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김태형 기자
‘부재중 전화 51통’ 단번에 소름 돋는 텍스트다. 51통의 전화를 건 사람의 ‘능동성’ ‘적극성’과 무관하게,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전화를 건 사람이 울린 벨소리는 음향이 아니라고 한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고 있으면 없는, 양자역학급의 논리적 난제에 법원이 도전하고 있다.
인천지법 형사10단독 현선혜 판사는 2022년 11월15일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해도 상대방이 받지 않으면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성 ㄱ(19)씨는 헤어진 남자친구 ㄴ(38)씨에게 나흘간 51차례 전화를 걸었다. 그중 39차례의 전화는 하루에 집중됐다. 현 판사는 벨소리가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할 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상대방 전화기에서 울리는 ‘벨소리’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송신된 음향이 아니”기 때문에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판결은 상대방의 행위 여부에 따라 가해 내용이 결정되는 모순을 안고 있다.
11월6일에는 인천지법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도 비슷한 이유로 스토킹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남성 ㄷ(54)씨는 전 연인(40대 여성)에게 접근 금지, 통화·문자 송신 금지 명령을 받았지만 반복해서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인천지법은 “부재중 전화도 휴대전화 자체 표시 기능에 불과해, 피해자에게 도달하는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 무죄판결 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성명을 내어 “스토킹을 정의한 법 규정을 지나치게 법 기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신문>은 11월9일 법원이 같은 논리로 스토킹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 2022년에만, 9월7일 제주지법(강란주 판사), 6월16일 인천지법 부천지원(오승희 판사), 6월2일 서울남부지법(윤지숙 판사) 등 최소 세 번 더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판결들은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보통신망법상 ‘음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05년의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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