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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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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낸다고 벤 40살 왕벚 살리는 제주 할망들

도로확장 공사하면서 잘린 왕벚나무 챙겨 심는 제성마을 할망들,
‘개발’ 목표 정하고 밀어붙이는 당국과 곳곳에서 마찰음
등록 2022-06-13 14:56 수정 2022-08-03 07:52
2022년 5월17일 제주 제성마을 왕벚나무 아래에서 (왼쪽부터)이순실, 권진옥, 송순희 ‘삼춘’을 만났다. 원래 이 마을 입구에는 40년 전 주민들이 심은 왕벚나무 14그루가 있었지만, 최근 제주시가 찻길을 넓힌다며 예고 없이 12그루를 베었다.

2022년 5월17일 제주 제성마을 왕벚나무 아래에서 (왼쪽부터)이순실, 권진옥, 송순희 ‘삼춘’을 만났다. 원래 이 마을 입구에는 40년 전 주민들이 심은 왕벚나무 14그루가 있었지만, 최근 제주시가 찻길을 넓힌다며 예고 없이 12그루를 베었다.

제주시 연동 제성마을의 마을회관 화단에 옮겨 심은 나무뿌리 조각에서 어느새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제주시가 도로를 넓힌다며 베어낸 마을 입구 왕벚나무에서 뜯겨진 뿌리 조각입니다. ‘삼춘’(제주말로 이웃어른)들은 이 어린 새싹 주위로 벽돌 울타리를 세웠습니다. 매일 물도 줍니다. 2022년 5월17일 권진옥(88) 삼춘이 수도에서 물을 길어 뿌려주고,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았습니다.

# 2020~2022년

두 달 전인 3월15일 오전 9시였습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굴착기가 제성마을 입구 서쪽의 왕벚나무 7그루와 동쪽의 2그루를 차례로 쓰러뜨렸습니다. 제주시가 도심 교통혼잡을 해결하려고 제성마을 앞 우회로를 확장하는 공사를 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시끄러운 소음에 놀라 집 밖으로 나온 권진옥 삼춘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짜개지는 것 같아요. 여기가 한 다섯 번 짜개지는 거 같아요. 성냥개비인 양 와자작와자작 찢어서 쓰러뜨리는데,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엉엉 울기만 하고. 18년 전 죽은 남편 대신에 왕벚나무들 바라보고 살았는데. 꽃 피면 위안이 되고 해서 올해도 기다렸는데.” 권 삼춘은 “눈물이 자꾸 쏟아진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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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 방지 약속해놓고 1년7개월 만에

왕벚나무를 각별히 여기는 마을 주민은 권 삼춘만이 아닙니다. ‘제주의 별’이라는 뜻의 제성마을은 40여 년 전 제주공항을 확장하느라 철거된 몰래물(모래에서 나는 샘물이라는 뜻)마을에서 이주한 이들이 뿌리내린 터전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돌을 깨고 짊어지며 터전을 일궜습니다. 왕벚나무도 한라산에서 한 그루 한 그루 묘목을 구해와 주민들이 직접 심었습니다. 권 삼춘의 남편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 뒤 왕벚나무 14그루가 40년 넘게 마을 입구를 지켰습니다. 왕벚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닙니다. 힘든 시절을 함께 버텨온, 마을 사람들 마음속 ‘별’입니다.

왕벚나무가 베어진 것은 그날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20년 8월에도 시청이 말도 없이 3그루를 베었습니다. 그때도 도로 확장이 이유였습니다. 주민들이 항의하자 시청 담당 직원이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1년7개월 만에 또다시 9그루를 밀어버렸습니다. 굴착기가 나무를 쓰러뜨린 다음날, 권 삼춘 등 마을 사람 넷이 제주시청을 찾아가 시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제주시 소유의 찻길에 심은 나무이니, 주민 동의와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는 법도 조례도 없기 때문입니다.

삼춘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왕벚나무의 찢긴 조각을 모아다가 화분에 꺾꽂이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화분 100여 개를 만들었습니다. 마을 밖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팔구십 먹은 삼춘들이 자발적으로 한 일입니다. 식목일인 4월5일 삼춘들은 제주의 예술인과 시민사회단체에도 화분을 나눠줬습니다. 이때부터 제주 시민사회도 제성마을의 왕벚나무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지역 예술인들은 ‘낭싱그레가게2’라는 모임을 만들어, 삼춘들의 호소에 힘을 보탰습니다. ‘낭싱그레가게’는 제주말로 ‘나무(낭) 심으러(싱그레) 가자(가게)’라는 뜻입니다. 2019년 제주도가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삼나무 수백 그루를 베어내자 이에 항의해 나무를 지키려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 ‘낭싱그레가게1’이 만들어졌는데, 제성마을 왕벚나무 때문에 후속 모임이 생겨난 셈입니다.

