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24일 ‘페스카테리언’ 한 달 체험을 결심했다. 별다른 뜻은 없었다. 채식주의자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하는데, 추상적이고 막연한 불쾌함만 떠올랐다. ‘채식 식당을 찾는 게 어렵겠지,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겠지, 가족과 따로 반찬을 먹으려면 번거롭겠지.’ 그런데 이런 예측 가능한 불쾌함이 전부일 것 같진 않았다. 채식하는 일상에서 가장 불쾌한 건 뭘까. 무엇이 가장 견디기 어려울까.
6월25일 아침에 눈 뜨며 생각했다. ‘오늘부터 고기를 절대 먹으면 안 돼.’ 하지만 특정 음식을 먹지 말자는 다짐을 떠올릴수록, 먹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렬해졌다. 숯불치킨, 족발, 곱창 같은 것들.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떠들었다. “체험 끝나면 바로 치킨부터 시켜 먹어야지. 그래도 동물복지 치킨으로 시켜야겠어.”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뭔가 진짜 비건 체험이 아닌 것 같은데. 비건 흉내 체험이 될진 몰라도.’
내게는 내적 동기가 부족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고기를 끊으려면 강력한 동기가 필요한데, 본 것도 아는 것도 없었다. 우선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인위적으로 동기를 주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시동을 건 것은 <나의 비거니즘 만화>. 그때 처음 알았다. 닭은 태어나자마자 부리가 잘리고,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분쇄기로 내려간다는 것을. 피터 싱어의 책 <왜 비건인가?>를 읽었다. 다큐멘터리 <도미니언>을 켰다가 놀라서 껐다. 일상이 조금씩 불쾌해졌다. 진짜 비건 체험이 시작됐다.
도전 첫날 저녁, 시부모님은 가족을 위해 소고기를 준비했다. “그냥 딱 한 입만 먹고 내일부터 시작해.” 어머님의 정성을 거절하지 못한 나는 결국, 소고기 한 점을 입에 물었다. 그 맛은? 솔직히 맛있었다. 그것도 아주 맛있었다. “아, 어머님 진짜 맛있네요. 어차피 망한 것” 하면서 또 한 점 고기를 물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첫입은 분명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는데, 두 번째는 찜찜했다. 고기를 씹는 시간이 ‘오물오물’에서 ‘오물오물오물오물’로 길어졌다. 이어 ‘오물오물오물오물’의 느낌이 이번엔 ‘질겅질겅질겅질겅’으로 변했다. ‘설마 나 지금 역겹다고 느낀 건가.’ 조용히 화장실에 들어가 휴지에 고기를 뱉었다. 고기를 씹는데 동물의 피부가 생각났다. 확 짜증이 났다. 마음 편하게 고기를 못 먹는 게 억울하게 느껴졌다.
남편과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며 말했다. “예전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닭 사서 애들 자주 구워주고 했잖아. 그게 사실 어린 새를 잔인하게 키워서, 잔인하게 죽여 먹는 거네?” 운전하던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인데, 너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할걸. 뭘 하면 다 죄인처럼 느껴질 텐데.”
정말 그랬다. 우유를 너무 좋아해 ‘페스코’에 도전했지만, 카페에 가도 그 좋아하는 라테를 거의 시킬 수 없었다. 계산대 앞에 서면 자꾸만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속 여자들이 떠올랐다. 끊임없이 임신하고 젖 짜는 기계를 달아, 사람들에게 젖을 공급하는 여성들. 이전에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소를 계속 임신시켜야 젖이 생기고, 송아지를 어미소와 분리해야 그 우유를 뺏을 수 있다는 것. 소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지 않아도 젖이 나오는 신비의 동물쯤으로 생각했던 걸까. 우유를 먹으려 냉장고 문을 열다가도 죄책감, 짜증이 밀려왔다. 피터 싱어에게 묻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나는 뭘 그렇게 잘못한 게 맞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을 윤리적으로 포장하고 싶어 한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 굉장히 불쾌했다. 사람들이 비건을 불편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설사 가치관을 강요하는 교조적 비건이 아니더라도, 내 앞에 비건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하다. 개고기를 비판한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전 국민이 분노했던 것처럼, 나는 나를 야만적이고 ‘비윤리적’ 인간으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피터 싱어는 직시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지. 바꿀 방법이 있는데 바꾸지 않는 게 아닌지. 극단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 동물의 고통보다 ‘동물복지 달걀’로 더 내야 할 돈 몇천원이 아까웠다. 단백질은 고기에만 있는 게 아님을 알면서, 나 즐겁자고 누구보다 자주 고기를 먹었다. 이건 비단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자세’에 대한 얘기이기도 했다. 지금 커피 한 잔 사서 마실 돈으로, 굶주린 어느 아이를 도울 수 있다. 도울 수 있으면서 ‘자선단체가 가로챌까 우려된다’는 핑계를 댄다. 과거 미국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할 수 없는 이유’로 ‘미국 남부 경제가 우려된다’는 핑계를 댔던 것처럼.
페스코 체험을 끝내기로 한 7월27일 인터넷 창을 열고 검색했다. ‘채식하는 상어’. 만일 세상에 채식하는 상어가 있다면 나도 언젠가 채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페스코 체험을 하는 한 달 동안, 나는 내가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채식을 선언한 상어’ 같다고 느꼈다. 물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피 냄새만 맡으면 언제든 흥분할 준비가 돼 있는. ‘채식하는 상어’를 보고 웃던 딸이 물었다. “엄마, 근데 왜 고기 안 먹어?” 문득 얼마 전 ‘내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냥 내 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안 좋은 것 보지 말고 좋은 것만 보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는 내 딸에게 이 불쾌한 감정을 알려줘야 할까. 알려줘야 한다면, 언제 어디까지 알려줘야 할까. 세상 어딘가의 고통 없이,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식단이 만들어졌다고 믿게 해줘야 할까. 딸의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렸다.
글·사진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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