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후보로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국민의 삶을 국민이 책임져야지 국가가 왜 책임지나?”라는 말이 크게 논란이 됐다. 후보 쪽에선 맥락을 삭제하고 진의를 왜곡해 보도하고 해석했다고 반발했지만 말 자체가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내용인지라 진보 쪽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최재형 후보의 말은 국가 통치 이념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 시민의 ‘마음의 레짐’ 관점에서 보면 지배적인 이념에 가깝다. 마음의 레짐이란 서울대 사회학과 김홍중 교수가 제시한 개념이다. 마음이 그저 감정이나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라는 것이다. 이 체제로서의 마음은 당연히 체제의 결과이자 산물이다. 통치의 대상이 제도나 행위를 넘어 인간의 마음이며 이 마음에서 체제가 굳어진다는 점에서 마음을 체제의 통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통치는 좁은 의미에서 ‘정치’의 통치만이 아니라 체제의 통치를 말한다.
국정농단의 박근혜 정권을 몰아낸 뒤 등장한 문재인 정부하에서 사람들의 마음 체제는 어떠한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선, 자기 살길은 각자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원리는 바뀌었는가? 초유의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정말 우리가 연결된 존재임을 절실히 깨달으며 각자도생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길, 즉 ‘사회’를 도모하는 쪽으로 전환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 등 현 정부에서 각자도생은 전환되기는커녕 더 심화된 양상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이 현상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교육 영역일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혁신교육을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변화가 마음의 레짐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 지역 혁신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과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했다. 한 참여 교사가 내가 살던 지역에 생긴 혁신학교에 근무하는 분이어서 반갑게 인사드리며 잘 지내는지 여쭸다. 그분은 한숨부터 쉬셨다. 신설 학교이고 젊은 학부모가 주를 이루는 뉴타운이라 혁신학교에 우호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했다. 적잖은 부모가 혁신학교를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며 교육에 개입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 지역에 그 초등학교가 들어설 때의 분위기는 지금과는 반대였다. 인근 지역에서도 혁신초등학교를 유치하고 싶어 했다. (당시에도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부모들은 자녀가 초등학교에서부터 너무 공부에만 ‘혹사’당하는 것을 우려했다. 그때 만난 그 지역의 학부모들은 ‘적어도’ 초등학교 때는 공부보다는 마음껏 뛰어놀면서 밝게 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물론 당시에도 이런 ‘밝고 건강한 초등학생’의 이미지는 이후 성장에 대한 그들 나름의 확신과 결부돼 있었다. 초등학교 때 너무 공부에 압박되기보다는 자유롭게 놀다보면 중학교에 올라갈 때쯤 자기 탐색을 시작할 테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자기 발견을 하고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면 자녀가 ‘폭풍 성장’을 하리라는 낙관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 성장의 시나리오는 지난 10여 년의 시간을 거치며 완전히 달라졌다. 혁신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은 놀기만 하고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는 불신이 팽배했다. 서울 강남에서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민원으로 혁신학교 지정이 저지되곤 했다. 한국 교육을 주도하는 강남의 이런 흐름은 서울 강북이나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혁신학교를 불안해하고 불신하는 눈이 많아졌다.
그 영향은 주변의 다른 학교에도 미쳤다. 지역의 다른 학교가 대대적인 공사를 예정하고 있는데 그 학교도 혁신학교와 비슷한 교육적 전환을 시도할 모양이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지역의 학부모들이 반대하는 목소리가 형성됐다고 한다. 과거에는 이 학교도 인근 혁신학교처럼 되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반대로 이 학교가 혁신학교‘처럼’ 될까봐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많아진 것이다.
혁신학교 교사들과 함께 이야기하다보니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복잡하게 얽힌 것으로 보였다. 첫째,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의 양적인 욕심이 분명히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혁신학교에서 혁신교육을 제대로 구현하는 교사가 되려면 그 교사의 본격적인 업무와 활동은 오후 5시 이후에 시작된다고 한다. 정규적인 학교 업무 시간에 하는 노동의 양으로는 혁신학교가 목표로 하는 것을 달성할 수 없기에 더 많은 노동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교사가 이 과정에서 ‘소진’돼버리곤 했다.
교사의 상당한 열정과 노동을 요구하는 혁신학교는 그 특성상 양적으로 급격하게 팽창할 수 없다. 준비 과정부터 다른 교사들을 설득하고 토론하며 연구와 협업을 통한 ‘의기투합’과 학부모들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야 해서다. 하고 싶다고 해서 뚝딱 해치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준비되는 학교부터 아주 천천히 진행해야 혁신학교를 통해서 구현하려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몇몇 진보 교육감은 혁신학교를 양적으로 팽창시키는 것에 더 주안점을 뒀다. 일종의 성과주의가 작동한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름만 혁신으로 바꾸니 오히려 혁신의 피로감이 더 쌓이는 역효과가 난 곳도 있다. 학교 현장에 ‘혁신의 피로감’이 쌓이는 동안 학교 바깥의 사정 역시 혁신교육에 좋지 않게 흘렀다.
