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19일 에크렘 이마모을루 튀르키예 이스탄불 시장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성난 시민들이 튀르키예 국기를 들고 시청사 앞에 모여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범죄 혐의를 씌워 정적을 잡아 가둔다. 요란한 여론전으로 그의 평판을 무너뜨린다. 저항은 단호하게 짓밟는다. 막후에선 세력을 규합한다. 필요하면 원수와도 손잡는다. 노회한 독재자가 영구집권으로 가는 방식이다. 이번에도 통할까? 이스탄불 중심가 탁심광장의 게지공원 철거 반대 시위 유혈 진압으로 반정부 시위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진 2013년 ‘불만의 여름’ 이후 12년 만에 튀르키예 전역이 다시 들끓고 있다.
2025년 3월19일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이 경찰에 체포됐다. 일간 휘리예트 등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혐의는 부패와 테러단체 연루 등 두 가지다. 체포 하루 전 이마모을루 시장의 모교인 이스탄불대학이 돌연 그의 학사 학위를 무효화했을 때부터 조짐이 심상찮았던 터다. 시장직은 박탈됐고, 그는 구치소에 수감됐다. 항의 시위가 곧바로 불붙었다. 경찰은 최루탄, 최루액, 물대포, 고무탄을 사용해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3월19일 하루에만 시위대 37명이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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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대응은 사태를 키운다. 삽시간에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다. 튀르키예 당국은 소셜미디어 검열에 나섰다.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알리 예를리카야 내무장관은 “(시위 엿새째인) 3월24일까지 모두 1418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현장 취재기자 7명을 포함한 172명이 3월25일 구속됐다. 환율이 폭락하고,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3월23일 이마모을루 시장을 차기 대선 후보로 선출한 공화인민당은 친정부 성향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튀르키예 경제를 겨냥한 사보타주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튀르키예 정국이 격랑으로 빨려들고 있다.

2025년 3월19일 에크렘 이마모을루 튀르키예 이스탄불 시장 체포 소식에 분노한 시민들이 시청사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과 이마모을루 시장은 공통점이 여럿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54년 2월 이스탄불에서 태어났지만, 해안경비대 소속이던 아버지를 따라 북동부 흑해 연안의 리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970년 6월 태어난 이마모을루 시장은 흑해 연안 트라브존에서 성장했다. 두 사람 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아마추어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40대에 튀르키예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떠올랐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사법 리스크’를 경험한 것도 마찬가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94년 3월 지방선거에서 이슬람복지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가 재선을 준비하던 1997년 12월 튀르키예 헌법재판소는 이슬람복지당의 정강·정책이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반하는지에 대한 심리에 착수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규탄 집회에서 이름난 옛 시의 한 구절을 따 이렇게 말했다. “사원(모스크)은 우리의 병영, (사원의 반구형 지붕인) 돔은 우리의 헬멧, 첨탑(미나레트)은 우리의 총검, 신심 깊은 우리의 병사는….” 튀르키예 형법 제312조 2항은 공공장소에서 인종·종교적 언사로 대중을 선동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결국 이슬람복지당은 위헌 정당으로 결정돼 해산했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기소돼 징역 7개월형(항소해 4개월형으로 감형)을 선고받고 공직 출마까지 제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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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모을루 시장은 2019년 3월 지방선거에서 집권 정의행동당 후보를 단 1만6천여 표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하지만 취임 한 달여 만에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무효를 선언해 시장직을 박탈당했다. 같은 해 6월 치러진 재선거에서 이마모을루 시장은 2위와의 격차를 약 80만 표까지 벌리며 낙승해 시장직에 복귀했다. 그해 11월 그는 언론 인터뷰 도중 선관위의 선거 무효 결정을 두고 “튀르키예의 국제적 명성을 손상시킨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021년 5월 공직자 모독 혐의로 기소돼 2022년 12월 징역 2년7개월15일형 선고를 받았다. 항소심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25년 3월21일 튀르키예 이스탄불대학 교정에서 학생들이 튀르키예 국기와 건국 영웅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얼굴이 인쇄된 펼침막을 들고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두 사람은 차이점도 도드라진다. 신실한 무슬림 집안 출신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대학 시절 열혈 반공단체인 ‘전국튀르크학생연맹’에서 활동했고,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이슬람민족구원당 이스탄불 시당 청년위원장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는 1999년 7월 만기 복역 뒤 출소해 이슬람주의 성향의 새로운 정당인 정의개발당을 창당했다. 2002년 총선에서 정의개발당은 전체 의석(당시 550석)의 3분의 2에 가까운 363석을 얻으며 압승을 차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치활동 제한이 풀린 2003년 2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총리에 올랐다. 22년 장기 집권의 서막이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중도 좌파 성향인 공화인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건국 영웅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0년대 창당한 공화인민당은 무슬림 국가 튀르키예에서 세속주의의 보루다. 2023년 대선 때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후보는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석패했다. 하지만 2024년 3월 지방선거에선 전체 81개 주 가운데 공화인민당이 35개 지역에서 승리하며, 24개 지역을 차지한 정의개발당을 압도했다. 무난히 재선에 성공한 이마모을루 시장은 일약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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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체포에 항의해 시위에 나선 튀르키예 시민들이 2025년 3월19일 수도 앙카라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의원내각제 국가였던 튀르키예는 2017년 4월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중심제 국가로 탈바꿈했다. 약 87%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던 당시 개헌 투표는 찬성 51.41%(2515만7025표) 대 반대 48.59%(2377만7091표)로 접전 양상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 집권 가능성에 대한 대중적 우려가 컸다는 뜻이다. 특히 3개 조항에 초점이 맞춰졌다. 첫째, 개정 헌법 제101조 2항은 “공화국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고, 최대 2차례 연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둘째, 제116조 1항은 “의회는 재적인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조기 선거 실시를 결정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총선과 대선은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셋째, “공화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중에 의회가 조기 선거 실시를 결정하면, 대통령은 다시 한번 후보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나눠서 따져보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4년 대선에서 처음 당선됐고, 개헌 뒤 치러진 2018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2023년 대선에는 출마할 수 없어야 했다. 하지만 튀르키예 선관위는 2023년 4월 “개헌 이전의 임기는 산입하지 않는다”고 결정해 그의 3선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리고 4선을 위한 다음 대선은 2028년 5월로 예정돼 있다. 이미 고령(71살)인 에르도안 대통령이 한 번 더 출마한다면 사실상 종신 집권이나 다름없다. 방법은 두 가지다. 그의 ‘두 번째’ 임기 안에 의회가 조기 선거를 실시하거나, 아예 다시 개헌해 연임 제한을 폐지하면 된다.
“테러를 뿌리뽑고 물가를 안정시키고 튀르키예의 정치와 경제가 안정화되면, 우리 대통령이 한 번 더 선출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올바른 선택이 아니겠나.” 로이터 통신은 2024년 11월5일 집권 정의개발당과 사실상 연정 파트너인 극우 성향 민족주의행동당의 데블레트 바흐첼리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바흐첼리 대표는 이어 “이런 맥락에서 필요한 헌법적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4선 도전을 위한 조기 선거도, 개헌도 의회 재적인원(600명) 5분의 3에 해당하는 360명이 찬성해야 가능하다. 정의개발당과 민족주의행동당 등 여권이 확보한 의석은 321석에 그친다. 나머지 의석을 어떻게 채울까?

