부시장은 서울시 모바일 상황실에 “오늘 밤에 임시영안소 44명을 모두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최대한 조치해달라”고 지시했다. 이후 작성된 소방 구급일지들을 살펴보면 구급차들이 주검을 싣고 빈 영안실을 찾아 여러 병원을 전전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가족들이 실종자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순천향대학병원에서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으로, 그리고 다시 거기서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여러 병원을 순차적으로 헤집고 다녀야 했던 이유다.

다목적체육관이 임시영안소로 지정되기 이전에,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운영하는 의료상황실(모바일 상황실) 대화 내용을 보면 “사망자를 이송할 병원을 지정해달라”는 요청이 거듭 올라왔다. 새벽 1시47분, 한 중앙응급의료센터 관계자는 호소하는 글을 올린다. “산 사람부터 병원 보냅시다, 제발.”

소방청이 용혜인 국조특위 위원(기본소득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최초 지연 환자가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이송된 10월30일 0시18분 이후에도 사고 현장에 있던 의료진은 환자들을 중증도에 따라 분류하면서 35명을 ‘응급(응급·준응급·잠재응급 합계) 환자’로 파악했다.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을 임시영안소로 결정한 2시16분 이후에 응급 환자로 분류된 사람만 추려도 20명이 넘었다. 이렇게 현장에서는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추가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2시30분부터 의료상황실(모바일 상황실)은 주검을 안치할 영안실이 있는 병원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에 대해 김의승 서울시 부시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주검들을 임시영안소에 계속 두는 것이 오히려 유가족들에게는 예의가 아니지 않나. 어디가 됐든 일단 영안실에 모셔놓고 유족들에게 연락되면 안내를 드리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응급의료관리팀 관계자도 “주검을 그대로 바닥에 두었으면 유가족들 마음이 더 아프지 않았겠나. 그대로 두기보다 당연히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한정된 응급 자원 낭비돼

하지만 의료 전문가들은 구급차와 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이러한 이송 지시가 유가족들을 혼란스럽게 했을 뿐 아니라 응급 자원을 낭비하는 결정이었다고 지적한다. 유인술 충남대 교수(응급의학)는 “재난 상황에서는 감성이 아닌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당시 현장의 치과건물에 먼저 임시영안소를 꾸렸는데, 거기서 (일관되게) 상황 수습을 진행했어야 한다. 재난의료지원팀(DMAT·디맷)의 의사가 출동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사망 판정도 가능하고, 유가족이 원하면 (현장에서 희생자) 인도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중앙응급의료센터 관계자 또한 “재난의료 관점에서 보면 소생 가능성이 없는 지연 환자는 의료기관으로 이송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사망자 이송도 원칙적으로 의료상황실에서 알아보는 것이 아닌데, 현장에서 (소방 등이 영안실을 구하기) 어렵다고 해서 각 의료기관에 알아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난 대책은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것”(유인술 교수)인데, 이런 임시영안소 지정과 지연 환자 재이송 등 참사 초기의 미숙한 대응은 희생자 가족에겐 절망을, 다급한 응급 현장에는 혼란을 안겼다.

김지은 <한겨레> 탐사기획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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