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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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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과자에도 들어가는 소고기

죽임의 문명에 대항하는 살림의 정치를…21세기 인류세를 사는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비거니즘’
등록 2022-08-07 17:52 수정 2022-08-08 12:31
2006년 12월11일 네덜란드 암스텔베인의 한 염소 농장에서 네덜란드 ‘동물을 위한 당’(PvdD)의 당수인 마리아너 티머가 염소를 바라보고 있다. 2002년 창당한 동물을 위한 당은 2006년 총선에서 2석을 차지해 동물당으로선 처음 유럽의회에 입성했다. 로이터

2006년 12월11일 네덜란드 암스텔베인의 한 염소 농장에서 네덜란드 ‘동물을 위한 당’(PvdD)의 당수인 마리아너 티머가 염소를 바라보고 있다. 2002년 창당한 동물을 위한 당은 2006년 총선에서 2석을 차지해 동물당으로선 처음 유럽의회에 입성했다. 로이터

“비거니즘을 잘 모른다.” 2022년 5월 한국리서치 조사(전국 만 18살 이상 남녀 1천 명 대상)에서 응답자 다수인 68%가 답했다. 하지만 20대(만 18~29살)에선 절반에 가까운 48%가 “비거니즘을 알고 있다”고 했다. 미래 세대일수록 비거니즘 이해도가 높다. 비거니즘은 기후위기 문제와도 뗄 수 없다. 2021년 환경부는 공장식 축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세계 배출량의 7%(국내 1.3%)라고 밝혔다. 미래 세대가 이 주제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향후 비거니즘이 단순한 개인 기호나 생활양식을 넘어 주류 담론이 될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 임채도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작가이자 가수인 전범선 밴드 ‘양반들’ 리더(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2022년 7월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모였다. 이 대표와 전 작가는 비건이고, 임 소장과 하 변호사는 고기를 먹지만 각각 생명살림 운동과 녹색당 운동에 오래 관여했다. 지금 이 시기 비거니즘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들과 함께 2020년 총선 때 시도됐던 동물당 창당 논의부터 이야기를 풀었다.

(왼쪽부터)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작가이자 가수인 전범선 밴드 ‘양반들’ 리더(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 임채도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이 2022년 7월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모였다. 전 작가와 이 대표는 비건이고, 하 변호사와 임 소장은 고기를 먹지만 각각 녹색당 운동과 생명살림 운동에 오래 관여했다. 류우종 기자

(왼쪽부터)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작가이자 가수인 전범선 밴드 ‘양반들’ 리더(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 임채도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이 2022년 7월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 모였다. 전 작가와 이 대표는 비건이고, 하 변호사와 임 소장은 고기를 먹지만 각각 녹색당 운동과 생명살림 운동에 오래 관여했다. 류우종 기자

동물권=인권, 동물해방=기후정의

전범선 유럽엔 동물당이 많아요. 전세계에 19개 정도? 주로 다당제 국가에서 이런 단일의제 정당이 만들어지죠. 스페인은 투우 반대운동이 동물당이 됐어요. 한국도 지난 총선 때 여성의당, 규제개혁당, 기본소득당이 등장했죠. 그래서 우리도 동물운동을 정치 영역으로 끌어와야 한다 생각했어요. 스페인이 투우니까 우린 개고기로. 그래서 (동물해방물결 차원에서) 동물보호단체들과 동물당을 만들려 했는데 잘 안됐어요. 아직 비거니즘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생각했고 비거니즘을 좀더 다지고 새로 연대할 세력을 찾아보자고 얘기해요. 요즘엔 비거니즘을 ‘살림’으로 번역해요. ‘육식 반대=죽임 반대=동물 살림=지구 살림=사람 건강 살림’이거든요. 다 연결된 철학이죠.

이지연 비건을 많이 만나는데 주로 20·30대 여성이죠. 이들은 변화에 대한 갈증은 많지만 정책이나 법이 안 바뀌어 힘들어해요. 특히 윤리적 입장에서 비건 하는 이는 자기 생존에 영향을 줄 정도의 분노를 느껴요. 그만큼 열망이 세고 잘 뭉쳐요. 동물권이 인권이고 인권이 동물권이고, 동물해방이 기후정의이고 기후정의가 동물해방이니 이들과 함께 (정치 영역에서) 제3세력을 만들 순 없을까, 이런 고민 하며 지내요.