권진옥 삼춘이 ‘어린 새싹’에 물을 주던 5월17일 오전, 제주시청 앞에서는 ‘제성마을 왕벚나무 무단벌목 규탄집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집회에서 권 삼춘이 챙겨준 곡괭이와 삽을 이불과 옷가지에 둘둘 싸서 형상화한 <나무> 작품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 행위예술극을 고승욱 작가가 보여줬습니다. “(1980년대 초반) 몰래물마을이 찢어지면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상하수도도 없는 제성마을로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뿌리 잘린 나무를 짊어지고 쫓겨나는 철거민을 떠올렸습니다. 제성마을은 제주 개발 역사가 응집된 상징적인 마을입니다. 왕벚나무 사건 전에 이 마을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은 것 자체가 제주도의 비극인 것 같습니다.” 고 작가는 “삼춘들의 얘길 듣고는 안 도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삼춘들이 살아온 얘기, 제성마을의 역사는 이랬습니다.

제성마을 입구 동쪽. 두 달 전 찻길을 넓힌다며 제주시가 왕벚나무 9그루를 베어낸 자리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

제성마을 입구 동쪽. 두 달 전 찻길을 넓힌다며 제주시가 왕벚나무 9그루를 베어낸 자리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

# 1981~1985년

서울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에 제주도 몰래물마을(사수동·沙水洞)로 시집온 권진옥 삼춘이 제성마을로 이주한 건 1981년입니다. 그때는 ‘마을’이 아니라 그냥 ‘터’였습니다. 여기서 뭘 해먹고 사나 막막해서 가슴이 턱 막혔다고 권 삼춘은 기억합니다.

알뜨르에서 쫓겨나 우뜨르에 마을 만들어

제주시는 1979년 늘어나는 관광객 수요에 발맞춰 제주공항 제3차 확장공사를 하겠다며 공항 근처 몰래물마을 철거를 발표합니다. 이주 대책 같은 건 없었습니다. 몰래물마을 사람들은 가깝지만 땅값이 싼 곳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제성마을을 포함해 인근 마을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지금의 제성마을 터는 허허벌판에다 기반시설이 전혀 없었습니다. 제성마을이라는 이름도 주민들이 알아서 지었습니다. 흘천(한라산에서 북쪽으로 제주공항을 지나 사수항으로 흐르는 하천) 쪽으로 하수도를 내고 해태동산(현 도령모루) 쪽에서 상수도를 끌어오는 일을 정부가 아닌 주민들이 직접 했습니다. 남자들이 곡괭이로 돌을 깨고, 여자들이 깨진 돌을 짊어지고 날랐습니다.

마을회관 표지석에는 ‘1981년 5월부터 주민들이 협동해 마을 내 하수도와 수도를 직접 설치했으며, 8월부터 16가구 주택을 건축해 1982년 1월 입주해 마을 명칭을 제성마을(고 오승영 작명)로 하고 마을을 이루었다’고 그때의 일이 기록돼 있습니다. 1992년 작고한 오승영씨는 왕벚나무를 심자고 처음 제안한 제성마을 초대 이장입니다. 그의 딸인 오면신(65)씨는 ‘제성마을 왕벚나무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1982년 제성마을에 정착한 양화옥(87) 삼춘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자물쇠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조선인 차별이 점차 심해지던 1944년, 소학교 3학년 양화옥은 아버지를 따라 제주로 귀향했습니다. 권 삼춘처럼 몰래물마을에서 쫓겨난 양 삼춘 가족은 1979년 신성마을로 이주했다가 3년 뒤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양 삼춘의 남편, 오승영 초대 이장 등 마을 사람들이 1982~1985년 왕벚나무를 심었습니다. 한라산에서 어른 손목 굵기의 어린 묘목을 손수 구해왔습니다. 한라산 쪽을 바라보는 마을 입구에 울타리 치듯이 서쪽에 7그루, 동쪽에 7그루를 심었습니다. 요양원에 있는 송순희(82) 삼춘의 남편도 동쪽에 2그루를 직접 심었습니다. 제주 토박이 송 삼춘 가족은 1985년 몰래물마을에서 제성마을로 이주했습니다.

“거기 알뜨르에서 살다가 여기 아무것도 없는 우뜨르로 옮겨가야 해서 다들 막막해했어요. 남편이랑 마을 사람들이 ‘사람 사는 데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며 한라산에 가서 묘목을 구해와서 심었지요. 어렵게 살 때, 아무것도 없을 때 (왕벚나무들이) 우리랑 같이 자랐어요. 그렇게 힘들 때 기념목이고 추억인데…. (나무를 벨 때) 그러니 내 몸이 잘려나가는 것 같지 않겠어요.” 송 삼춘은 말합니다. 알뜨르는 ‘아랫들’이란 뜻으로 비교적 물자가 넉넉한 바닷가 쪽을, 우뜨르는 ‘윗들’이란 뜻으로 바닷가에서 떨어진 내륙 지역을 말합니다. 송 삼춘은 아직 남편에게 왕벚나무가 베어진 사실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2022년 5월17일 오전 제주시청 앞에서 ‘무단벌목 왕벚나무 12그루 살려내라’ 2차 집회가 열린 가운데, ‘낭싱그레가게2’에 참여한 예술인들이 공연하고 있다.

2022년 5월17일 오전 제주시청 앞에서 ‘무단벌목 왕벚나무 12그루 살려내라’ 2차 집회가 열린 가운데, ‘낭싱그레가게2’에 참여한 예술인들이 공연하고 있다.

