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2021년 12월2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1회 최우수 관광마을 시상식에서 전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44곳을 발표했다. 국내에선 전남 신안 안좌도 ‘퍼플섬’과 전북 고창 고인돌·운곡습지 마을이 뽑혔다. 전세계적으로 농어촌 지역 불균형과 인구 감소 문제를 관광으로 해소하고 관광자원을 발굴·홍보하자는 취지의 공모전이다.
‘퍼플섬’은 신안 중부권 안좌도에 딸린 작은 섬 박지도와 반월도다. 2019년께부터 두 섬은 꽃 군락지부터 나무다리, 마을 지붕, 창문틀, 대형 쓰레기 수거함까지 모두 보랏빛으로 물들여 국내외에서 화제가 됐다. 인구가 줄어드는 섬마을에 색깔 하나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기발한 여행지로 주목받았다. 시상식에 참석하고 귀국한 박우량(66) 신안군수는 “퍼플섬은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작은 섬인데도 보라색 지붕 페인팅 등 지역주민과 지자체가 힘을 합쳐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어낸 점을 높이 평가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퍼플섬으로 가는 길목인 안좌도 본섬과 팔금도에도 2021년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도시에서 온 청년들이 행정안전부 지원사업에 응모해 안좌도와 팔금도를 중심으로 ‘청년마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들은 방치된 창고나 폐교, 관사를 갤러리, 복합문화공간,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재탄생시켰다. 11월22일 신안군청 군수실에서 박우량 군수를 만나 ‘지방 소멸’과 청년마을, 그동안 추진해온 문화예술도시에 대해 물었다.
도시에서 온 청년들이 외딴 섬마을로 와서 ‘소멸하는 것들의 가치’를 말하는데.
“처음엔 정부 보조금 타려고 군청을 끼고 공모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업 기반이 충분해도 바다 한가운데 섬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청년들이 뭘 할 수 있을지도 반신반의했다. 도저히 확신이 안 섰지만 청년들의 도전 자체가 가상해서 결재했다.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청년들이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폐교를 사실상 무단 점유해 쓰레기를 치우고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민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돈을 준다고 해도 안 할 일에 부담을 감수하며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신뢰가 생겼다. ‘인구 소멸’을 막는 우실(해풍과 모래를 막으려고 조성한 방풍림을 뜻하는 전남 방언)로서의 청년마을이라는 아이디어부터 신선했다. 지역과 청년이 시너지 낼 수 있는 일이 앞으로 많을 거라고 본다.”
2021년 8월 신안 안좌도에서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는 청년들은 작업공간을 구하지 못해 폐교인 안좌중학교 팔금분교를 무단 점거했다. 이후 신안군청, 행정안전부, 교육청이 협조해 9월 초~12월 말 석 달간 청년들에게 학교를 빌려줬다. 팔금분교는 2022년 초 전라남도교육청에서 신안군청으로 소유권이 이전될 예정이다.
청년들이 지역에 오면 공간을 마련하는 것부터 어렵다. 팔금분교를 청년들에게 추후에도 열어줄 계획인가.
“신안군은 재정자립도가 약한 지자체이지만 폐교를 사들이고 있다. 그건 폐교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졸업생들에겐 영혼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동안은 팔금분교를 이 청년들이 계속 쓰도록 해줄 생각이다. 다만 팔금분교 실내 벽 한쪽에 졸업생들이 자신의 졸업사진을 볼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
신안은 ‘문화예술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쌓고 있다. 자은도 1004뮤지엄파크 등 1도 1뮤지엄 정책, 퍼플섬 등 색채나 꽃을 활용한 관광마케팅을 군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한다. 문화예술의 섬을 추구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지역균형발전은 보통 소득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소득이 중요하지만 지역주민이 지역에 자긍심을 갖고 떠나지 않도록 하려면 문화예술 분야가 중요하다고 본다. 신안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데 문화예술의 옷까지 입히면 신안을 찾아온 이들이 쉬고 영감을 얻고 삶의 이정표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문화예술은 관람 수익과 일자리 창출로 지역 소득으로도 연결된다. 큰 틀에서는 농어촌 인구 과소화, 고령화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신안군은 2021년 10월 정부가 고시한 인구감소지역 89곳 중 하나다. 인구 감소 또는 ‘지방 소멸’ 문제를 해소하는 데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건 소득이다. 도시로 떠나는 가장 큰 이유가 소득이다. 신안군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을 주민들과 주민배당금 형식으로 공유하는 이익공유제를 전국 최초로 실시했다. 2030년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면 더 큰 이익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특산물이나 문화예술관광 등 지역 자원을 소득과 연계해야 한다. 2025년 ‘플라잉카’(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상용화될 예정이다. 그땐 섬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이다.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신안군은 2021년 4월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에 따라 안좌도와 자라도에서 전국 최초로 태양광발전사업 이익배당금을 지급했다. 분기당 1인 12만~51만원이다. 3분기엔 지도 주민들도 태양광발전 이익배당금을 받았다. 태양광발전 이익배당금 정책은 젊은층을 우대했다. 만 30살 이하는 전입신고한 날부터 배당금 50%를 받고 2년에 걸쳐 나머지 금액을 받는다. 만 40살 이하는 전입신고하고 1년이 지나야 배당금 50%를 받고 5년에 걸쳐 나머지 금액을 받는다. 만 50살 이하와 만 60살 이하는 전입신고 2~3년 뒤 자격이 부여된다. 신안군은 2030년 임자도와 우이도 사이에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해 전 군민에게 풍력발전 이익배당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송전선로 인접 주민 피해나 환경문제 등이 제기되기도 한다.
“지역적인 환경파괴가 아니라 전세계 기후위기를 생각하면 탄소중립 사회, 신재생에너지 사회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산림과 농지를 훼손하지 않고 폐염전이나 간척지 폐농지를 활용해야 한다. 송전선로 문제 등 주민의 반발도 있지만 그나마 수용성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 이익공유제다.”
신안 도초도가 고향인 박우량 군수는 1974년 신안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40년 넘게 정부와 지자체에서 공직자로 생활했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신안군수를 세 차례 역임했다. “섬사람들은 섬에 사는 걸 부끄러워하고 여건만 되면 떠나고 싶어 한다. 섬에 사는 사람들이 섬을 자랑스러워하도록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섬이 고향인 군수로서 의미 있는 일 아닌가.”
신안=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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