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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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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이 자기계발이 되는 시대

무속을 덧댄 운명 개척 로맨스 ‘불완전 신데렐라물’… 통제와 관리에 쏟아붓는 ‘오늘’을 비추는 웹툰
등록 2026-03-31 14:16 수정 2026-03-31 14:35
아들의 운명에 겁먹은 엄마 윤인영은 아들 현매화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평생을 집 안에만 가두다시피 키운다. 네이버웹툰 제공

아들의 운명에 겁먹은 엄마 윤인영은 아들 현매화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평생을 집 안에만 가두다시피 키운다. 네이버웹툰 제공


지인에게서 제미나이를 통해 사주 본 후기를 들었다. 지나온 삶을 꽤 잘 맞히더란 이야기였는데, 인공지능(AI)으로 사주를 본다는 사실도 그 결과의 정확도도 놀랍지는 않았다. 나 또한 바로 며칠 전 챗지피티(ChatGPT)에 타로풀이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유구한 전통인 무속을 두고 이제 와서 ‘유행’이라 하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근래 들어 무속은 한층 더 일상 곳곳에 침투한 느낌이다. 각종 무속 예능이 화제가 된 것은 물론이고 유튜브나 AI를 통해 운세를 점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엠비티아이(MBTI)처럼 사주오행을 공유하고, 모인 자리에서 점괘를 찾아 읽기도 한다. 유명 운세 앱의 연매출이 수백억원이라고 하니 이런 흐름이 나와 내 주변의 일만은 아닌 듯하다.

 

메이드와 재벌집 도련님 결혼의 속사정

 

‘불완전 신데렐라물’(글 꿀밤·그림 조림, 네이버웹툰 연재 완결)은 재벌집 도련님 현매화와 그 집 메이드 정이온의 계약결혼이라는, 고전적인 설정의 현대 로맨스다. 특이점이 있다면 이들의 로맨스에 무속이 끼어든다는 사실이다. 작중 무속인의 말에 따르면, 매화는 단명할 운명을 타고나는 바람에 매 순간 죽음의 위험이 따르는 아이다. 아들의 운명에 겁먹은 엄마 윤인영은 매화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평생을 집 안에 가두다시피 키웠다. 나아가 매화와 달리 좋은 팔자를 타고난 이온을 액막이 삼아 아들의 운명과 이온의 운명을 뒤바꾸려 한다. 매화와 이온은 이런 사정을 모른 채 인영의 계략에 속아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불운과 음모에 맞서는 작품들이 으레 그렇듯, 두 주인공이 자신들만의 행복을 쟁취해내는 결말은 익숙한 것이었다. 다만 특별히 눈에 띈 것은 매화와 그의 엄마 인영이 무속이 말하는 운명에 얽매여가는 모습이다. 인영은 매화가 태어난 뒤 무당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다. 매화를 가두고 이온을 이용해 운명을 통제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공포에 질리고, 학대하듯 자책하기를 반복한다. 평생을 갇혀 산 매화 역시 그 믿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엄마의 음모와 맹신을 비난하면서도 이온에게 위험이 닥칠 때마다 불행을 타고난 자신을 책망한다. 통제 강박과 공포, 자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온 이유는 일면 우리의 모습과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속을 찾는 데는 어떤 심리가 작용할까. 인지종교학자 구형찬은 의사결정과 책임의 부담을 분산시켜주는 것에서 오늘날 무속의 기능을 확인한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근거를 자기나 타인이 아닌 이해관계 바깥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둠으로써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에서도 한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개개인은 너무 많은 것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의 책임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정이온이 윤인영에게 남긴 말은 모든 변수를 통제하며 살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네이버웹툰 제공

정이온이 윤인영에게 남긴 말은 모든 변수를 통제하며 살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네이버웹툰 제공


