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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로 잡은 생선에서 플라스틱 덩어리가

등록 2022-08-09 08:57 수정 2022-08-10 00:36
1424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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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비긴’(Vegan Begin) 통권호(제1424·1425호)에 글을 싣고 싶다고 보내주신 독자들의 사연 가운데 일부를 싣습니다. _편집자

얼마 전, 위에 문제가 생겼다. 소화가 안돼서 뭘 먹지 못했다. 부모님은 걱정하시다가 결국 ‘그 말’을 꺼냈다. “네가 고기를 안 먹어서 그래.” 이상하게도 부모님은 내 모든 건강 문제를 비건 식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머리가 아파도, 속이 안 좋아도, 심지어 코로나19에 걸려도! 하지만 고기를 안 먹은 지 2년 정도 된 나는 지금까지 그로 인한 부작용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처음 비건을 접한 것은 2016년이다. 우연히 화장품 개발에 희생되는 동물 이야기를 읽었고, 이후 동물실험을 하는 화장품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화장품을 비건 제품으로 바꾸고 난 뒤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발, 가방, 옷에 들어간 가죽 등 세상에 비인간 동물을 착취해서 생산하는 제품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약품같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제외하고 내가 선택해서 구매할 수 있는 것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하기로 했다.

2016년 말 생활용품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했다. 당시 내가 후원하던 동물권 단체에서 브로슈어가 왔다. 여러 단계로 분류된 채식주의자에 관한 소개였다. 나는 생각보다 채식을 시작하는 게 어렵지 않겠다고 느꼈다. 폴로테리언은 붉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2017년 초, 폴로테리언부터 시작했다. 돼지, 소 등을 먹지 않으면 되니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고기는 닭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외식도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폴로테리언으로 몇 달을 보내다가 자연스럽게 페스카테리언으로 넘어갔다.

페스카테리언은 닭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다. 어패류까지 허용하는 채식 형태였다. 난 평생 페스카테리언으로 살 것 같았다. 육고기보다 어패류를 더 좋아했고, 특히 마른오징어에 맥주 마시는 걸 너무나 사랑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생선에서 나온 플라스틱 덩어리를 보고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가족은 서해에 사는 큰아버지가 직접 낚시해서 보내주신 생선으로 매운탕을 해먹었다. 나는 생선의 배 속에서 새끼손톱 크기의 무언가를 집었다. 당연히 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동그란 플라스틱 덩어리였다. 그 충격으로 나는 그날 이후 어패류도 안 먹게 됐다.

페스카테리언에서 락토오보를 거쳐 비건으로 가는 과정은 전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어패류를 안 먹으니 달걀과 우유가 점차 비려졌다. 완전 채식이 된 건 2019년 봄으로 기억한다. 폴로테리언에서 비건이 되기까지 약 2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9년은 지금보다 비건 제품군이 훨씬 적었다. 비건 식당은 대부분 서울 인사동, 이태원처럼 외국인이 많은 곳에나 존재했고 지방으로 여행을 가면 백반집에서 밥만 먹는 일도 많았다. 편의점에도 먹을 게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비건 하기에 아주 좋다. 여전히 비건 음식점은 서울에 집중돼 있지만, 큰 마트에 가면 비건 제품을 살 수 있고 카페에 두유나 오트밀 옵션도 많아졌다.

비건이 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최근 비거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채식 제품이 꾸준히 늘어나, 기쁜 마음으로 비거니즘을 실천하려 노력 중이다. 개인이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기후위기 대처법이 채식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실천하면 좋겠다.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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