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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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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최고”란 아이들도 “채식급식 맛있어요”

주 1회 페스코 채식하는 인천창영초, ‘보통 이상’ 평가 99%
인천 영양교사들 ‘기후위기·환경재난’ 지도안 만들어 교육
등록 2022-08-05 06:47 수정 2022-08-05 23:58
2022년 7월12일 인천창영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채식급식을 배식받고 있다. 인천시교육청의 채식급식 만족도 조사에서 창영초 같은 채식선도학교의 경우 학생·학부모·교직원 83%가 급식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7월12일 인천창영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채식급식을 배식받고 있다. 인천시교육청의 채식급식 만족도 조사에서 창영초 같은 채식선도학교의 경우 학생·학부모·교직원 83%가 급식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중구 동인천역에 내려 구도심 길을 15분 남짓 올라가면 한눈에 봐도 역사가 오래돼 보이는 초등학교가 하나 나온다. 1907년 지어진 인천창영초등학교다. 그간 ‘인천 3·1운동 발상지’ 등의 수식어로 불렸던 이 학교에 최근 또 다른 별칭이 붙었다. 주 1회 고기 없는 식단을 운영하는 ‘채식선도학교’다.

인천광역시교육청은 ‘2050 탄소중립’이 국가 의제가 되면서 탄소 절감을 위해 학교들이 월 2회 이상 채식급식을 운영하도록 했다. 그 가운데도 채식선도학교로 지정된 인천창영초는 주 1회 페스코 식단을 운영한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아직 실감하기 어려운, 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고기 없는 날’이 혹시 ‘학교 가기 싫은 날’이 된 것은 아닐까 궁금했다. 2022년 7월12일 인천창영초를 직접 찾아간 이유다.

인천창영초등학교 학생들이 채식급식을 먹고 있다.

인천창영초등학교 학생들이 채식급식을 먹고 있다.

테마가 있는 채식급식날

“급식 반찬 중에 뭐 나오는 날이 제일 좋아요?”(기자)

“고기요!”(진호)

“무슨 고기요?”(기자)

“돼지고기요!”(진호)

길쭉한 급식실 식탁 한가운데 앉은 1학년 진호가 얼큰수제비국에 쌀밥을 말아 한 숟가락 듬뿍 뜨면서 말했다. 이날 진호의 식판에는 고기반찬 대신 얼큰수제비, 삼치살엿장구이, 청경채나물무침, 깍두기, 망고수박이 자리잡았다. 자신의 키를 “한 200 정도”라고 소개한 진호는 덩치가 커서 언뜻 보면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보였다. 진호는 “고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 고기가 없어서 싫겠다, 맛없겠다’고 기자가 물어보는 유도신문에는 넘어오지 않았다. “오늘 생선 맛있어요. 국물도 맛있고요.”

3학년 준수도 “제일 좋아하는 반찬은 소고기”라면서도 “채식급식날이 싫지 않냐”는 질문에는 “그 정도는 아닌데요”라고 대꾸했다. 6학년 연희는 “채식급식날도 맛있다”며 “저번에 떡볶이랑 김말이튀김이 나왔는데 되게 맛있었다”고 말했다.

학교 급식실 입구 자유게시판은 “뿌링클 치킨 주세요” 등 아이들이 쓴 글귀로 가득했다. 하지만 실제 대화를 나눠본 아이들은 달랐다. 일부러 영양교사가 없는 자리에서 무작위로 아이들에게 물었는데, “채식급식날이 싫지 않냐”는 질문을 받은 15명 가운데 2명만 ‘잘 모르겠다’고 했고, 나머지는 모두 채식급식이 맛있거나 괜찮다고 답했다.

