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의 ‘플랜튜드’ 식당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2시에도 70%가량의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삼삼오오 찾은 외국인이나 혼밥을 즐기러 온 이들도 눈에 띄었다. 플랜튜드는 풀무원이 2022년 5월 처음 문을 연 비건 식당으로, 비건 인증을 받은 음식만 판다. 개점 두 달여 만에 1만 그릇(메인 식사 메뉴 기준) 넘게 판매됐다.
모두 13가지 음식을 파는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식물성 대체육(콩에서 추출한 식물성조직단백(TVP·Textured Vegetable Protein) 소재를 가공해 만든 대체육)을 활용한 ‘플랜트소이불고기덮밥’, 두부를 중심으로 한 ‘두부카츠채소덮밥’, 감자·통마늘·감태 등을 활용한 ‘트러플감태화이트떡볶이’ 등이다. 환경과 건강을 함께 생각하는 2030세대가 주요 방문 고객층으로, 여성 비중이 남성보다 좀더 높다. 임소현 플랜튜드 셰프는 “코엑스 전체 식당을 통틀어 ‘맛집’이라고 표현해준 분들의 리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비건 음식은 단순히 고기를 제외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100% 식물성인 재료를 확보하는 일도 까다롭고 음식 조리 과정에도 신경 쓸 부분이 많다. 플랜튜드는 사용한 재료에 동물성 원료가 섞이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비건표준인증원에 재료를 보내 디엔에이(DNA) 검사를 받았다. 시중에 출시된 ‘식물성’ 제품이라 해도 ‘비건’ 재료로 온전히 인증받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감태떡볶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중에 식물성 크림이라고 나온 제품을 사용했는데 알고 보니 미량의 우유가 함유된 거예요. 결국 처음부터 음식 개발을 다시 했어요. 고민하다 양파·마늘·감태를 활용해 크림 느낌이 나게 만들었죠.”(임소현 플랜튜드 셰프)
고기, 우유, 달걀 등 동물성 재료를 완전히 배제한 ‘비건’ 제품은 현재 식품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 중 하나다. 주요 식품 기업들은 콩이나 배양육을 활용한 대체 단백질 제품을 앞다퉈 개발하고, 우유 대신 귀리·아몬드 등을 활용한 식물성 유제품도 저변을 넓히고 있다. 미국, 독일, 캐나다, 싱가포르, 영국 등에서는 식물성 달걀 연구까지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잇저스트’는 녹두, 강황 등 식물성 재료를 혼합한 식물성 달걀 ‘저스트 에그’ 제조에 성공해 여러 국가로 수출한다. 발효기술을 활용한 대체 단백질이나 대체 해산물 개발도 ‘비건 식품’의 차세대 분야로 주목받는다.
삼정케이피엠지(KPMG)경제연구원과 데이터 플랫폼 ‘스태티스타’는 세계적인 식물성 식품 시장(2021년 356억달러)이 2025년에는 2배 이상 늘어난 77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외에선 2000년대 후반부터 버거 패티 등 식물성 식품을 만드는 신생기업이 등장했다. 켈로그, 네슬레 같은 대형 식품기업이나 타깃 등 유통기업도 식물성 식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한국도 △식품 제조(CJ제일제당, 농심, 풀무원, 롯데푸드, 동원F&B, 대상) △식자재 유통(신세계푸드, 현대그린푸드) △유통(CU, GS25, 세븐일레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앞다퉈 대체식품 사업 추진에 나선 상태다.
연구원은 “2025년까지는 전통적인 육류 제품 소비가 지배적일 것으로 보이나 2040년에는 배양육과 식물성 육류 등 대체육류 비중이 절반을 넘어 6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건강·환경·동물복지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고, 기술 발달로 대체육류의 맛이나 식감이 실제 고기와 비슷하게 구현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홍기획이 포털과 소셜 키워드 언급량을 분석한 결과, 2019년 말 이후 ‘비거니즘’ 혹은 ‘비건’ 키워드 검색량이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코로나19라는 위기가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도를 높인데다, 2030세대는 소비를 통해 자기 신념을 표현하고 사회·환경 등 넓은 범위의 영향까지 고려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을 즐기는 경향이 있어 비거니즘에 관심 있는 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대홍기획은 내다본다.
국내 식품·유통 계열 대기업이 앞다퉈 비건 식품을 주력 상품으로 삼고 개발에 뛰어든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비건 간편식 판매, 비건 식당 개업 등 낯선 비건 음식과 소비자의 접점을 늘리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씨제이(CJ)제일제당은 2021년 12월 식물성 식품 전문 브랜드 ‘플랜테이블’(PlanTable)을 출시하고 비건 만두와 김치를 내놓았다. 2022년 7월 식물성 식품 사업을 기업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 2025년까지 매출 2천억원 규모로 관련 사업을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다. 5가지 채소, 대체육, 식물성 오일로 만든 ‘비비고 플랜테이블 왕교자’는 출시 두 달여 만에 28만 봉 이상 판매돼 목표치를 웃돌았다.
