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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지 절반’ 쌀 농사, 유기농 전환할 수 있을까?

유기농 전환, 이산화탄소 잡고, 생물다양성 보호하고
등록 2023-01-04 18:53 수정 2023-01-05 10:10
한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쌀 농사를 유기농으로 전면 전환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우렁이를 사용하는 농사법은 대표적인 유기농법이다. 2020년 6월 충남 예산군 광시면에서 주민들이 친환경 논에 우렁이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쌀 농사를 유기농으로 전면 전환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우렁이를 사용하는 농사법은 대표적인 유기농법이다. 2020년 6월 충남 예산군 광시면에서 주민들이 친환경 논에 우렁이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9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제5차(2021~2025) 친환경 농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서 농식품부는 2025년까지 전체 경작지에서 친환경(유기농+무농약) 경작지 비율을 1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해 12월 농식품부는 2050년까지 친환경 경작지 비율을 30%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10월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선 2050년까지 농식품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2473만t에서 1545만t으로 38% 줄이겠다고 했다. 농식품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한국 전체 배출량의 3.4%다.

2050년까지 친환경 경작지 30% 목표

그러나 이런 계획이 제대로 실행될지는 알 수 없다. 농식품부가 제4차(2016~2020) 계획에서 2015년 4.5%인 친환경 경작지 비율을 2020년 8%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5.2%에 그쳤기 때문이다. 2025년 10%, 2030년 12%, 2040년 20%, 2050년 30%란 일정표도 지나치게 도식적이었다.

한국에서 2001년 0.2%에 불과하던 친환경 경작지 비율은 2010년 6.4%, 2012년 7.5%로 올라갔으나, 2014년 4.9%로 떨어진 뒤 2016년 4.8%, 2018년 4.9%, 2020년 5.2%, 2021년 4.9%로 8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친환경 농업의 대표적 지표인 친환경 경작지 비율은 왜 이렇게 정체됐을까.

먼저 2010년부터 저농약 경작지가 친환경 인증을 받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저농약 농업은 친환경 농업으로의 진입로 노릇을 했는데, 이것이 폐지되고 좀더 엄격한 친환경 농업 기준이 도입된 것이다. 기존 저농약 인증은 2015년까지 유지됐으나, 친환경 농업 열풍은 식어버렸다.

윤병선 먹거리연대 정책위원장(건국대 교수)은 “저농약 인증을 없애면서 친환경 농사를 포기한 경우가 많았다. 저농약 농가를 무농약이나 유기농으로 끌어올렸어야 하는데, 정부의 적절한 전환 지원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친환경 경작지 비율이 정체하는 동안에도 유기농 경작지 비율은 꾸준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2010년 0.9%에 불과하던 유기농 비율은 2012년 1.5%로 올랐다가 2014년 1.1%, 2016년 1.2%로 주춤했다. 그러나 2018년 1.5%, 2020년 2.5%, 2021년 2.6%로 다시 늘어났다. 특히 2021년엔 처음으로 무농약 경작지 비율(2.2%)을 넘어섰다. 유기농이 친환경 농업의 중심이 된 것이다.

김태연 한국유기농업학회장(단국대 교수)은 “친환경 농업은 유기농업이다. 저농약이나 무농약은 과도기적인 것이다. 다른 나라에선 인증하지도 않는다. 이제 유기농으로 가야 하고, 친환경 인증에서도 유기농의 가치를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유기농 경작지 비율이 높은 지역은 유럽이다. 유럽연합의 유기농 경작지 비율은 2020년 9.1%에 이르렀다. 유럽연합에서도 2017년 기준으로 오스트리아(24.0%), 스웨덴(18.8%), 이탈리아(15.4%), 스위스(14.4%) 등이 높은 편이다. 2020년 기준으로 독일(9.6%)과 프랑스(8.8%)는 평균 수준이고, 영국(2.7%)은 낮은 편이다. 유럽 외 나라 가운데 미국(0.6%), 중국(0.5%), 일본(0.3%) 등이 한국(2.5%)보다 낮다.

유럽연합은 2020년 발표한 ‘팜 투 포크 전략’에서 2030년까지 유기농 경작지 비율을 25%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팜 투 포크’는 ‘농장에서 포크까지’라는 뜻으로 식품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을 말한다. 이와 함께 농약 사용량 50%, 비료 사용량 20%, 가축과 수산물 항생제 사용량 50%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친환경 농업은 유럽연합이 선두주자

김태연 학회장은 “유럽연합은 기존 계획으로도 2030년에 유기농지 비율을 18%까지 늘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25%까지 늘리기 위해 농민들에게 엄청난 재정·기술 지원을 한다. 농민들은 충분한 인센티브만 있다면 얼마든지 유기농으로 전환한다”고 말했다.

