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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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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조차 없는 죽음… ‘나비’가 된 아이들

10년 새 관악구에서만 영아 14명 무연고사… 무연고 아동에 초점 맞춘 안전망 필요
등록 2021-10-26 06:58 수정 2021-10-27 02:06
2021년 8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서울시립묘지 안 ‘나비정원’ 분향대에 누군가가 가져다놓은 꽃다발이 놓여 있다. 나비정원은 서울시립화장시설에서 화장한 어린이 유해를 뿌릴 수 있는 추모시설이다. 박승화 기자

2021년 8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서울시립묘지 안 ‘나비정원’ 분향대에 누군가가 가져다놓은 꽃다발이 놓여 있다. 나비정원은 서울시립화장시설에서 화장한 어린이 유해를 뿌릴 수 있는 추모시설이다. 박승화 기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509-20, 회색빛 1층 건물. 이곳은 ‘무연고 추모의 집’이다.
무연고 사망자 중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장례를 치르고 난 유골함을 봉안하는 장소다. 혹시라도 뒤늦게 나타날지 모를 연고자를 유골함이 5년 동안 기다리는 장소다. 2021년 10월20일 현재, 이곳에 봉안된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은 모두 3087기. 연평균 200여 기의 유골함이 봉안된다.
이곳엔 아무런 안내판도, 표지판도 없다. 무연고 사망자라는 글씨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무연고 사망자는 살아 있을 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는데, 죽어서도 마찬가지다.
10월15일 이곳에서 ‘제5회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 위령제’가 열렸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동자동사랑방,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등의 사회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다.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10월17일)에 맞춰 매년 열린다.
‘추모의 집’ 문은 평소에는 늘 굳게 닫혀 있다. 유골함 봉안 때와 연고자가 나타나 유골함 반환 요청을 할 때, 단 두 경우에만 열린다. 그리고 1년에 딱 하루 더 열린다. 바로 ‘합동 추모 위령제’가 열리는 날이다. 봉안된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이나 지인 등은 이날만 기다렸다가 ‘추모의 집’ 안으로 들어가 유골함을 만난다. 하지만 올해는 위령제가 열리는 날에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곳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은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이유로 들었다. 위령제 참석자 40여 명은 행사만 치른 뒤 떠나야 했다. 후드득 떨어지던 가을비가 위령제 시작 직전에 그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난과 관계 단절, 질병으로 인해 투명인간의 삶을 살았던 무연고 사망자들의 사연을 전한 제1384호(‘투명인간의 죽음’)에 이어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 리포트’ 2부를 이어간다. 이번호에서는 ‘우리 곁의 무연고사’를 집중조명했다. 무연고 사망자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 지인이었다. 우리와 다르지 않다.
1216명을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60대(370명)가 3명 중 1명꼴(30.4%)로 가장 많지만, 3살 이하 어린 아기 6명, 20~30대 청년 22명 등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전통적 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무연고사 또는 고독사는 우리 곁에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죽음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무연고 사망자의 생애를 따라가봤다. 다음호(제1386호)에서는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제도적 대안을 살펴볼 예정이다._편집자주

생의 시작과 끝의 간격이 한 뼘도 되지 않았다. 태어난 뒤 홀로 남겨져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진수(가명)의 삶이 그랬다. 2020년 겨울의 문턱,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진수는 태어났다. 그가 처음 숨을 쉰 곳은 2~3평 남짓한 서울의 한 고시원. 은혜(23·가명)는 홀로 진수를 낳고 제 손으로 탯줄을 잘랐다. 5년 전 가족과의 불화로 집을 나온 은혜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왔다. 진수 친부와는 연락이 끊겼다. 임신을 중지할 수술비나 진수를 키울 양육비를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고시원에서 태어난 아이는 24시간도 살지 못했다

은혜는 진수를 안고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로 향했다. 자신처럼 아이 양육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베이비박스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이다. 베이비박스는 길거리에 갓난아기가 유기돼 사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몰래 아이를 놓고 가도록 한 시설이다. 수건과 담요로 감싼 진수를 안고, 은혜는 베이비박스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은혜는 차마 베이비박스 문을 열지 못하고 맞은편에 있던 고무통에 진수를 놓고 돌아왔다.