인천창영초가 2022년 5월 학생 138명에게 한 ‘급식 만족도’ 조사를 보면, 급식에 ‘만족한다’(67%)를 포함해 ‘보통 이상’이라는 평가가 99%를 차지했다. 정혜정 영양교사가 내민 식단표를 살펴보니 이해가 갔다. 6월2일에는 감잣국에 잡채·두부볼떡조림·체리가 나왔다. 6월16일엔 로제소스떡볶이에 하트만두구이·연근튀김·포도젤리가, 6월23일엔 새우아욱국에 아귀살꿀강정·치즈볼핫도그·카레라이스가 나왔다. 정 영양교사는 “아이들이 (채식급식날이) 맛없는 날이라고 느낄까봐 과일 하나라도 좀 특별하게 하거나, 테마가 있는 요리를 해 친숙하게 느끼도록 한다. 지난번엔 치자(치킨·피자를 합친 한 프랜차이즈 식당 메뉴)를 따라 요리했는데, (치킨과 피자가) ‘두부 텐더’로 만든 요리라니까 아이들이 놀랐다”고 말했다.

채식선도학교에선 한 학기에 1∼2회 식생활과 관련한 환경 교육을 한다. 교육받은 아이들에게서 채식급식 만족도가 더 크게 나타났다. 인천시교육청이 2021년 9월 학생·학부모·교직원 1만7805명에게 한 채식급식 만족도 조사를 보면, 채식선도학교에 다닐 경우 83%가 만족한다고 했지만, 일반 학교에서는 68%만 만족했다.

창영초가 주 1회 운영하는 페스코 식단 메뉴들.

창영초가 주 1회 운영하는 페스코 식단 메뉴들.

주 1회 채식=소나무 15그루

실제 인천창영초에서 만난 아이들 가운데 고학년 학생은 지나친 육식이 낳은 공장식 축산업, 화전 개간, 온실가스 배출 등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인식하면서 채식 식단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히 아이들이 환경 교육 시간에 직접 짠 식단을 실제 점심 메뉴로도 제공했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다. 2022년 7월7일에는 5학년 고윤서 학생이 짠 ‘후리가케밥·메추리알치즈떡볶이·오징어김말이튀김’이, 7월21일에는 5학년 이유림 학생이 짠 ‘현미밥·두부된장찌개·치즈쭈낙볶음·메추리알장조림’이 식단에 반영됐다.

학교 채식급식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오해가 뒤섞이곤 한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게 하는 것은 학대 아니냐’ ‘영양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냐’ 등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 영양교사는 “현재 학교에서 시행하는 채식급식은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지 마라, 채식하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기후위기를 위해 고기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수준”이라며 “주 1회일 뿐이고, 페스코 채식 식단은 고기 말고 다른 식재료로 단백질 등 영양소를 채우게 구성돼 영양적으로도 문제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고작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채식급식이 지구에 큰 도움이 되는 걸까. 인천시교육청 체육건강교육과 배윤주 장학사는 “그렇다”고 말한다. 배 장학사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 결과를 보면, 한 사람이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끼 채식을 먹으면, 15그루의 소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탄소 감축 현상이 일어난다. 인천만 해도 31만 명의 학생이 있는데, 일주일에 한 끼씩 채식한다면 1년이면 나무 465만 그루를 심는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단순히 지구가 위험하다고 하면

인천시교육청이 연간 1천만원 예산을 지원하는 채식선도학교는 현재 초중고 합쳐 11곳이다. 교육청은 향후 채식선도학교 규모와 급식 제공 빈도를 늘릴 계획이다. 인천만이 아니다. 울산, 광주, 충남, 전남, 전북, 부산 등 다수 교육청이 채식급식을 권장 운영하고 있다. 2020년 7월 환경부와 전국 시도교육감은 ‘기후위기·환경재난시대, 학교환경교육 비상선언’을 발표했다. 비상선언문에는 학생의 환경학습권 보장, 학교에서 실천 가능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2022년 3월6일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에 월 2회씩 권장하던 채식급식을 2024년에는 월 3∼4회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이 채식 식단을 선택할 수 있게 샐러드 등 채식 요리 1∼2가지를 추가로 제공하는 자율배식대 ‘그린급식 바’도 서울 76개 학교에 설치한다고 밝혔다.

