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어떨까. 인권을 말할 때 늘 밀려나는 이들이 정신장애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우생학적인 장애인 정책과 의식은 아직 잔존하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초 정신의료기관인 경북 청도 대남병원과 대구 제2미주병원에서 각각 100명이 넘는 집단감염자가 나오면서 잠시 폐쇄병동 환자들의 인권 문제가 대두했으나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위드 코로나’를 코앞에 둔 2021년 10월 경남 창원의 정신과 병동에서 또다시 100명 넘는 집단감염 사태가 일어났다. 2021년 정부가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으나 거기서도 정신장애인은 누락됐다.
그리고 임계점이 왔다. 10월5일 ‘정신장애인 복지서비스 차별 철폐를 위한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 연대’가 출범했다. 30여 개 장애인단체가 모였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정신건강복지법 중복 수혜’를 이유로 정신장애인을 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했다며, 이들은 손팻말을 들었다.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침묵했던 정신장애인들이 비로소 정치적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들의 ‘말하기’는 운동을 넘어 전방위로 터져나오고 있다. 2018년엔 정신장애인의 권익을 위한 당사자 언론이 만들어졌다. 몇 년 새 출판시장에선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의 회복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하여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장애인 인권운동의 핵심 모토인 이 말은 정신장애인들의 말하기를 관통한다.
<한겨레21>은 정신장애를 겪는 당사자와 가족, 사회복지사, 전문의 등 15명을 인터뷰했다. 권위 있는 이들의 분석이나 주장이 아니라 정신장애를 경험한 동료시민이 하는 말에 귀 기울였다.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다. 통계적으로 인구 100명 중 1명은 중증 정신질환자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라고 믿는다._편집자주
“저는 우울한 코미디언 최예나입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예나(30)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다. 우울과 코미디는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최씨는 10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다. 최씨는 이 사실을 세상에 털어놓기로 했다. 다른 이들에게 “우울증에도 끝이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다. 2020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뒤 최씨는 ‘우울감과 우울증의 차이’ ‘의사 고르는 꿀팁’ 등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최씨뿐만 아니라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직접 말하기 시작했다. 2021년 11월5일 유튜브에서 생중계된 ‘우당탕탕 정신고생대회’에는 정신장애인 11명이 나와 환청, 환시 등을 겪으며 힘들었던 경험을 공개적으로 털어놨다. 앞서 10월에 열린 ‘제3회 매드 프라이드’ 축제의 ‘프라이드 마이크’라는 코너에서는 정신장애 당사자와 가족 10명이 직접 마이크 앞에 섰다.
정신장애를 겪은 당사자가 쓴 책들도 쏟아져나온다. 2021년 상반기에만 정지음 작가의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치료기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 ADHD로 진단받은 신지수 임상심리학자가 쓴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휴머니스트), 양극성장애(조울증)를 10년 동안 앓아온 작가 리단이 쓴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반비), 공황장애를 앓는 회사원 김세경이 쓴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가나) 등의 책이 나왔다.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자 등이 제3자 입장에서 정신장애 문제를 설명하거나 조언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왜 정신장애인들이 말하기를 시작한 걸까.
사회적 편견과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다. ‘조현병 엄마의 딸’로서 2020년부터 블로그를 운영 중인 강화구(42)씨는 ‘조현병 가족의 삶’ 등을 주제로 글을 쓴다. 강씨의 어머니는 20대부터 조현병을 앓고 있다. 강씨는 조현병을 앓는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미디어에서 조현병 환자를 나에게 위협을 가하는 두려운 존재로 묘사해, 날이 갈수록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있다. 엄마가 유방암 수술을 하고 요양병원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조현병을 앓는다는 이유로 어느 병원도 받아주지 않았다. 당사자 가족인 내가 직접 나서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최예나씨는 “우울증도 숨기지 않고 감기처럼 드러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위에 우울 증상이 있는 사람 가운데 정신과나 약물 복용에 대한 편견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내 이야기를 듣고 병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
이런 말하기가 ‘치료’는 될 수 없지만 ‘회복’은 될 수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2018년 이후 해마다 열리는 ‘우당탕탕 정신고생대회’는 이런 취지로 기획된 행사다. 정신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증상과 생활의 어려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회복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일본정신장애인공동체 ‘베델의 집’에서 1993년부터 진행 중인 ‘환청·망상대회’를 본떠 만들었다.
‘우당탕탕 정신고생대회’에서 ‘라디오 토크쇼’처럼 자신의 남모를 고충을 들려준 조영선(55)씨는 20대부터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를 앓았다.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고 관리하면서 건강이 많이 회복된 덕분에 2021년부터 광주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장애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정신장애 동료 상담을 맡거나 자립생활 지원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일을 맡는다. 그러나 아직도 잠자다 중간에 깨는 일이 많고, 다시 잠들면 회사에 지각할까 걱정하다 결국 또 잠을 설친다. 그는 정신재활시설 요한빌리지에서 운영하는 ‘당사자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주변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놨고 수면 생활 방식을 조금씩 바꾸는 등의 목표를 세워 하나하나 실천하고 있다. 그가 ‘우당탕탕 정신고생대회’에서 자신의 병에 붙인 이름은 ‘단잠을 못 자는 간짓대의 불면의 밤’이다. ‘간짓대’는 높은 곳에 있는 과일을 따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도구를 뜻하는데, 학창 시절부터 너무 말라서 붙은 조씨의 별명이다.
이해린(가명)씨는 “정신과 병원에서 퇴원했으니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내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다”며 “정신장애를 앓는 동료들도 나처럼 실수하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질환을 ‘질병’보다는 ‘정신 고생’이라고 불렀다. 스스로 자신의 고통에 대해 정의 내리기를 원했다. 또한 서로의 질환에 조언해주며 함께 치료방법을 찾으려 했다. 장연주씨는 “내 이야기를 함으로써 내 병의 뿌리가 학창 시절 트라우마에 있음을 알게 됐다. 우울한 나를 돕는 방법은 명상, 운동, 집안일, 일기 쓰기라는 것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정신재활시설 요한빌리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이정기씨는 “같은 병이라도 개개인의 상황이 다른데 병원 중심의 치료 환경에서는 획일적인 약물치료가 주가 된다. ‘우당탕탕 정신고생대회’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용기 내 말함으로써 정신질환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고생’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회복’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치열하게 애쓰는지 알기를‘정신병이 없는 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것이 단순히 정신병자들의 난동기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조정하려고 애썼는지,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 그도 아니면 절망했거나 고통받았는지 등을 읽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그 독해가 현실의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에서 저자 리단이 쓴 말처럼,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더는 숨기지 않는다.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이해해주기를 바라면서.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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