제5차 계획에서 농식품부는 2020년 1조5153억원인 친환경 농산물 시장 규모를 2025년까지 2조1360억원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5년 동안 41.0%, 매년 8.2%씩 성장시키는 계획이다. 이런 급성장을 하더라도 국내 유기식품 시장의 규모는 유럽 나라들에 미치지 못한다. 2019년 기준으로 유기식품 시장 규모는 독일 16조원, 프랑스 15조원, 이탈리아 4조7천억원, 스위스 3조8천억원, 영국 3조5천억원, 스웨덴과 스페인은 각 2조8천억원이다. 스위스나 스웨덴, 스페인은 한국보다 국내총생산(GDP)이 작은 나라들이다.

유기농업은 기후위기 대응책이기도 하다. 농식품부는 제5차 계획에서 “2018년 일본 농림수산성의 발표를 보면, 유기농 경작지에서 1년에 1㏊당 0.93t의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인다. 2021년 유럽연합의 보고를 보면, 유기농지는 관행농지보다 생물종 수가 30% 이상 더 많다”고 밝혔다. 박종서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경영혁신본부장은 “전세계적으로 먹거리 체계를 유기농으로 전환하면 온실가스 배출의 40%까지 줄일 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한국의 농업은 농약과 화학비료의 과다 투입으로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2020년 한국의 관행농지에선 ㏊당 화학비료 266㎏, 농약 10.5㎏을 사용한다. 화학비료는 성분에 따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10배, 농약은 오스트레일리아의 10배를 사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2025년까지 각각 233㎏, 9.5㎏으로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토양의 건강을 고려하면 턱없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업을 유기농으로 대전환하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제안은 2030년까지 친환경 경작지 비율을 30%로 늘리고 농약과 화학비료, 항생제 사용을 50% 줄이자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대선 때 한국친환경농업협회가 제안했고, 정의당이 공약으로 채택했다. 이 제안은 2050년까지 친환경 경작지를 30%로 늘리겠다는 정부의 목표를 20년 앞당기는 것이다.

유기농 전환하면 온실가스 40% 줄여

실행 계획도 나와 있다. 먼저 친환경 재배면적 30% 달성을 위해 2021년 전체 경작지의 47.4%인 쌀농사를 전면 친환경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2021년 쌀 재배면적은 73만2477㏊로 현재 친환경 경작지 7만5435㏊의 10배에 가깝다. 쌀은 한국에서 가장 생산량이 많은 곡물이며, 자급률도 100%에 육박한다. 쌀을 전면 친환경으로 전환한다면 유기농과 무농약 농업 비중은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 곽현용 사무처장은 “쌀농사 유기농 전환은 해볼 만하다. 농업과 농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고 가장 중요한 식량작물이다. 정부가 큰 계획을 세워서 추진하면 좋겠다. 논농사 유기농 전환과 함께 다작물 윤작이나 양분 순환을 적용해 생물다양성을 살리고 기후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 측면에선 친환경 농산물을 공공급식 전반으로 확대하자는 제안이 있다. 2020년 친환경 농산물의 39%가 학교 급식에서 소비됐다. 이를 유치원과 어린이집, 대학, 군대, 노인, 취약층, 임산부 등으로 전면 확대하자는 것이다. 김광천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사무총장은 “판로만 있다면 농민들은 친환경 농업을 지속하고 새로 진입할 것이다. 친환경 농업은 생산비와 가격이 높은데, 현재 소비가 많이 부족하다. 학교 외의 다른 공공급식으로 확장한다면 생산도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많은 ‘인증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현재의 친환경 인증 제도는 검사 결과 중심이어서 농민이 분명히 유기농업을 했더라도 기존 토양이나 이웃 경작지에서 옮겨온 농약이 검출되면 2차례 시정 권고를 거쳐 친환경 인증이 취소된다. 그래서 인증 제도가 친환경 농업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2018~2020년 친환경 인증 취소 건수는 매년 2600~3200건으로, 이 가운데 46.6%가 농약 사용 위반이었다.

인증 제도와 관련해 농식품부에서도 제도 개선에 나섰다. 농식품부는 2022년 11월부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9개 지원에 친환경 민원 창구를 열었고, 농민이 비의도적 농약 오염과 관련한 재심사를 요구하면 반드시 재심사를 하도록 시행규칙을 개정 중이다.

친환경농업직불금을 농민기본소득으로

2018년 지급 기한을 폐지하고 금액을 올린 친환경농업직불금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웅두 농민기본소득 전국운동본부 공동대표는 “현재 농민 70%의 1년 소득이 1천만원 이하다. 농민 1인당 한 달에 30만원 정도 기본소득(직불금)을 지급하면 도시-농촌 간 소득 격차를 절반 정도 줄일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농촌으로 갈 수 있고, 친환경 농업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원습 농식품부 농식품혁신정책관은 “기존의 친환경농업직불금이나 설비·자재 지원을 계속하면서 소비와 판매를 확대하는 방안, 현재의 친환경 농가뿐 아니라 일반 농가와 농업 전체가 친환경·탄소저감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 규모 있는 친환경 농업 집적 지구를 조성해 친환경 농업의 확대나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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