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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뉴스] 대구·경북―“거점 공공병원이 있었다면”

코로나19 의료공백으로 숨진 정유엽군 2주기 앞둔 아버지 인터뷰
등록 2022-02-02 15:23 수정 2022-02-03 11:22
2021년 2월 경북 경산시 경산중앙병원 앞에서 고 정유엽군의 아버지 정성재(가운데)씨가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2021년 2월 경북 경산시 경산중앙병원 앞에서 고 정유엽군의 아버지 정성재(가운데)씨가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건강하던 아이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다가 죽었어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까봐 물러설 수 없습니다. 작게는 유엽이의 사망 진상이 규명되고 대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거시적으로는 국가의 의료제도가 재편돼야 합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어야죠.”

고 정유엽(사망 당시 17살)군의 아버지 정성재(55)씨는 2022년 1월14일 경북 경산시의 집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군은 2020년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숨졌습니다. 정씨 가족은 지금도 아들의 죽음이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대량으로 사다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2022년 3월18일 정군의 2주기를 앞두고 정씨와 ‘코로나19 의료공백으로 인한 정유엽 사망 대책위원회’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상 조사와 공공병원 확충’ 요구

2020년 3월 코로나19 1차 유행이 시작된 대구와 경북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자 정부는 ‘마스크 5부제’를 시행했습니다.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뒤늦게 코로나19 확진자로 드러나 대학병원 응급실이 연쇄적으로 폐쇄되는 일도 있었죠. 3월10일 정군도 요일별로 구매 가능한 ‘공적 마스크’를 사려 약국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정군은 열이 올랐고, 정씨 가족은 ‘감기 증상이 있으면 집에서 쉬면서 지켜보라’는 정부 말을 따랐습니다. 이틀 뒤 열이 40도 넘어 경산중앙병원 선별진료소를 찾았지만 이미 문을 닫은 뒤였습니다. 코로나19 감염자로 의심돼 응급실 입원도 거부당했습니다. 3월13일 다시 병원을 찾아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그날 오후 겨우 대구 영남대병원 응급실에 입원했습니다. 그러나 정군은 닷새 뒤인 18일 급성폐렴 증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19 4차 유행까지 겪었고 오미크론발 5차 유행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병상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재택치료 카드를 꺼내 들었고, 여전히 병상을 기다리다 숨지는 중증환자도 있습니다.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돼 일반 환자를 내보내야 하자 당장 병원을 옮겨야 하는 환자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경북 상주시에서는 종합병원 한 곳이 코로나19 거점 병원을 신청하자 지자체가 의료공백을 우려하며 철회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정씨는 아들이 숨진 지 1년7개월 만인 202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처음으로 정부의 사과를 들었는데요. 당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복지부와 협의해서 코로나19 이외의 환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게 (의료체계를) 보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정씨는 “처음부터 누군가를 처벌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면 진상조사 등 후속 계획이 나왔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공병원은 늘 대기하는 소방차 같은 것”

2021년 2월, 정군의 1주기를 앞두고 정씨와 대책위 관계자들은 경북 경산에서 서울의 청와대까지 380㎞를 걸었습니다. 이 도보 투쟁의 이름은 ‘정유엽과 내딛는 공공의료 한 걸음’이었는데요. 정씨는 “공공병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소방차가 불이 나지 않을 때도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경산 지역을 거점으로 한 공공병원이 한 곳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전국 거점별로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산=김규현 <한겨레>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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