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9시57분에 112상황실장이 ‘특이사항 없다’고 해서 현장의 판단을 믿었다. (압사당하게 생겼다는) 무전은 그냥 흘러가는 무전인 줄 알았다. 일정 정도의 소란은 일상적인 핼러윈 축제라 생각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1차 청문회가 열린 2023년 1월4일, 증인으로 출석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늑장 대응’을 질책당하자 한 대답이다. 그는 참사가 일어난 2022년 10월29일 밤 10시35분께야 ‘가능한 경력(경찰력)을 전원 배치하라’고 무전으로 지시하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현장에 도착했는데도 도착 시각을 거짓으로 작성해 논란이 됐다. 이 전 서장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12월23일 구속됐다. 재판을 앞둔 그는 이날 청문회에서 “밤 11시에야 사건을 인식했다”고 주장하거나, “(참사 이전에 서울경찰청에 인파 관리를 위한 경비기동대 투입을) 요청하라고 지시했다”며 ‘요청을 받은 바 없다’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엇갈린 증언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국정조사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 대상이거나 이미 구속돼 재판을 앞둔 증인들은 사법적 책임을 고려해 스스로를 변호하기에 급급했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수사의 칼날을 피해간 ‘윗선’은 책임을 미루거나 ‘꼬리 자르기’에만 몰두했다.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국회 국정조사의 첫 여정이 2023년 1월7일 마무리됐다. 핵심 책임자들의 회피성 발언과 주요 기관들의 자료 제출 거부로 모든 진상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그날의 진실을 담은 조각조각의 자료가 국회에 도착했고 참사 직후 제기된 여러 의혹이 청문회에서 다시 다뤄졌다. 45일에 걸친 이번 국정조사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무엇이고, 1월5일 여야가 국정조사 기간을 열흘 연장하기로 함에 따라 남은 기간 밝혀야 할 의문은 무엇일까.
<한겨레21>은 국회에 제출된 1천여 쪽의 자료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특위) 현장조사(12월21일·23일) 및 기관보고(12월27일·29일), 증인 44명이 출석한 1차 청문회(1월4일) 등을 종합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을 정리했다.
“코드0(가장 위급) 사건이라도 신고 내용과 실제 상황이 다른 경우가 많다. 상황실에서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을 못했다.”(12월21일 특위 현장조사에서 박규석 서울경찰청 112종합치안상황실장)
참사 직후 주요하게 제기됐던 의문 가운데 하나는, 압사를 언급한 11건의 112신고가 왜 모두 묵살됐느냐는 점이다. 10월29일 저녁 6시34분부터 밤 10시까지 접수된 11건의 신고 가운데 7건이 ‘코드1’(위급)이었고 밤 10~11시엔 ‘코드0’(가장 위급) 신고 13건을 포함해 압사 관련 신고가 100여 건에 이르렀다. 112종합상황실은 위급성에 따라 코드를 0~4단계로 분류해 지역경찰에 출동을 지시한다. 그러나 당시 서울경찰청 112종합상황실에 근무한 정대경 112상황3팀장도 이런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가 밤 10시59분에야, 그것도 같은 상황실 요원이 아닌 소방당국을 통해 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그날 밤 상황실은 왜 심각한 위기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을까. 현장조사와 청문회 등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밝힌 해명은 ‘평소에도 신고가 워낙 많았다’는 것이다. “코드0가 (평소 하루당) 100여 건에 이른다. 접수요원이 살펴보라고 하지 않는 한, 상황팀장이 자체적으로 확인하는 구조가 아니다.”(12월21일 특위 현장조사에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시간대는 신고가 많이 접수된다. 용산서에서 (압사 관련) 특별한 보고도 없었다.”(1월4일 청문회에서 정대경 112상황3팀장)
평소 위급하다고 주장하는 신고가 많았더라도, 현재 코드0·코드1로 나뉘는 위험 분류체계 자체가 ‘위급함’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현장대응(지역경찰)과 112지령(중앙경찰)이 이원화된 구조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경찰이 112신고를 받고도 초동 대처에 실패했던 2012년 수원 여성 살해사건 이후 각 시도경찰청에 112종합상황실을 만드는 등) 112신고 체계가 개선됐다고는 하나 현장에서 실제 작동되는지는 이번에 다시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중인파 운집에 따른 안전사고 우려, 이태원로 1차선까지 밀려나온 인파로 교통체증 우려.”