전범선 현실에선 진보정당이 분열하지만, 비건은 모두 페미니즘과 노동, 기후위기에 민감해요. 거기서 통합되는 것 같아요. 최근 선거에서 페미니즘이 뜨거웠는데 앞으론 기후위기가 모든 것을 잠식하는 의제로 떠오를 거고, 그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세력이 비건일 겁니다. 이걸 담아낼 정치적 그릇을 만들려는 거죠. 한데 저희만으론 역부족이라 기존 생명운동, 녹색운동 하셨던 분들에게 배워가며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한살림은 매장에서 고기를 팔지만, 동물해방물결에서 하는 보금자리(동물 생크추어리) 사업도 가장 잘 이해해주거든요.

하승수 공장식 축산은 기후위기 원인이면서 악취·분뇨로 농촌 환경을 오염시키고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입니다. 특히 양계나 양돈은 점점 기업화돼가요. 하림 같은 대기업이 사료 주고 농민을 하청업체처럼 키우죠. 동원, 사조 같은 기업도 양돈 시장에 들어오고요. 고기 소비는 주로 도시에서 하는데 피해는 농촌과 농민에게 돌아가요. 가뜩이나 폭염과 장마에 농사짓기 힘든데 축산이 정말 ‘농업’인가 생각하죠. 농민들도 공장식 축산에 부정적이에요.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사진=류우종 기자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사진=류우종 기자

인간 중심주의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극복할 것인가

임채도 농민들이 축산 들어오면 다 반대해요. 한살림도 축산 하는데 주로 ‘경축순환농업’이에요. 퇴비화한 가축분뇨를 농경지에 환원해 농업·축산·환경을 조화롭게 하는데, 나름 뜻있는 유기축산인데도 공장식 축산 때문에 환영받지 못해요.

하승수 개인의 신념·윤리와 사회운동, 정치 이 세 가지 차원을 구분하는 게 중요해요. 개인 차원에선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죠. 유기축산 정도는 필요하다, 오랫동안 존재해온 삶의 양식이다 생각할 수 있죠. 또 비건으로 철저하게 자기 신념을 지키며 다른 존재의 고기를 먹지 않겠다 생각할 수 있어요. 이런 차이를 존중하며 운동으로 모일 수 있죠. 기후위기나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환경문제, 비인도적 사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니까. 저도 전에 페스코 채식을 하다 (농본 활동을 위해) 농촌으로 간 뒤론 채식을 못해요. 아직은 자연스레 고기를 먹는 농민들과 비건 하자는 얘기까지 나누긴 쉽지 않아요. 하지만 농민들도 공장식 축산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요. 땅과 물이 오염되니까. 도시에서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분들이 이들과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임채도 한살림 내부에서도 고기 파는 건 논쟁적 주제예요. 우리가 왜 고기를 팔아야 하냐며 완강하게 매장 진열을 거부하는 지역도 있고, 한편에선 더 많이 갖다놓으라고 해요. 한살림은 조합원이 80만 명 조금 넘는데 주로 영유아를 둔 30대 엄마들이에요. 고기 외에 아이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없죠. 비건을 아는 이가 늘었다지만 단백질 섭취 같은 구체적인 건 잘 몰라요. 쉽게 비건운동에 접근할 영역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승수 정치에선 정책으로 문제를 풀어야죠.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는 조례나 법처럼. 비건은 아니어도 육식이 과도하고 기후위기를 생각하면 먹는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죠. 현재 논의하는 탄소중립 정책에서 얘기되지 않는, 축산 규모 자체를 줄이자고 할 수도 있고. 지금은 가축에게 저탄소 사료 먹이는 정도거든요. 지금의 공장식 축산은 지속 불가능하단 얘기를 정책으로 해야 해요. 그러면 폭넓은 관심과 동의가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는 기존 거대정당들이 하지 않죠.