도시계획과장 “극소수 주민만 민원 제기”

몰래물마을 옆 흘캐(흘천 하구 바닷가) 마을의 해녀였던 이순실(95) 삼춘도 1985년 제성마을로 이주했습니다. 이 삼춘은 1960~1970년대 제주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고향땅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지켜봤습니다. 몰래물마을은 흘천을 따라 떠내려온 온갖 오물로 더럽혀졌습니다. “과거 흘캐에는 용출수가 한 말씩 솟아났어요. 물이 좋아서 몰래물 사람들도 흘캐로 물을 뜨러 왔어요. 그런데 (개발이 시작되고) 어느 날 샘에서 똥이 둥둥 떠올랐지요. 비행장이 확장되고 비행기 소음까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제성마을로 왔어요.”

# 2022년

40여 년 전에 왕벚나무를 함께 심었던 주민 가운데 현재 생존한 주민은 권 삼춘을 포함해 2명뿐입니다. “집 앞뜰의 풀이나 작은 나무를 하나 베려고 해도 몇 번을 벨까 말까, 다른 곳에 옮겨 심을까 고민해요. 그런데 40살 넘은 나무를 자르면서 주민한테 어떻게 아무 상의도 안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주민을 무시할 수 있나요.” 양화옥 삼춘은 “(죽은 남편이) 왕벚나무 벤 걸 알면 얼마나 억울해하겠냐”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춘들은 제주시장의 사과, 그간의 과정에 대한 설명, 같은 수종과 수령의 나무를 심는 것 등 세 가지를 시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5월13일 시장과 주민들이 면담했지만, 시장은 사과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김형태 제주시 도시계획과장은 “이번 벌목은 도시계획에 따른 것이다. 노형오거리가 극심한 교통혼잡을 겪고 있어 우회도로를 선정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왕벚나무들이) 도로 확장에 저촉돼서 철거나 이설을 검토했지만, 이설이 어렵다고 해서 철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마을 통장을 통해서 주민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극소수 주민만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당시 제성마을 통장도 “2021년 5~6월께 마을 주민 30여 명과 함께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면신 대책위원장은 “마을에 100가구가 넘는데 1년 전에 30여 명이 설명을 들었다고 해서 그걸 주민 의견수렴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박합니다. 최근 제주시는 남아 있는 왕벚나무 2그루마저 베어내려 했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만들겠다는 이유였습니다. 오 위원장은 “나무를 안 잘라도 공간은 충분하다고 공무원을 겨우 설득했다. 한라산에 가면 나무가 많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나무 하나 베는 걸 너무 쉽게 여기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5월30일 제성마을에서 40㎞가량 떨어진 비자림로에서 공사가 재개됐습니다. 제성마을 앞처럼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입니다. 제성마을 왕벚나무를 지키기 위한 시민모임 ‘낭싱그레가게2’의 전신 격인 ‘낭싱그레가게1’은 비자림로 확장 공사에 반대하려 꾸린 모임이었습니다. “낭싱그레가게가 또 꾸려진 건 제성마을에서 비자림로 벌목 때하고 똑같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에요. 먼저 저질러놓고 보는 거예요. 자연환경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나 연구도 없이, 아름다운 나무와 길을 훼손하는 거죠. 자동차 대수에 맞춰 나무를 베는 게 아니라,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를 줄여야 해요.” ‘제성마을 왕벚마을 무단벌목 규탄집회’를 주최한 안혜경 전시기획자의 말입니다.

제주시 동부와 시내를 잇는 비자림로는 2차선 도로입니다. 2018년 6월 도로를 4차선으로 넓히는 공사를 시작했다가, 삼나무 1천 그루를 베는 모습에 비판 여론이 들끓자 공사가 중단됐습니다. 2019년 3월 공사가 재개됐지만, 팔색조·애기뿔소똥구리 등 멸종위기 동식물이 무더기로 발견돼 공사는 다시 중단됐습니다. 제주도 쪽은 멸종위기종을 위한 대체서식지 확보 등 환경부와의 협의가 끝났기에 공사를 재개했다고 밝혔습니다.

공사 멈춘 사이 비자림에는 어린나무와 풀들이

공사 재개 사흘 뒤인 6월2일 찾은 비자림로에는 공사가 멈춘 3년간 2~3m 높이로 자란 어린나무와 풀로 가득했습니다. 숲의 복원력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공사가 재개되면서 숲 한쪽에 갈아엎은 흙 사이로 나무뿌리가 여기저기 드러나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달아맨 ‘모두의 숲이에요’ 같은 글귀가 적힌 천 조각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에서 활동하는 황용운씨는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정부나 제주도는 ‘개발’이라는 답을 정해놓고 그냥 밀어붙입니다. 교수들이 대체서식지에서 동식물이 살 수 없다는 연구결과를 설명하고 언론이 비판해도, 도로를 넓힌다는 목표는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 제주도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미친 짓입니다.”

제주=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제주말의 어원과 뜻에 대해서는 고광민 제주 민속학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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