2017~2019년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서울 용산경찰서가 작성한 ‘할로윈 생활안전대책’에 적힌 내용이다. 용산경찰서는 3년 동안 해당 문구가 담긴, 거의 똑같은 양식의 서류를 매년 작성했다. 2020~2021년엔 ‘모의총포(사제총기)’ ‘과다노출’ 등 새로운 유형의 범죄 대응 요령이 추가됐다. 하지만 2017~2021년 매년 ‘우려’만 있을 뿐 밀려드는 인파를 관리할 구체적인 안전 대책은 없었다. 영업점 불법행위 단속, 순찰자 지원 등 원론적인 내용만 있었다.
계획의 실패는 고스란히 현장의 위험 대응 실패로 이어졌다. 10월29일 밤 9시~9시30분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만나며 인파가 크게 불어났다. 좁은 길에 다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도로 위로 쏟아져 나왔다. “4차선 도로가 1차선만 남기고 전부 사람으로 가득 찼다.”(12월21일 특위 현장조사에서 정현욱 용산경찰서 112운영지원팀장)
현장에 도착한 정현욱 팀장은 차를 막고 사람들이 오가도록 길을 텄다. 차량 통행보다 행인을 오가게 하는 게 먼저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송병주 전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 중)의 무전 지시 내용은 이와 정반대였다. “차가 다닐 수 있게 사람들을 인도 위로 밀어올리라.”(밤 9시22분 용산서 112무전망) 이미 포화 상태인 골목길에 사람들을 더 밀어넣으라는 지시였다. 당시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에 교통정체 신고가 빗발친 탓이었다. “저희가 (인파가 얼마나 모일지) 상황이 예측이 안 되는 상태에서 도로를 막아가지고 어떻게 할 수 있다고 미리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12월21일 현장조사에서 임현규 현재 용산경찰서장)
“핼러윈은 통상적으로 이태원로에 내려오는 교통사고가 문제라고 해서 교통기동대가 20명 지원됐다.”(12월21일 특위 현장조사에서 윤희근 경찰청장)
참사 초기 경찰 대응에 대해 제기된 또 다른 의문은 ‘2022년 핼러윈데이에 배치된 경력이 전년도보다 특별히 적었는가’였다. 참사 직후 누리꾼들이 과거 기사까지 찾아가며 비교했지만 정확한 상세통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국정조사 때 용산경찰서가 제출한 연도별 ‘할로윈데이 생활안전 대책’을 보면, 경찰은 2019년까지는 이태원파출소와 인근 지구대 인원 20~30여 명만으로 핼러윈에 대처했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가 2013년부터 본격화됐는데도 그간 지역경찰만으로 대응해왔던 셈이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 2021년엔 코로나19 재확산 방지 목적으로 일일 배치 인원을 각각 129명, 230명으로 대폭 늘렸다. 이태원 곳곳에 배치된 기동대는 밤 10시 이후 인파 해산에 집중했다.
2022년 경찰이 이태원에 배치한 인원은 137명이었다. 절대적으로 적은 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경찰 구성이 달라졌다. 2020년과 2021년엔 형사·수사경찰이 10명 안팎에 그치고 질서유지를 맡은 ‘기동대’가 전체 인원의 절반 이상(2020년 70명·2021년 135명)을 차지했다. 반면 2022년엔 137명 가운데 50명이 마약범죄를 단속하는 수사경찰(사복경찰)이었고 질서유지 등에 투입되는 지역경찰은 32명에 그쳤다. 그만큼 경찰의 대응도 인파 관리보다는 범죄자 물색에 집중됐다.
