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터버블’(Filter Bubble)은 유튜브에만 있지 않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하는 최근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후보들의 지지율이 조사마다 제각각이어서 믿고 싶은 것만 선택해 수용하는 환경이 됐다.
발표하는 모든 선거 여론조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에 등록된다. 최근 1개월(6월21일~7월20일)간 전국을 대상으로 한 대선 여론조사는 모두 42회였다. 하루에 1개 이상 발표한 셈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상품이 되고 이를 언론이 판매하는 양상인데 온라인이 강화되면서 클릭 수를 높이려는 언론사는 매우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활용한다.
문제는 결과가 중구난방이라는 점이다. ㄱ후보가 1위를 한 조사가 나온 다음날 ㄴ후보가 앞서는 조사가 발표된다. 또 하루이틀 뒤에는 다시 ㄱ후보가 앞선 결과를 만난다. 이를 전하는 언론 기사를 보면, ㄱ후보의 선전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하다가 다른 날엔 ㄱ후보가 위기인 이유와 함께 ㄴ후보의 약진 이유를 내놓는다. 언론사들이 조사를 취사선택하기도 한다. 매체 성향에 부합하는 결과는 비중 있게 보도하고 그렇지 않은 기사는 아예 외면한다.
이런 배경에는 자동응답(ARS)방식과 전화면접방식의 대결이 자리한다. 최근 논란의 핵심이다. 기계음이나 녹음된 음성을 들으며 번호 버튼을 누르는 ARS방식인지 사람 조사원이 투입돼 대화 형식으로 진행하는 전화면접방식인지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주요한 대선 후보들에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면, 전화면접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ARS에서는 야권의 경우 윤석열 후보가, 여권에서는 이낙연 후보가 강세를 띤다.
왜 그럴까. ARS에는 해당 이슈에 관심 많은 사람이 주로 응답한다. 기계음을 들으며 수동적으로 버튼을 눌러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홍보전화가 기계음으로 올 경우 바로 끊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사람이 직접 전화를 해오면 미안한 마음에 상대적으로 덜 끊게 된다. 따라서 정치조사인 경우, ARS에서는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정치 성향이 비교적 뚜렷하거나 특정 정당에 적극적인 감정을 지닌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이 참여한다. 이런 특성은 4점 척도(매우 찬성, 대체로 찬성, 대체로 반대, 매우 반대)로 묻는 질문의 결과가 전화면접에서는 ‘대체로 찬성’ 또는 ‘대체로 반대’ 응답 비율이 높은 데 비해 ARS에서는 ‘매우 찬성’ ‘매우 반대’ 응답 비율이 높은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ARS는 경험적으로 보수적 응답이 좀더 두드러지는 특성이 있다. 실제 ARS에서 보수정당 지지율이 전화면접보다 높게 나타난다. 만약 근무로 인해 ARS에 편하게 응하기 어려운 직장인이 진보 성향이 더 강하다고 본다면 이런 현상이 이해된다.
어느 것이 맞는 여론인가.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대표성’(Representativeness)이다. 대표성 확보를 위해 여론조사에서는 실제 지역, 성, 연령대별 비율을 고려해 고르게 표집한다. 여기에 국한하지 않고 직업, 재산, 학력, 심지어 어떤 성향마저 실제 비율에 따라 표집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모두를 충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지역, 성, 연령 등만 할당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화면접방식이 더 우월하다 할 수 있다. 정치 관심자뿐만 아니라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표본에 포함해야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ARS 조사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신속성과 경제성에서 우위를 지닌다. 반나절에 전국 1천 명 조사를 끝내 신속하게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해 전달할 수 있다. 비용도 적게 든다. 1천 명 규모 조사일 경우 전화면접은 1천만원에서 1500만원 정도 소요되는 반면 ARS는 3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 신속성과 경제성은 정확성이라는 가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고려할 만한 요소이긴 하다.
지난 1개월간 발표된 대선 여론조사 42회 중 29회(69%)는 ARS방식이었다. 반면 전화면접방식은 13회로 31%였다. 조사기관이 자체 발표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화면접은 대형 언론사에서, ARS는 온라인 기반 언론사에서 주로 채택하는 흐름을 보인다. 경제성이 주요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ARS 조사는 투표율이 많이 높지 않은 선거에서 결과 예측력이 있다. ARS에는 투표 가능성이 큰 정치 관심층이 주로 응답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장점으로 이른바 ‘솔직응답설’이 꼽힌다. 면접원한테는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데 ARS 조사에서는 응답자가 실제 마음을 드러내기 수월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권위주의 시대가 아니라서 의사 표출에 부담을 느낀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오히려 정치에 관심이 많은지 적은지 등 표본 자체의 특성이 더 크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ARS에서는 질문 문항 수가 대개 5개 내외이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없다보니 길어지면 중도 거절이 많아진다. 대통령 국정평가, 정당지지율 등을 묻고 나면 사실 3개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이슈를 단면적으로 묻는다. 15개 이상 문항을 둘 수 있는 전화면접에서는 한 이슈에 대해 입체적으로 질문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 관련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 이슈에 대한 인식만 묻는 게 아니라 북한 자체에 대한 인식, 바람직한 대북정책 방향 등도 함께 물어 대중의 마음을 종합적으로 보려고 할 수 있다.
여론조사는 ‘자극에 대한 반응’인데 조사 방식이 다르면 자극이 다르고 결과도 다르게 나온다. 조사 결과를 분석할 때 어느 방식이 적용됐는지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언론 보도 행태가 개선돼야 한다. 먼저 사용된 조사 방식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추이를 보도할 때 지금처럼 ARS와 전화면접을 혼재해서 쓰면 안 된다. 방식이 다르면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조사이기 때문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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