이 밖에도 우유를 대체한 ‘얼티브 플랜티유’를 출시했고, ‘클린라벨’(무첨가, Non-GMO, Non-알레르기, 천연재료, 최소한의 가공 등의 특성을 지닌 식품이나 소재) 제품과 버섯 등을 이용한 발효단백질, 배양육 등을 연구·개발하는 데도 집중할 계획이다. CJ제일제당은 “궁극적으로는 육류가 함유된 가정간편식 대부분 제품을 소비자가 식물성 식품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술을 확보하고 제품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1년 3월 ‘식물성 지향 식품 선도 기업’을 선언한 풀무원은 ‘식물성 지향 식품’과 ‘동물복지 식품’ 등 지속가능 식품의 매출 비중을 전체 매출의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부면’은 출시 2년 만에 누적 판매량 1천만 개를 돌파했고, ‘두부텐더’ 같은 제품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성장하고 있다. 2021년 비건사업을 공식화한 농심도 식물성 대체육 제조기술을 간편식품에 접목한 비건 브랜드 ‘베지가든’을 만들고 식물성 다짐육 패티, 떡갈비·탕수육 등 조리냉동식품, 만두·떡볶이 등 즉석편의식품까지 총 30여 개 제품을 2022년 7월 출시했다. 2017년 시제품을 개발한 뒤 채식 커뮤니티나 서울 유명 채식식당 셰프들과 함께 보완 개발한 메뉴들이다.
유통기업인 이마트도 비건 시장에 뛰어들었다. 2020년 8월부터 점포 안에 ‘채식주의 존’을 별도로 만들고 식물성 원재료만 활용한 채식 상품을 판매 중이다. 22개 점포, 10개 상품으로 시작한 ‘채식주의 존’은 2022년 7월 기준 68개 점포에서 27개 상품을 판매, 운영할 정도로 늘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냉동채식 제품의 2022년 판매량(7월10일 기준)은 전년 동기 대비 385% 늘었다”고 설명했다. 2022년부터 샐러드 전문기업 ‘스윗밸런스’와 협업해 선보인 채식간편식 ‘오늘채식’을 공동기획한 이마트 관계자는 “평소 샐러드, 샌드위치에 친숙한 2030 고객도 있지만 이마트 주 고객층인 50∼60대 주부가 가장 많이 산다”고 설명했다.
대체 단백질 안전기준 마련은 더뎌비건 식품 시장의 성장세에 견줘 관련 규정이나 기준 마련은 더딘 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체 단백질 식품의 정의·유형·표시에 관한 규정과 안전관리 기준, 세포배양 식품의 안전성 평가 지침 등을 개발 중이다. 현재 국내에선 비건표준인증원, 한국비건평가인증원, 한국비건인증원 등 개별 기업 차원에서 비건 인증 심사를 거쳐 인증서를 발급해주는 형태로 비건 제품 인증이 이뤄진다. 인증원들은 보통 △원료 선택과 제품 제조 전 단계에 걸쳐 동물성 원료와 동물 유래 성분을 직간접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제품 제조 과정에서 또는 제품 성분에 대해 동물실험이 이뤄지지 않아야 하며 △생산과정에서 동물성 원료와 동물 유래 성분으로부터 교차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조처할 것을 ‘비건 인증기준’으로 두고 있다.
이런 이유로 플랜튜드는 음식 제조 과정에서 재료에 조금이라도 동물성 재료가 묻거나 섞이는 ‘교차오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교차오염을 막기 위해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매장 안팎에서 우유가 함유된 ‘라테’류 커피를 절대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글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이완 기자 wani@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참고 문헌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대체식품과 투자 동향’, 삼정KPMG연구원
‘데이터로 읽는 비거니즘 맥락’, 대홍기획
이날 <한겨레21> 기자들이 플랜튜드에서 선택한 메뉴는 ‘두부카츠채소덮밥’ ‘트러플감태화이트떡볶이’ ‘두부페이퍼라자냐’ ‘플랜트소이불고기덮밥’ 등이었다. 디저트로는 ‘두부티라미수’를 택했다.
플랜트소이불고기덮밥
김진수 기자(식품공학 전공자)
“마치 진짜 채끝을 구운 것 같다.”
★★★
두부페이퍼라자냐
손고운 기자 “두부와 토마토소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
두부카츠채소덮밥
이완 기자 “매콤한 고추나 채소와 두부가 잘 어울리고 포만감도 (일반 돈가스를 먹을 때처럼) 똑같이 준다.”
★★★
트러플감태화이트떡볶이
박다해 기자 “두유를 넣지 않고도 양파, 마늘, 감태로 크림 느낌을 내는 게 정말 신기하다. 감태로 인해 맛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듯.”
★★★★
두부티라미수
손고운 기자 “두부로 어떻게 이런 식감을 구현했는지 놀라울 따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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