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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지 않아도 좋아

등록 2022-08-10 07:28 수정 2022-12-09 07:28
비건음식 ‘토마토 수영장’. 배은정씨 제공

비건음식 ‘토마토 수영장’. 배은정씨 제공

‘비건 비긴’(Vegan Begin) 통권호(제1424·1425호)에 글을 싣고 싶다고 보내주신 독자들의 사연 가운데 일부를 싣습니다. _편집자

비건과 채식,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해 미디어에서 접하는 소식은 꽤 많았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실천을 미뤘다. 그러나 기온이 변화하면 인간에게 재앙이 닥치리라는 말을 더는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시민공익활동 ‘씨앗’ 사업에 공모했다. ‘나무 한 그루’라는 팀명을 정했다. 1인 환경&비건 활동을 실천하고 후기를 블로그에 올려 누구나 쉽게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음을 공유하고 싶었다.

선정 발표날, 내 팀명이 명단 제일 위에 있었다. 이제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실천할 때다. 시작은 대나무칫솔을 쓰는 것이었다. ‘대나무칫솔은 나무 냄새가 난다’ ‘모가 뻣뻣하다’ 등 호불호가 갈렸는데 직접 써보니 기존 칫솔과 별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대나무칫솔을 잘 사용한다.

다음에는 주변의 비건 음식 파는 곳을 찾았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비건식을 파는 곳이 있어 친구와 방문했다. 거기서 먹은 메뉴는 이름도 상큼한 ‘토마토 수영장’이다. 토마토수프와 함께 담백한 빵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니 기분이 좋았다. 환경을 위한 실천이 아닌 ‘나’라는 개인의 건강을 위해 이걸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몫의 환경보호 실천을 한다면 결국 우리는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비건이나 환경보호 실천을 한다면 거창한 뭔가를 해야 할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혼자 해본 비건·환경보호 실천은 익숙한 습관에서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가는 작은 시작일 뿐이었다. 평소 익숙하게 카페에서 받던 빨대도 한 번 안 받기 시작하니 자동으로 쓰지 않았다. 멀리 이동하면 자연스럽게 텀블러를 챙기고 그 동네에 비건 식당이 있는지 검색한다.

환경 관련 활동 하면 쉽게 떠오르는 게 길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혼자 쓰레기를 주우려니 막막해서 친구 동네에 종량제봉투를 들고 가서 무작정 쓰레기를 주웠다. 그간 친구와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니 즐거웠다. 쓰레기 줍는 일이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번 줍고 나니 다음에 또 줍는 건 쉬웠다. 햇볕이 무섭도록 내리쬐는 날씨,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지만 한 손에는 목장갑, 다른 한 손에는 쓰레기 집게를 들고 동네 공원에서 열심히 쓰레기를 주웠다. 먹다 버린 물병, 아이스크림 포장지, 담배꽁초, 과자 봉지 등 길거리에 쓰레기가 무척 많았다. 주워도 주워도 끝이 안 보일 만큼 쓰레기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주웠다.

쓰레기 ‘줍깅’. 배은정씨 제공

쓰레기 ‘줍깅’. 배은정씨 제공

7월이면 이 공익활동이 끝난다. 4월에 시작한 대장정을 끝맺기 위해 ‘비건 실천 일기’라는 작은 책자를 내고 마무리하고 싶다. 그 책자를 주변에 나눠주며 내가 했던 일이 무엇인지 말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독려하고 싶다. 또 채식은 맛있다는 사실을 꼭 알려주고 싶다. 누구나 쉽게 ‘고기 덜 먹기’를 실천할 수 있다. 실천은 멀리 있지 않다. 그냥 오늘 하루는 배달 안 시켜 먹는 날로 정해서 플라스틱을 소비하지 않으면 그게 환경을 위한 일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으니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을 하면 좋겠다.

배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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