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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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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 포대 안의 새끼 고양이

각막이 찢겨 병원에 도착한 고양이, 다시 비슷한 고양이가 발견되는데…
등록 2022-08-14 13:21 수정 2022-08-15 02:06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장미맨션>에 등장하는 길고양이 살해 장면. 자극적이라고 논란이 된 장면으로 재편집돼 업로드됐다. <장미맨션> 갈무리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장미맨션>에 등장하는 길고양이 살해 장면. 자극적이라고 논란이 된 장면으로 재편집돼 업로드됐다. <장미맨션> 갈무리

새끼 고양이가 한쪽 눈을 못 뜬다고 왔다. 병원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이 데려온 고양이는 생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학교 후문에 놓인 비료 포대를 보았고 포대 안에서 새끼 고양이 소리를 들었다고 학생은 말했다.

가해 행위가 계속되었을 가능성

고양이는 왼쪽 눈을 뜨지 못했다. 밝은 곳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고양이의 눈 상태는 심각했다. 안구가 푹 꺼져 있었다. 눈 안의 물컹한 구조물이 안구 밖으로 흘러나와 털과 함께 굳어 있었다. 시력도, 눈의 구조도 살리기 어려울 듯했다. 찢어진 눈에 염증이 진행되기 전에 안구 적출 수술이 필요했다. 어린 녀석이라 마취를 잘 버텨줄지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마취 전 검사 결과는 양호했다. 적출 수술을 하기로 했다.

마취하고 손상된 눈을 세척했다. 주변 조직의 부패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상처 같지는 않았다.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거나 눈이 둔탁한 무언가에 세게 부딪혀 다쳤다면 안구를 포함한 주변 피부나 골격도 함께 손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각막만 불규칙하게 찢기고 위아래 눈꺼풀은 상처 없이 깨끗했다. 각막 안에서 수정체가 쏟아질 듯이 흘러나온 것도 이상했다. 각막은 탄성이 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일부 손상이 있다 해도 각막 안 깊이 있는 구조물인 수정체가 이렇게 밖으로 흘러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예리한 무언가로 각막만 손상시킨 뒤, 도구를 사용해 눈 안쪽까지 이곳저곳 찔러서 헤집어놓은 것일까? 고양이가 들어 있던 비료 포대의 입구가 끈으로 단단히 묶였다는 것, 학교 근처 잘 보이는 곳에 비료 포대가 놓였다는 것도 이상했다.

2주 뒤 병원을 다시 찾은 고양이는 아주 건강해 보였고 수술 부위도 잘 아물었다. 몸무게가 60g이나 늘었고 봉합사를 풀기 위해 꺼내든 포셉과 가위를 보고도 장난칠 정도로 활력이 좋았다. 익숙한 실내에서 생활한다면 한쪽 눈이 없다 해도 고양이들은 그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다. 고양이를 구조했던 학생은 가족과 의논한 끝에 녀석을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고양이가 좋은 가족을 만났다는 소식에 흐뭇했지만 꺼림칙한 기분은 남아 있었다. 수술 중에 보았던 고양이의 이상하게 손상된 눈이 종종 떠올랐지만 바쁜 병원 일상에서 나는 그 일을 곧 잊어버렸다.

3주 뒤 그 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교 후문의 똑같은 자리에 비료 포대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한쪽 눈을 뜨지 못하는 또 다른 새끼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첫 번째 고양이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연쇄적인 고양이 학대를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동물학대 실형은 992건 중 10건

학생은 두 번째 고양이를 발견하고 곧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담당 경찰은 범인을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난색을 보였다. 학교 후문 그 장소에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순간 후회가 몰려왔다. 수술하며 보았던 고양이의 눈 상태에서 학대를 의심했으면서도 나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때 내가 신고했다면 경찰이 조사했을 것이고, 학교 후문 CCTV는 보강됐을 수도 있다. 첫 번째 학대 행위를 신고했다면 두 번째 희생을 막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무거운 죄책감이 들었다.

어린 고양이만을 대상으로 삼았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학습하지 못한 어린 고양이를 손에 넣기는 쉬웠을 것이다. 어미와 떨어진 새끼 고양이를 노렸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아무리 어린 고양이라 해도 정확하게 눈만을 찌르기는 쉽지 않다. 주변 조직은 건드리지 않고 각막만 예리하게 손상시키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살기 위해 고양이는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가해 행위가 계속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동물병원 신입 스태프도 고양이 보정 방법을 배우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병원에서 필요한 처치를 위해 고양이 잡는 방법을 몸으로 익혀야 한다. 반복 훈련이 꼭 필요하다. 이 사건의 가해자 역시 고양이를 제압하고 눈만 정교하게 손상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 동일한 가해 행위를 반복했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본 두 건의 학대 이전에 훨씬 많은 학대가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경찰청과 대검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동물학대 발생은 2020년 992건으로, 2011년 98건에 견줘 10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10년 동안 구속 수사된 사례는 경찰 5건, 검찰 2건뿐이고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10건뿐이다. 동물보호법이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벌금형의 비교적 가벼운 처벌만 이뤄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동물학대 사건을 엄중히 수사하고 가해자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수는 하루 만에 10만 명을 훌쩍 넘기곤 한다. 동물학대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사법부의 괴리가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동물학대자는 자신의 행위가 처벌받지 않음을 쉽게 학습할 것이다. 학대 행위는 더 잔인해지고 지속될 것이다.

동물학대가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은 이미 시대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법부가 따라가야 할 차례다. 동물학대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한 수사 방법에 따른 현실적인 대응 매뉴얼이 꼭 필요하다. 동물학대를 엄벌하는 판례도 더 많이 쌓여야 한다. 이를 위해 동물학대 사건의 재판에서 현실적인 양형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야 동물학대가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에 자리잡게 된다.

고양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시민

글을 쓰는 지금, 오래전 병원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떠올랐다. 화살로 보이는 물건이 고양이의 뒷다리를 관통한 것 같다는 전화였다. 막 병원을 개원해 정신없던 때였고, 부끄럽지만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동물보호단체에 상담하기를 권하고 무심히 지나갔던 것 같다.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지금에야 든다.

2019년 이른바 군산 길고양이 화살촉 사건으로 알려진 일이 있다. 누군가 담벼락 밑에서 담벼락 위의 고양이 얼굴을 향해 화살을 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었다. 군산 경찰서 담당 경찰은 4개월에 걸친 수사로 45살 A씨를 체포했다. 주변 CCTV를 분석하고 화살촉 구매 경로를 추적하고 주변인 탐문수사를 한 결과였다. 수사와 범인 검거가 가능했던 시발점은 그 고양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신고했던 한 시민이었다.

반복되는 잔혹한 동물학대 사건에 무기력 혹은 무감각해지는 것, 이는 동물학대자들이 가장 바라는 일일 것이다. 수사기관이 아닌 시민이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동물학대 행위로 의심되는 사건을 단체에 제보하거나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것이다. 신고한 사건이 잘 수사되는지 꾸준한 감시도 꼭 필요하다. 우리 지역 공동체에서 동물학대가 용납되지 않음을 알리고 공유하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그건 주변 생명에 가져야 할 윤리적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 인간인 나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허은주 수의사·<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저자

*시골 수의사의 동물일기: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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