이날 최저 기온은 3℃. 공기를 처음 들이마신 지 갓 1시간이 지난 진수가 견디기엔 날씨가 차가웠다. 진수의 생애는 2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다음날 새벽 행인이 발견했을 때 진수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진수의 삶은 ‘성명불상’으로 기록됐다. 출생신고가 안 돼 이름도 없던 탓이다. 작고 여린 그의 주검은 46일간 안치실에 있다가 경기도 서울시립묘지의 ‘나비정원’에 뿌려졌다. 나비정원은 화장한 어린이 유해를 뿌리는 추모시설이다. 장례는 나눔과나눔이 주관하는 공영장례로 치러졌다. 엄마인 은혜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무연고 영아 장례를 치를 때마다 배냇저고리를 후원하는 ‘해피투게더’에서 하늘색 꽃무늬 배냇저고리를 지어 보내줬다. “아가야, 우리가 사랑해 안녕”이란 인사말을 수놓은 저고리다. 진수의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인 제사상엔 뽀로로 캐릭터 음료수와 초코우유가 올라왔다. 나비정원의 고양이 세 마리가 살금살금 모여들더니, 진수를 함께 배웅했다.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에는 진수 같은 ‘무연’의 영아가 종종 찾아온다. 이곳은 아이를 양육할 여력이 안 되는 부모들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찾는 마지막 출구다.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1년 6월까지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아이는 모두 1888명에 이른다. 2020년에만 베이비박스에 누인 영아는 137명이다. 이 중 65%(2020년 기준)는 미혼 가정에서, 60%는 10~20대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베이비박스에 눕혀졌지만, 세상과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나눔과나눔’을 통해 공영장례를 치른 무연고자 1216명 중 영아는 6명이다. 주사랑공동체가 있는 관악구에서만 최근 10년(2012~2021년) 동안 영유아 14명이 연고 없는 죽음을 맞았다. 이 가운데 3명은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됐다. 친부와 연결이 두절되는 등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엄마 혼자 가정에서 아이를 사산하는 바람에 무연고자가 되기도 한다. 14명 중 1명은 고시텔 내 화장실에서, 2명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반면 세상과 연을 이어가는 아이도 있다. 보호시설로 가거나 입양되는 경우다. 충남 금산군의 아동양육시설 향림원에서는 2015년부터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무연고 아동 11명이 입소해 함께 자라고 있다. 주사랑공동체에서 친부모와 상담을 진행해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는 일도 극소수지만 존재한다.

배냇저고리를 제작·판매하는 ‘해피투게더’가 무연고 영아 장례를 치를 때마다 지어 보내주는 배냇저고리. 나눔과나눔 제공

배냇저고리를 제작·판매하는 ‘해피투게더’가 무연고 영아 장례를 치를 때마다 지어 보내주는 배냇저고리. 나눔과나눔 제공

어릴 때 버려져 47살 평생을 병원에서만 살다가

무연고 영아 중에는 부모와의 연은 짧지만 ‘생’(生)과의 연이 질기게 이어지는 이도 있다. 선천적 장애가 있어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려진 뒤 평생을 병원에서 보내는 경우다. 무연고 사망자 장흥숙(40·가명)씨와 신봉숙(47·가명)씨는 40년 넘게 서울시립어린이병원과 시설을 오가며 살았다. 이들은 숨을 거둔 뒤에야 처음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2021년 1월 서울시립어린이병원에서 숨진 장흥숙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그의 주민등록번호는 ‘813300-283×××7’이다. 1981년 태어났지만 생년월일을 몰라, 종로구를 가리키는 ‘3’이 붙었다. 뒷자리는 1983년(83) 7번째로 발견된 여성(2) 행려환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0년 12월, 47살의 나이로 숨진 신봉숙씨도 평생을 어린이병원에서 보냈다. 사인은 뇌성마비와 폐렴. 공영장례를 치른 그의 마지막 길에는 같은 병원에서 치료받던 3살 무명아기가 동행했다.

무연고 아동을 키우는 향림원의 최비비안 원장은 “(무연고 영아를 받을 때) 서울시가 아기 보호자가 작성한 글을 보내오는데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이 공통적이다.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는 부모는 피눈물을 쏟았으리라 짐작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를 엄마 혼자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모는 사회를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혼자 아기를 출산한 엄마의 잘못은 아니다. 부모와의 연이 끊어지더라도, 아이가 세상과 연을 이어가며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섬세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2016년부터 무연고 아동을 지원하는 ‘품다’ 캠페인을 진행해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무연고 아동이 입소하는 양육시설 종사자들이 양질의 돌봄을 제공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교육을 해야 한다. 또 아이의 사회성이 발달하는 시기에 상실감과 심리적인 어려움을 최소화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심리검사와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부모에 대한 낙인과 비난 프레임 벗어나야

진수의 죽음 이후, 주사랑공동체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넣어두지 않고 주위 계단을 밟기만 해도 ‘구조 벨’ 소리가 울리도록 수리했다. 영아가 불가피하게 부모 곁을 떠나더라도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골든타임’ 안에 아기를 구하기 위해서다. 가능하다면 아기를 놓고 가려는 부모를 직접 만나 상담 등을 진행하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기도 하다. 영아 유기와 학대라는 낙인을 찍고 비난하는 프레임을 넘어서야 진수 같은 무연고 영아의 죽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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