전범선 기존 정당들도 10년 안에 얘기하게 될 겁니다. 이미 유럽은 그렇게 되고 있죠. 저는 우리 시대 문제가 인간 중심주의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극복하느냐로 생각해요. 비거니즘의 핵심과 닿아 있어요. 건강이나 기후위기 때문에 채식하는 건 단지 나의 생존이나 인류 살아남기란 측면에서 이기적이라면 비거니즘은 달라요. 비거니즘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아닌 타자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지구 살림만큼 동물 살림도 중요하단 거죠. 21세기 인류세를 사는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예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려면 탈축산을 해야 해요. 한데 탈석탄만 얘기하죠. 이유는 단순해요, 맛있는 고기를 계속 먹어야 하니까. 이건 비인간 존재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건데 그런 마음가짐으론 절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작가이자 가수인 전범선 밴드 ‘양반들’ 리더(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 사진=류우종 기자

작가이자 가수인 전범선 밴드 ‘양반들’ 리더(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 사진=류우종 기자

기후정의 안에 페미니즘, 비건, 노동 포함

임채도 전 좀 신중한 입장입니다. 결국 생명존중 세상을 만들자는 건데 왜 지금 정치적 경로가 강조돼야 할까 싶어요. 최근엔 정치도 하나의 선택지가 돼가잖아요. 정치는 더 이상 시민사회의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대변하지 않아요. 정의당이나 녹색당도 대중은 흩어지고 활동가만 남았고요. 비건운동이 우리 사회 진보의 중요한 블록이 되리라는 전망엔 찬성하지만, 아직 대중적 기반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물당을 만드는 게) 정치나 선거에 함몰시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비건과 비건 지향이 우리 사회에 지금 얼마나 존재하고 이들이 정치활동에 얼마나 동의나 이해를 하는지, 또 정당을 만들면 어떤 운영원리에 따라 운영하고 기존 정당과 어떻게 다를지가 중요해요. 생명존중의 조직 원리가 이런 거다, 보여줘야 대중이 표를 주거든요.

하승수 한국 사회는 지금 정치뿐 아니라 사회운동도 많이 침체됐어요. 새로운 사고가 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같이할 수 있는 것을 찾는 노력이 바탕이 돼야 정치적으로도 폭넓은 연대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한국 진보정당에서 그런 노력이 부족했어요. 비건도 관심 있고 생명운동, 녹색운동에 관심 있는 이들이 공통분모를 가지고 대중운동을 시도하며 함께 가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을 처음 발족한 2017년 11월엔 비거니즘이란 말이 사회적으로 아예 안 쓰였어요. 한데 불과 4~5년 사이 비건 지향이 굉장히 많이 늘었어요. 속도가 굉장히 빠른 것 같아요. 2020년 총선 때 동물당 논의 이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대선을 거치면서 동물권 의제를 부각하는 일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더 우리 운동의 세력화가 필요하단 생각을 했어요. 비건은 라이프스타일(개인의 생활양식) 이전에 철학인데, 요즘은 기업에서 비건 마케팅을 라이프스타일로 해요. 비건이 아닌 연예인을 내세워 비건 제품을 홍보해요. 관심도가 늘지만 운동으로, 철학으로 이해하는 중심세력이 이걸 운동의 세력화로 끌어안고 비슷한 의제를 내세웠던 이들과 공통분모를 찾는 일을 시작하는 게 2022년이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정당을 만들면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할 능력도 길러야겠지만.

전범선 기후정의란 거대한 우산 안에 페미니즘과 비건, 노동 등이 다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죽임의 문명에 대항하는 살림의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살림이 화두가 돼 다양한 진보운동이 인류세 죽임의 문명을 개선하는 정치적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시점이라 생각해요. 고기를 안 먹는 게 유일한 잣대가 돼선 안 되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죠. 비거니즘의 본질은 고기를 안 먹는 게 아니라 살림을 하는 것이니까.