무엇보다 한국은 사회 전체가 극단적인 능력주의 각자도생 사회로 완전히 전환됐다. 그 결과 학부모들은 이전에 적어도 초등학교에 대해서는 혁신교육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던 ‘여유로운’ 마음을 거의 잃어버렸다. 자녀가 무한경쟁의 약육강식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초등학교 이전부터 독하게 마음먹고 공부해야 한다는 쪽으로 넘어갔다. 무엇보다 ‘생존’이 중요해졌다. 여유를 가질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능력주의는 현상적으로는 각 개인의 능력에 따라 공헌한 만큼, 즉 성과를 낸 만큼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다만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는 입을 다문다. 개인의 능력을 조건의 문제가 아닌 결과의 문제로만 본다.
따라서 능력주의에서 개인은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자기가 가진 자원을 모두 다 쏟아붓듯이 ‘동원’해야 한다. 물론 이때의 자원은 공적인 자원이 아니라 사적으로 동원하는 자원이다. 따라서 현상적인 측면과 달리 실질적으로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가족의 경제적 부,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적 자본 등 자원을 동원해 그것을 개인의 ‘능력’으로 전환하려는 총력전이 펼쳐진다. 능력에 따른 차등적 보상이라는 매우 공정해 보이는 결과와 달리 그 과정은 자원 총동원 전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혁신학교를 불신하는 학부모들은 지금 이 사회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것인 이 사적 자원의 총동원을 통한 살아남기에 ‘충실한’ 사람인 셈이다. 가능한 것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건 윤리적 차원이라면 모르겠지만 사회적 차원에선 무의미하다.
그러나 행위자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이 이념이 마음을 넘어 실제 통치 이념으로 제도화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행위자들이 각자도생하는 것을 넘어 국가가 각자도생을 제도화하고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실패자나 낙오자로 낙인찍고 폐기를 정당화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람들은 최재형 후보자의 말을 통해 우리 마음의 레짐, 우리 마음의 윤리를 실물화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갑자기 보게 됐다. 각자 알아서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하고 국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세상 말이다.
각자도생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책이처럼 다수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각자도생의 신자유주의이지만 나라와 제도의 전면적인 통치 원리로서는 반대한다는 목소리도 다수다. 여전히 국가의 존재 이유는 양육강식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에서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금을 내면서 공적 조직과 국가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아예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보다 지금 사람들의 불만은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진보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두 체제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음의 레짐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비평’한다면 그것은 결국 ‘국개론’(국민개××론)밖에는 안 된다. 그것보다는 시민들의 ‘마음의 레짐’을 파고드는 이야기가 실제로 제도에 대한 통치 이념이 되면 어떤 세상이 되는지를 드러내야 한다. 최재형 후보의 저 말에 대해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은 “그럼 세금은 왜 내야 하나?”라는 말이다. 세금은 꼬박꼬박 내지만 돌아오는 것은 “네가 인생 잘못 산 결과일 뿐 누구를 탓?”이라는 준엄한 꼰대질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자도생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책을 통해 국가의 존재 이유가 시민을 보호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것처럼 개개인은 자신이 당한 불운을 개인의 불운으로 여길 수 있지만 사회는 그 개인의 불운을 사회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최대한 사회적으로 보호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을 통해 사회가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것, 그것이 양적인 팽창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양적으로 팽창하는 가운데 의욕 있는 교사들은 소진되고 학부모들은 불신하며 각자도생이라는 마음의 레짐이 더 강해져버린 교육 현장을 보는 마음이 그래서 더 안타깝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군 경비 뚫은 공수처, 관저 건물 앞 경호처와 3시간째 대치
경호처 직원들, 끝까지 비겁한 윤석열에게 인생 걸 텐가? [1월3일 뉴스뷰리핑]
[단독] 서울서부지법,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이의신청’ 검토 착수
[영상] 공조본, 윤석열 체포영장 제시…경호처장, 경호법 이유로 수색불허
시민단체, ‘공조본 수색 불허’ 박종준 경호처장 고발…“제 2의 내란”
김흥국 “박정희·전두환보다 윤석열이 더 잘해…오야붕 지키자”
[단독] 윤 대통령, 헌재에 ‘탄핵 절차’ 문제 제기…첫 답변서 제출
[속보] 공수처,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중지…5시간 만에 철수
“윤석열이 대한민국”…‘내란선전’ 윤상현 제명청원 12만명 넘어
윤석열의 ‘철통’ 액막이…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