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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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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묻는,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가 답하다

1973년 ‘동물권’ 논의를 촉발하고 40년 넘게 채식 중인
이론가 피터 싱어 인터뷰
등록 2022-08-09 08:29 수정 2022-08-10 00:36
피터 싱어 제공

피터 싱어 제공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저명한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76·사진)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스물일곱 살 때인 1973년 발표한 에세이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과 2년 뒤 출간한 같은 이름의 책은 ‘동물권’ 논의를 촉발했다. 그의 동물해방 이론은 “인간이 느끼는 정도의 쾌락과 고통을 동물도 느낀다면, 동물의 고통을 인간의 고통과 평등하게 고려해야(동물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한 육식, 동물실험 등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모든 종류의 착취에 반대한다.

그는 실천윤리와 동물해방 이론에 관해 다수의 저서를 냈고, 40년 넘게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그에겐 “현존하는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이고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뉴요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2021년 10월 동물해방과 관련한 에세이 9편을 모은 책 <왜 비건인가?>를 발간했다. <한겨레21>은 동물착취에 반대하는 비거니즘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그의 철학을 자세히 알기 위해 2022년 7월 그와 전자우편으로 인터뷰했다.

동물도 함께 포함된 ‘공리주의’

당신은 스물네 살 때 공장식 축산 실태를 알게 된 뒤 채식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채식을 하면서 겪는 기쁨과 어려움은 무엇인가.

“나는 고기가 없으면 기분이 더 좋아진다. 더 가볍고, 더 건강해지고, 소화도 잘된다. 게다가 나는 동물에도, 지구의 기후에도, 그리고 주변의 강과 공기에도 끔찍한 공장식 축산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점은 내 식단과 가치관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이와 별개로 새로운 요리법을 탐구하는 것이 즐거웠다. 1970년 내가 채식주의자가 됐을 때 대부분의 식당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외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그는 완전한 ‘비건’은 아니다. 그는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지지하고 싶지 않아서” 채식주의자가 됐다고 했다. 굴, 홍합 등 조개류는 중추신경계와 두뇌가 없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가능성이 매우 작으므로 가끔 먹는다. 자유 방목으로 키운 닭이 낳은 달걀도 가끔 먹는다. 그는 스스로를 ‘비건 지향’(Flexible Vegan)이라고 했다.

그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할 때 중요한 판단 기준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 여부다. 그의 동물권 사상이 ‘쾌락은 최대화하고 고통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동물권 옹호>(1983)의 저자 톰 리건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두 동등한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며 이익의 총량을 따지는 피터 싱어의 이론을 비판했고 두 사람의 논쟁은 동물권 논의의 지평을 넓혔다.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능력’(Sentience)이 도덕적 고려 대상인지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있나. 인간끼리는 서로 윤리적 행위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동물은 단지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윤리적 사유나 행동을 할 수 없는 동물에게 인간이 도덕적 고려를 할 필요와 의무가 있나.

“고통을 느끼는 능력은 이익을 평등하게 고려하는 기초(the basis for equal consideration of interests)가 된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인간 대부분은 윤리에 대해 생각하고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면 영유아나 심각한 인지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 대부분의 동물은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하지만 아마도 유인원이나 코끼리처럼 소수의 동물은 (윤리적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유아와 인지장애인을 평등한 고려의 범위에 포함하길 원한다면, 고통을 느끼지만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비인간 동물을 배제할 수 없다. 비인간 동물을 배제하는 건 종차별주의(Speciesism)일 것이다. 종차별주의는 단순히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인간은 우리 종의 일원이지만 동물은 우리 종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하는 것이다.”

1973년부터 2020년까지 피터 싱어가 동물해방에 관해 쓴 주요 에세이 모음집 <왜 비건인가?>.

1973년부터 2020년까지 피터 싱어가 동물해방에 관해 쓴 주요 에세이 모음집 <왜 비건인가?>.

종차별주의, 종 대신 인종으로 바꿔보라

‘종차별주의’는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며 인간의 이익이 동물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영국 철학자 리처드 라이더가 먼저 사용한 용어이며 피터 싱어에 의해 확산됐다. 피터 싱어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종’ 대신 ‘인종’으로 바꿔보라고 한다. 인종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건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윤리도 같은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만약 유전자조작 기술 발달로 닭이나 돼지 등 가축을 죽여도 고통을 느끼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동물을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나.