이지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정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미국 뉴욕이나 버클리 같은 곳에선 공공기관에서 음식에 쓰는 예산을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 2050년까지 단계적으로 전부 식물성에 쓴다는 법이 통과됐어요. 우리도 이런 정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 사진=류우종 기자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대표. 사진=류우종 기자

공공급식부터 채식선택권 보장

하승수 세계적으로 좋은 사례가 많죠. 한데 우리는 채식선택권 보장이나 동물복지축산 전환 등이 선거 때만 얘기되는 정도죠. 크게 힘을 갖기 어렵고 거대 양당 후보의 공약 중 하나로 들어가도 나중에 선거 끝나면 유야무야되고.

전범선 전 육류세에 찬성해요. 소고기와 소젖(우유) 소비를 제한해야 해요. 환경 비용도 있고 건강 문제도 있잖아요. 영국의 경우 (런던대학 골드스미스칼리지) 학생들이 투표로 교내에서 소고기를 금지하기도 했어요. 독일도 비슷한 사례가 있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바로 덜어내야 하는 음식이 소고기랑 소젖이에요. 가장 환경비용이 크기 때문에.

하승수 가장 기본적인 건 공공급식부터 채식선택권이 보장되는 거라 생각해요. 또 사실상 의무화된 우유급식도 바뀌어야 하고. 공공급식부터 변화가 필요해요. 당장은 기업화되고 공장식으로 이뤄지는 축산을 줄여가야죠. 한국에선 대규모 양돈과 양계처럼 기업화·규모화된 거는 규제가 필요하고, 소규모 농가에서 키우는 한우 같은 건 전환하도록 도움을 줘야 해요. 종합적이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요. 비거니즘이 대중운동이 되고 정치 의제화하려면 정책 순서를 잘 정하고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야 해요.

전범선 특히 탈축산이 에너지 전환 정책의 일부로 확실히 들어가야 합니다. 탈석탄이 몸 밖의 에너지를 전환하는 것이라면, 탈축산은 몸 안의 에너지 생산 방식을 전환하는 거예요. 탈석탄을 위해 관공서 관용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꾼 것처럼, 관공서가 채식급식을 하면 좋은 인식이 생길 겁니다. 탈축산이 탈석탄만큼 중요한 의제라는 인식만 생겨도 좋을 것 같아요. 학교 가면 채식급식 주고 관공서 가면 채식 나오는구나, 이러면 대중의 인식도 바뀔 겁니다.

임채도 대량생산 체제가 작동하는 건 대량소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과잉 소비 중 많은 부분만 드러내도 이 체제는 재생산되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비건을 통해 돌아봐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짜 배고픔을 느끼면서 고기를 과잉 소비한다는 거죠. 탈소비가 되지 않으면 탈성장, 탈자본도 안 돼요. 한살림에서도 주 1회 고기 먹지 않는 날 운동을 제안해볼까 싶습니다.

임채도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사진=류우종 기자

임채도 한살림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 사진=류우종 기자

에이스 과자에도 들어가는 소고기

이지연 개인의 소비가 과연 얼마나 그 개인이 원해서 하는 걸까도 따져봐야 해요. 예를 들어 과자나 라면에도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요. 고기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음식에도 소스 같은 데 들어가요. 출생률이 낮아지면서 소젖도 남아도는데 최근엔 이걸 분말화해서 여러 제품에 넣어요. 왜 에이스 과자에 소고기가 들어가야 하는지, 그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축산발전기금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해요. 아직도 현대화를 명목으로 공장식 축산을 지원하고 있어요. 시장에선 결국 대체육과 배양육이 나올 텐데, 그 변화를 제때 인지하지 않고 정부나 축산업계가 대비하지 않으면 어찌 될지 생각해야 해요. 한살림에서 하는 경축순환농업으로 바꾸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때 지원하는 기금으로 가야 해요. 한우자조금, 한돈자조금도 문제예요. 농가에서 거출한다지만 상당 부분이 정부 예산이거든요. 그 자조금이 계속 건강이나 환경에 피해가 없는 것처럼, 고기를 먹는 게 정상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요.

