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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지우기, 이제 그만!

등록 2022-01-11 13:15 수정 2022-01-12 02:00
유튜브 채널 <서울시> 갈무리

유튜브 채널 <서울시> 갈무리

매년 전세계 퀴어문화축제에서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노래 하나가 있다. 바로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다. ‘원래 이렇게 태어났다’는 의미를 가진 제목의 이 노래는 누구나 태어난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가사로, 성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는 성소수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바로 이 노래가 2022년의 시작을 알리는 타종식 행사에서 울려퍼졌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로 이름을 알린 댄스팀 라치카가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에 맞춰 멋진 춤을 선보인 것이다. 상징적인 노래가 새해에 맞춰 울려퍼졌음에도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가사 일부가 편집된 버전의 노래가 방송된 게 이유였다. 삭제된 부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No matter gay, straight, or bi, lesbian, transgender life/ I’m on the right track baby”(동성애자, 이성애자, 양성애자, 레즈비언, 트랜스젠더의 삶에 상관없이/ 난 올바른 길을 가고 있어) 성소수자가 태어난 모습 그대로 긍지를 가질 수 있고, 정체성을 이유로 스스로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는 의미를 가진, 노래의 하이라이트이자 매우 중요한 대목이 임의로 삭제됐다.

서울시는 고의적인 배제가 아니라 엠넷 프로그램에서 방송 당시 사용됐던 음원을 그대로 사용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실은 방송 당시에도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해당 노래 가사가 삭제됐음을 인지한 퀴어 당사자들과 일부 누리꾼의 비판이 있었다. 이번에 더 공식적인 행사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도 페이스북에 “‘무식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의도적인 삭제인가’에 대해 좀 고민했다”며 “뭐가 되었든 불쾌한 일이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다양한 인종 구성의 작품을 백인 캐스팅으로만 구성하는 할리우드의 화이트워싱과 같이, 여러 문화 콘텐츠에 들어 있는 퀴어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의미를 워싱하는(지워버리는) 이런 사태는 상황 그 자체로 퀴어 혐오로 읽힌다. 서울시 관계자는 “앞으로는 이런 부분까지 잘 고려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소수자가 지속적으로 배제당하는 상황을 어떻게 ‘잘 고려’할 것인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천다민 유튜브 <채널수북> 운영자

관심 분야 문화, 영화, 부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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