운세까지 관리의 대상이라니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결국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마는 우리에게 무속은 때로 좋은 도피처가 돼준다.(구형찬, ‘무속, 심리학과 종교 사이’, 릿터(Littor) 57호, 2025년 12월/2026년 1월) 최근에는 무속이 자기관리 도구로 쓰이는 듯하다. 사주에 물이 부족하니 이를 보완하기 위한 운동을 추천하거나, 특정 색깔 소지품을 들고 다니라는 식이다. 이들 조언을 신문·잡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던 ‘띠별 운세’나 ‘행운의 색’처럼 재미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심리나 체질 검사 결과에 맞춰 건강을 관리하라는 지침처럼, 너무도 ‘친근한’ 방식으로 우리 삶에 간섭하려 들기 때문일 것이다. 운세를 관리하지 않으면 사업에 차질이 생길 거라는 조언이 의사의 충고만큼이나 힘을 얻는다. 그렇지 않아도 혹독한 자기관리 사회에서 운세마저 관리의 대상이 되다니, 버거운 일이다.

극심한 통제 욕구는 한국 사회가 혼란에 무방비한 상태임을 드러내는 징후와도 같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사회가 감당하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변화해 예측 불가능해질수록, 개인은 자신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일에 매달리게 된다고 지적한다. 암이나 우울증의 증상을 항목화하고 식단을 조절하거나 집안의 문단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공포를 잠재우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방어적 행동을 취할수록 공포는 오히려 증식한다. 임시방편으로 대처하려 할수록 미처 통제하지 못한 것이 눈에 들어와 점점 더 괴로워질 뿐이다. 신체 건강, 정신 안정, 나아가 운세까지 관리하려는 노력이 애처롭고 아슬아슬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같은 현대인의 곤란은 매화를 지키려다 무너져 내리는 인영의 모습에서 극적으로 목격된다. 인영은 매화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위험에 뛰어들수록 괴로워하지만, 실상 그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아들이 무속의 힘을 빌려 살아났다고 믿게 된 순간이다.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것을 노력한다면 어쩔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통제의 범위가 끝도 없이 넓어져왔기 때문이다. 믿음과 정성이 부족하다며 인영을 책망하는 무당의 얼굴은, 마치 더 열심히 관리하지 않는 현대인을 꾸짖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내려놓아도 망하지 않는 사회라면

웹툰에서 인영은 이온에게 외친다. 시름시름 앓다가 굿 한 번에 기운을 차리고,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다치는 불운한 아이를 키웠다면 너라도 무속을 믿지 않았겠냐고. 이온의 대답은 심드렁하다. 별것 아니니까 금방 나았을 것이고, 아이들은 원래 다치며 크는 법이라고.

아이든 어른이든 살아가며 다치는 일에 적당히 의연해지는 것은 필요하지만, 매화의 운명에 무속의 힘이 어디까지 발휘됐을지는 모를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화든 현실이든 모든 일이 과학과 합리에만 근거해서 작동하지 않는다고 믿어서다.

그러나 매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둬둔 채 두려워 들여다보지도 못한 인영에게 이온이 남긴 말은 인상적이다. “그게 어떻게 사랑이에요? 잃어버릴까봐 벌벌 떨면서 무서워만 하는 게 어떻게 사랑이냐고요.”(89화) 이온의 말에서 사랑을 ‘삶’으로 바꾼다면 이 대사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다. 통제와 관리에 모든 시간과 애를 쓰며 무서워만 하는 날들을 어떻게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설령 그 통제가 유효하다 할지라도, 인생을 그렇게만 보낼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가끔은 속수무책으로 두 손 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무지 어쩔 수 없는 것을 내려놓아도 우리 삶이 망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는 사회, 무속의 힘을 빌려서라도 염원하고 싶은 건 바로 그런 사회다. 누군가는 무책임하고 허무맹랑하다 할지도 모르지만, 이왕 하늘에 빌 거라면 이 정도는 대범한 게 좋지 않을까.

 

최윤주 만화평론가

 

*현실 연애엔 무관심하면서도 로맨스 만화는 가세가 기울 만큼 읽어왔다. 그 경력을 살려 다양한 관점에서 로맨스 만화를 읽어보려 한다. 6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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