하승수 그런 의미에서 연대가 필요해요.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큰 전환을 하는 쪽에 정부 자금이 쓰여야 하는데 여전히 과거 방식으로 해요. 농촌에서도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하지만 정부 정책은 고려가 전혀 없어요. (땅을 갈지 않아 탄소격리 효과가 높은) 무경운 농법을 시도하는 분이 있는데 정부 정책에선 전혀 인정받지 못하죠.

이지연 동물보호 전반에 쓰이는 예산도 훨씬 늘어야 해요. 지금은 개·고양이만 구조하고 그것도 기한 안에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켜요. 예산이 없어서 그래요. 저희 보금자리(생크추어리) 사업 관련해서도 반려동물을 벗어나는 동물종에 대한 구조를 진행할 법적 기반이 하나도 없어요. 소는 무조건 축산업 개체예요. 소나 돼지를 반려로 키우는 경우도 있는데 규정이나 선례가 없어서 개·고양이보다 못한 대우를 받아요.

전범선 축산업 전환 과정에선 특히 배양육이 분수령이라 생각해요. 이스라엘은 이미 상용화돼 있는데 닭가슴살이 파운드당 7.7달러(약 1만원) 수준이에요(미국의 일반적인 사육 닭고기 가격의 두 배). 3차원(3D) 프린터로 주문 제작하기도 해요. 2014년부터 개발했는데 기하급수로 가격이 낮아져요. 맛도 기존 고기와 같거나 더 좋아요. 더 중요한 건 돼지는 농장에서 6개월을 키워야 하는데 배양육은 6일 만에 만들어요. 생산 규모가 커져서 기존 축산업 고기보다 가격이 낮아지는 순간 기존 축산업은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실험실 고기라 꺼림칙하다지만, 항생제 덩어리에 죽임으로 가득한 고기보다 낫다는 건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죠. 인식이 바뀌는 건 한순간이에요. 이런 전환이 이뤄질 때 있을 사회적 폭풍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승수 일단 고기 소비를 줄이는 게 중요해요. 일주일에 하루라도 안 먹는다거나. 현재 1인당 고기 소비량이 1970년보다 10배 이상 늘어났어요. 고기를 옛날보다 10배 이상 더 먹는데 좀 줄이자, 그래도 건강에 아무 영향이 없고 오히려 더 건강해진다, 먹어야 한다면 동물권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고기를 먹자, 이런 식의 운동이 필요해요. 특히 공공급식부터 채식 메뉴 보장하고 고기 소비 최대한 줄이자, 몸에도 좋고 다 좋다더라는 식으로 확산해야 해요.

비거니즘은 하나의 세계관, 철학, 운동

전범선 비거니즘 운동은 당연히 윤리적 신념으로 하는 이들이 주도하겠지만, 비거니즘의 본질은 최대한 동물을 덜 죽이고 식물성 음식을 장려하는 것이에요. 개인의 숭고함이나 윤리적 완벽성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고통의 총량을 줄이고 많은 죽임을 방지하느냐, 얼마나 살릴 수 있느냐는 거죠. 고기를 먹는 사람도 더 많은 이를 살릴 수 있어요. 서양에서 1944년 누군가 만든 비건이란 개념에 갇힐 필요는 없죠(채식주의자·Vegetarian에서 파생된 비건이란 용어는 1944년 영국의 동물권 운동가 도널드 왓슨이 만들었다). 누가 더 고귀하냐는 논쟁처럼 인간 중심적인 게 없는 거 같아요.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은 누가 더 완벽하냐를 신경 쓰지 않거든요. 얼마나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느냐가 중요해요.

임채도 비거니즘은 하나의 세계관, 철학, 운동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먹는 행위만을 지칭하거나 선택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생명의 고통에 착근하고 집중하는 게 비건운동이라면 전체 생명운동에도 새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기존 생명운동이 가진 낡고 식상한 부분을 걷어낼 좋은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지연 무엇보다 대중에게 열린 비건 공동체를 만드는 게 지금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존재의 고통에 민감한 비건 지향이 대중에게 열린 자세를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만, 그럼에도 그런 자세를 가져야 원하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목적에서 2021년 ‘비건클럽’이란 커뮤니티도 만들었는데, 서로 연결되는 장들은 앞으로도 더 많아질 테니, 서로 교류해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정리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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