이유가 뭐였을까. 경찰이 작성한 ‘마약류범죄 단속·예방을 위한 특별형사활동’ 자료를 보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뒤 맞이하는 첫 핼러윈에 “마약 유통·투약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마약단속반 50명을 투입했다. 2022년 10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고 강조하던 분위기와 맞물렸다. 정부의 관심사가 방역에서 마약 단속으로 바뀌면서 경찰의 인력 편성도 자연스레 이를 따라간 것이다.
“제가 사상자 중에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는지 체크하라고 지시했다. 제가 다 주체적으로 역할을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2월23일 특위 현장조사에서 ‘사상자 병원 이송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한 위원의 질책에 답한 말이다. 이 장관은 “바로 그 역할(컨트롤타워)을 제가 했다”며 현장에 정부 대응이 ‘있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 현장은 달랐다. 참사 당일 병상 확보와 환자 분류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립중앙의료원 소속 ‘중앙응급의료상황실’(상황실)이었다. 상황실은 밤 10시38분 참사를 처음 인지한 뒤 직접 카카오톡방(‘모바일 상황실’)을 열어 용산보건소와 서울시 직원 등을 초대했다. 이후 10㎞ 인근에 있는 병원을 모두 수소문해 환자 수용이 가능한 병원 현황 자료를 만들고 유관기관에 상황을 실시간 전파했다.
그러나 상황실은 다른 기관에 지시를 내릴 권한이 없었다. 경찰이 의료진의 현장 출입을 막더라도, 구급차가 살려야 할 환자 대신 사망자를 순천향대학병원으로 대거 이송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저 모바일 상황실에서 유관기관 협조를 끊임없이 요청할 뿐이었다. “(의료진) 현장 진입 안 시켜주면 저희 다 철수합니다.”(밤 11시43분) “산 사람부터 병원 보냅시다, 제발.”(10월30일 새벽 1시45분)
가장 위급한 시간, 참사 현장에는 각 기관을 통제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할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재난대응 매뉴얼상 그 역할을 해야 할 현장응급의료소장(최재원 용산보건소장)은 현장에 갔다가 경찰이 막아서 돌아갔고, 행정안전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새벽 2시30분에야 꾸려졌다. 자정 넘어 나온 대통령실의 첫 지시는 ‘신속한 구급과 치료에 만전’과 ‘전국 핼러윈 축제 안전점검’이 전부였다.
행정 지원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건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였다. 용산구청의 핼러윈데이 대책 자료를 살펴보면, 2019년까지는 안전 관련 대책회의가 전혀 없다가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대두되자 ‘핼러윈데이 특별방역 대책’이 수립된다. 핼러윈데이 보름 전부터 대책회의를 열고 이태원 주요 밀집 장소를 상황대응반이 순찰하며 경찰·소방·서울시와 비상연락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도 40여 명의 행정 인력을 따로 지원했다.
반면 2022년에는 10월26일과 27일 상인회·경찰서 간담회와 구청 내부 대책회의를 각각 한 차례 연 것이 전부였다. 참사 당일 용산구청의 이태원 현장 순찰 인원은 6명에 불과했고 경찰·소방과의 비상연락망도 따로 없었다. 구청 상황실 당직자는 참사 발생 이후 소방서와 서울시가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부재중’이었다. 서울시 상황실 관계자는 소방 쪽에서 참사 소식을 듣고 ‘핼러윈이 뭐냐’고 도리어 묻기도 했다.(‘소방청 유관기관 통화 녹취록’) 방역 대책에 대한 정부의 요구가 없어지자 지자체도 위험 관리를 손쉽게 놓아버렸다.
1월5일, 여야는 국정조사 기간을 1월17일까지 열흘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열흘 동안 추가 진상규명이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국민의힘은 3차 청문회가 열리면 참사 당일 ‘닥터카’ 탑승 논란이 있었던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닥터카’에 태워준 명지병원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벼른다. 45일간의 국정조사 기간 절반 이상을 허비했듯이, 추가된 10일도 정쟁으로만 흐를 수 있다.
국정조사를 모니터링한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의 최재혁 간사는 “제한적으로나마 112무전망 등 여러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조사의 성과”라며 “현재 단계에서 나온 쟁점을 단순 진실 공방이나 의혹으로 남겨두지 말고 더 집요하게 파악해 입체적으로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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