현장에선 당황하는 목소리도 있다. 인천축현초등학교의 석혜성 영양교사는 “단순히 아이들한테 ‘지구가 위험해, 채소를 먹어야 해’라고 하면 채식급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기에 맞는 교수학습 지도안을 짜야 하는데, 영양교사는 그동안 수업한 게 아니라 영양 문제를 책임지는 비교과 영역을 맡아왔기 때문에 지도안을 짜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2022년 개정된 교육과정에 환경 교육이 의무 사항으로 명시되고, 학교들이 연간 1∼3차례 식생활과 관련한 환경 교육을 하게 된 건 바람직하지만, 현장 교사들의 막막함을 해소할 교수학습 지도안 마련 등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인천시교육청은 영양교사 학습모임 ‘영미영미’와 손을 잡았다. ‘영미영미’ 회장 석혜성 영양교사는 모임의 동료 교사들과 함께 2021년 ‘햄버거 커넥션’ ‘북극곰 이야기’ ‘시골쥐와 도시쥐’ 등 학년별 지도안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배부했다. 영양교사들이 참고할 수 있게 수업 시연 영상까지 만들어 유튜브 채널 <인천 영양TV>에 올렸다. 배윤주 장학사는 “이제는 소문이 나 전국 여러 학교에서 자료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 채식급식, 함께할 이야기

취재가 마무리될 즈음, 동행했던 윤권구 인천시교육청 체육건강교육과 과장이 “사실 제가 아이러니한 상황에 있다”며 수줍게 이야기를 꺼냈다. 윤 과장은 “저는 농사꾼의 아들인데 시골에서 형님이 젖소를 키우신다. 전에 시골 가서 눈치 없이 채식급식 얘기를 꺼내니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걱정은 든다. 소·돼지·닭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그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과거 정부에서 싼 이자로 축산업을 하라고 얼마나 장려했나. 지금 농촌 가보면 낮은 단가에 힘들어하면서 ‘다 가져가고 빚만 탕감해주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학교급식 시장에서 ‘채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릴수록, 반대편에는 마음을 졸이는 축산업자가 있다.

학교는 학교의 일을 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환경문제를 인식시키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학교의 몫이다. 하지만 학교가 자기 몫을 계속해나가려면, 또 다른 축의 변화도 필요하다. 배윤주 장학사는 “우리가 우려하는 건 그냥 축산업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업이다. 그 시스템이 바뀔 때까지 그분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정부 몫”이라고 말했다.

인천=글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울산 학교들만 매일 대체식 제공”

확산되는 채식급식, 남은 과제는

학교 채식급식은 점차 확산 중이다. 2020년 10월 울산을 시작으로 충북이 2021년 3월부터, 서울이 2021년 4월부터 채식급식을 한 달에 1~2회씩 시행한다. 인천시교육청은 2021년 3월부터 관내 초중고교에서 월 2회 페스코 채식급식을 한다.

하지만 채식선택권의 실질적 보장은 아직이다. 2021년 말 울산시교육청 조사에서 관내 246개교 가운데 30%가 채식 학생에게 대체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전교생 대상으로 간헐적 페스코 채식을 하는 다른 교육청과 달리, 울산은 채식 학생에게 매일 온전한 대체식을 제공한다. 이런 곳은 울산이 유일하다. 서울시교육청이 별도 채식 반찬을 둔 ‘그린급식 바’를 늘려가지만, 다른 지역에서 채식 학생은 여전히 밥과 반찬을 고르거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채식연합 등이 꾸린 채식급식시민연대는 2021년 6월 채식 학생, 학부모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채식선택권 보장 진정을 냈다. 이들은 채식선택권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건강권,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등과 결부된 주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2022년 1월 “각 시도교육청이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일단 지켜보자는 취지였다.

법률대리를 맡은 지현영 변호사(법무법인 지평·사진)는 2022년 7월6일 <한겨레21>과 만나 “채식선택권은 취향이 아닌 신념의 문제”라며 “1년 이상 채식을 이어온 진정인 중에 한 중학생은 치킨을 먹으며 자신을 놀리는 가족에게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처음엔 장난으로 대하던 부모도 아이가 진지하니 존중하는 마음으로 지지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념을 가진 이들이 건강이나 영양 관점에서 식단을 보장받는 일이 필요하다. 권리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 변호사는 울산 사례를 강조했다. 그는 울산시교육청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취지를 잘 설명해 별다른 반발도 없었고 비건 인구도 소수여서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았다”며 “체질이나 다문화, 종교 등의 이유로도 채식선택권 보장은 필요하다. 교육감이나 학교장의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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