“먼저, 우리가 동물에 가하는 고통은 그들이 죽임을 당했을 때만이 아니라고 말하겠다. 나는 사실 동물이 공장식 농장에서 평생 겪는 고통을 훨씬 더 걱정한다. 공장식 농장은 동물을 되도록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하고 동물이 비참한 삶을 살도록 설계돼 있다. 하지만 만약 동물이 의식이 없고 전혀 고통받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은 양배추에 가까울 것이고, 그들은 우리가 해치는 데 이해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동물을 기르고 죽이고 먹는 것에 유일한 반대 이유는 환경이나 우리의 건강일 것이다.”

당신의 이론에 따르면 동물실험이 가져다주는 효용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 크면 이를 허용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 우리가 동물의 고통에 전적인 무게를 두고, 그것이 인간에게 가해지는 비슷한 고통보다 덜 중요하다고 취급하지 않는 한.”

그는 <동물해방>(1975)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해방운동이 우리에게 도덕적 시야를 확장하라고 요구할 때, 이전까지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고 여긴 행위가 정당화할 수 없는 편견으로 인한 결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인간이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논리에 젖어 다른 집단의 고통에 둔감해진다면 결국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의 사상이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윤리적 실천으로 이끌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효과 있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라

여전히 많은 사람이 고기를 먹으며 육식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는 공장식 축산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육식을 쉽게 끊지 못하는 이가 많다. 당신의 동물해방 이론이 사람들의 윤리적 실천을 유도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 아닐까.

“사람들이 여전히 고기를 먹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공장식 축산이 얼마나 나쁜지 잘 모르며, 그들은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더 윤리적으로 살도록 설득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디엑스이(DxE)* 같은 급진적인 비거니즘 운동이 비거니즘 실천 전략으로서 효과적이거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죄의식을 심어줘 오히려 채식에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람직한 동물해방운동 방식과 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연구단체 파우널리틱스(Faunalytics)가 최근 이 문제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이런 종류의 항의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이 동물복지 개혁을 지지하도록 이끄는 대신에 심지어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faunalytics.org/relative-effectiveness).

나는 사람들에게 공장식 축산과 윤리적 삶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동물해방을 위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식물성 고기나 동물세포로 배양한 대체육 개발을 촉진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그 연구를 보고 가장 효과가 있을 것 같은 방법을 스스로 결정하라고 권한다.”

2020년부터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대유행은 인간의 무절제한 육식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피터 싱어는 저서 <왜 비건인가?>에서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더 큰 위협을 피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우한의 웨트 마켓(Wet Market·야생동물, 해산물 등을 판매하는 시장)은 동물에게는 지옥이며 인간에게는 심각한 보건 위협이다. 서양인은 중국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 살펴봐야 한다. …야생동물에서 오는 것이든 공장식 축사에서 오는 것이든 육류에서 벗어나야만 코로나19를 능가할 또 다른 팬데믹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에게 동물해방은 인간이 행복해지는 인간해방의 길이기도 하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DxE(Direct Action Everywhere)는 미국의 동물권 보호단체로 영업 중인 가게에 들어가 방해 시위를 하는 등 급진적 운동방식을 펼친다. 국내에도 한국지부가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동물권 포함한 논쟁적 아이디어

피터 싱어는 2021년부터 동료 학자들과 학술지 <논쟁적 아이디어>를 발간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학술지에는 퀴어 이론, 창조론, 젠더 등 ‘뜨거운’ 이슈를 다룬 글이 실린다. 그는 학술지 누리집의 소개글에서 “이 학술지가 진실에 가까워지고 지식을 발전시키며 사회문화 패러다임을 개혁하는 수단으로, 논란을 포용하는 가치를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학술지는 민간 기부로 운영되며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볼 수 있다.

그는 <한겨레21>에 “너무 많은 사람이 논쟁적 견해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공격받고 학대당하고 협박을 받았다. 그래서 작가들이 원하면 가명으로 출판할 수 있고 엄격하게 동료들이 평가하는 저널을 만들고 싶었다. 존 스튜어트 밀이 그의 에세이 ‘자유’에서 말한 모든 이유 때문에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논쟁적 아이디어’ 학술지 누리집: journalofcontroversialidea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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