2025년 3월23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액을 발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수감 중인 쿠르드노동자당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이 무장투쟁을 포기하면 의회에서 연설할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 로이터는 바흐첼리 대표가 2024년 10월 이런 제안을 내놨다고 보도했다. 친쿠르드족 성향의 인민평등민주당은 57석을 확보한 원내 제3당이다. 공화인민당과 사실상 정책 공조를 해온 인민평등민주당이 여권과 보조를 맞춘다면, 조기 선거도 개헌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오랜 세월 원수로 싸워온 에르도안 대통령과 쿠르드족 무장세력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무기를 내려놓고 해산하라.” 외잘란은 2025년 2월27일 인민평등민주당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쿠르드노동자당 쪽에 이렇게 촉구했다. 이튿날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포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길로 가는 역사적 발걸음을 내디딜 기회가 왔다. 테러 없는 튀르키예를 위한 노력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호응했다. 40년여 무장 분리독립 투쟁을 벌여온 쿠르드노동자당은 결국 3월1일 ‘휴전’을 선언하고, “앞으로 공격받지 않는 한 무장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으로선 ‘세 규합’의 꼴은 갖춘 셈이다.

튀르키예 최대 도시 이스탄불 시장에 재선된 에크렘 이마모을루 시장이 2024년 3월31일 시청 청사 앞에서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튀르키예 헌법 제101조 1항은 대통령 출마 자격을 “40살 이상 공직 출마 자격이 있는 고등교육 이수자(대졸 이상)”로 규정한다. 체포 전날 대학 쪽이 이마모을루 시장의 학사 학위를 무효화한 이유다. 부패 혐의로 기소됐으니, 유죄가 확정되면 일정 기간 공직에 출마할 수 없다. 이마모을루 시장에게 채워진 ‘이중의 족쇄’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조기 선거가 아닌 개헌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임 제한은 물론 대선 결선투표제까지 폐지해 ‘만약의 가능성’까지 제거하기 위해서다. 22년째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랜 별명처럼 ‘술탄’이 될 수 있을까? 튀르키예의 거리가 불타오르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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